美 국방부, 6·25전쟁이 미군에 남긴 5가지 유산 소개
흑인·백인이 한 부대에서 섞여 싸우다
육군에서 독립한 공군, 첫 실전 참여
유엔 역사상 ‘전무후무’ 유엔사 출범
美 ‘봉쇄정책’ 채택 따른 냉전 본격화
“만약 내가 포로가 된다면, 나는 나의 동료들과 신의를 지킬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을 것이고, 나의 동료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 어떤 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군이 1955년 대통령 행정명령 형태로 제정한 ‘행동수칙’(Code of Conduct)의 일부다. 총 6개 항목으로 돼 있는 행동수칙은 미군 장병이 전투 도중, 특히 포로로 붙잡혔을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하고 절대 쉽게 항복해선 안 된다’ ‘만약 붙잡힌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포로 심문을 받을 때 조국에 해가 되는 진술을 해선 안 된다’ 등 내용이다.
◆‘포섭’ 당하지 말아야… 행동수칙 제정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 총성이 멎은 뒤 유엔군과 북한군·중공군 간에 포로 교환이 이뤄졌다.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힌 미군 장병 가운데 21명이 뜻밖에도 송환을 거부했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충격을 받았다. 합참은 미군 포로를 상대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고문과 세뇌 시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행정명령으로 미군 장병의 행동수칙을 제정하도록 했다. 수칙은 “미국의 모든 군대 구성원은 전투 도중 또는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행동수칙에 구체화된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위에 소개한 대로 포로가 되었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나열했다. 미 국방부는 “비록 행동수칙은 6·25전쟁 기간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미군 포로를 겨냥한 공산주의자들의 포섭 시도에 대항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6·25전쟁의 결과물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6·25전쟁은 미군 역사상 흑인과 백인이 한 부대에 섞인 채로 싸운 첫번째 사례였다. 2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흑인 장병은 반드시 흑인으로만 구성된 부대에 배속됐다. ‘블랙팬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육군 제761전차대대, ‘터스키기 에어맨’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육군항공단(현 공군) 부대 등이 2차대전에서 맹활약한 대표적 흑인 부대다.
전후인 1948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군대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흑인끼리만 부대를 편성하던 관행은 사라지고 흑인과 백인이 한 부대에 섞인 채로 싸우게 됐다. 그 뒤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고 미군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6·25전쟁은 미군 역사에 흑인·백인 통합 부대 원칙이 실전에 적용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육군에서 독립한 공군, 첫 실전 참여
2차대전 당시만 해도 미군에 공군은 없었다. 해군은 자체 항공전력을 갖고 있었고 육군도 산하에 육군항공단을 운영했다. 전후인 1947년 육군항공단을 육군에서 떼어내 공군으로 독립시켰다.
6·25전쟁 초반만 해도 미 공군은 2차대전 때 썼던 프로펠러식 전투기 F-51 머스탱을 한반도에 출격시켰다. 하지만 F-51보다 성능이 우수한 소련제 미그-15 전투기가 북한 편에서 전장에 출현하며 미 공군도 최초의 제트 전투기 F-86 세이버로 맞대응했다. 미 국방부는 “6·25전쟁은 미 공군 역사상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가 실전에 투입돼 적군 제트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인 사례로 남아 있다”고 소개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은 북한의 기습남침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회원국들에게 “병력과 물자를 한국에 보내 도와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이 속속 참전을 결정하면서 1950년 7월7일 일본 도쿄에 최초의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됐다. 당시 2차대전 패전국 일본 점령 임무를 맡고 있던 미 육군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초대 유엔사령관에 임명됐다.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계속 존재하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로도 세계 각국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유엔사와 같은 조직이 꾸려진 적은 없다. 한국의 유엔사는 1945년 창설된 유엔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 기구로 남아 있다.
미국은 2차대전 후 한동안 소련(현 러시아)과 사이좋게 지내려 했으나 소련이 동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에 공산주의를 확산하려 하자 마음을 돌린다. 1947년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이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동서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흔히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라고 불린다. 미국의 6·25전쟁 참전은 봉쇄정책이 실행에 옮겨진 첫 사례였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미군은 한국에 남았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역사적인 한·미동맹이 출범했다. 학자들은 이로써 2차대전 이전 미국이 취한 이른바 ‘고립주의’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지금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방어를 지원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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