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감독은 왜 뻔히 보이는 사인을 내고, 작전을 걸까
[OSEN=백종인 객원기자] 1위와 10위의 대결이다. 그냥 1위도 아니다. 7연승의 압도적 페이스다. 최강의 불펜 덕이다. 웬만큼 뒤진 스코어는 끝까지 따라붙는다. 그리고 결국은 뒤집어 버린다. 전날(3일)도 9회 동점 홈런, 연장 끝내기로 짜릿하게 이겼다.
이날도 비슷한 패턴이다. 이닝 보드에 동점이 거듭된다. 하지만 결말은 뻔할 것이다. 그런데도 홈 팀은 포기하지 못한다. 지켜보는 게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막이 오른 8회 초다. 파란만장한 시간이 시작된다. (4일 대구, LG-삼성)
1사 후 신민재가 출루한다. 볼넷이다. 다음 김현수 타석 때다. 견제에 걸려 횡사한다(기록상 도루자). 그리고 잠시 후, 김현수가 담장을 넘긴다. 투런 홈런이 솔로 홈런으로 달라진 셈이다. 어쨌든 스코어는 4-3으로 기울었다.
한 방의 효과는 크다. 홈 팀이 흔들린다. 볼넷을 내주고, 내야 실책도 저지른다. 2사 1, 3루로 기회가 계속된다. 타석에는 요즘 일 잘하는 문보경이다. 2구째. 오지환이 2루로 달린다. 여기까지는 공짜다. 포수(강민호)는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혹시라도 송구가 잘못되면 추가점을 헌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카운트 싸움이 한창이다. 이 대목에서 이대형 SPOTV 해설위원이 돗자리를 깔았다. 다음에 나올 장면을 훤하게 예언한다. 작두 탄 그의 말들이다.
“2루 주자 오지환의 리드 폭이 많죠? 점점 커질 겁니다. 일부러 견제하라는 얘기입니다. 절대 견제하면 안 됩니다. 견제하려고 (투수가) 턴을 하는 순간 3루 주자가 홈을 들어옵니다. 이걸 염경엽 감독이 사인을 많이 내거든요.”
심지어 감독이 어떤 동작을 할 지도 족집게처럼 알아맞힌다. “삼성 내야는 다 알고 있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쳐다도 안 봅니다. 이럴 때 염경엽 감독이 손을 양쪽으로 벌리거든요. (2루 주자를 향해) ‘더 나와’ 그런 말이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염 감독이 진짜로 팔을 벌린다. 마치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중계석이 빵 터진다. 이대형 위원이 신났다. “지금 보이잖아요. (오지환을 향해) ‘더 나와, 그 정도로는 안 넘어오니까, 더 나와’ ㅎㅎㅎㅎ.”
이때였다. 라이온즈가 움직인다. 갑자기 유격수(이재현)가 2루로 날아간다. 얼핏 기습적인 픽오프 플레이 같다. 투수(이승현)도 재빨리 2루로 돈다. 견제구를 쏘는 동작이다. 오지환은 걸린 척한다. 일부러 걸음을 멈춘다. 런다운으로 3루 주자의 시간을 벌어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모든 게 수비의 함정이다. 공은 여전히 투수 손안에 있었다. 그 바람에 3루 주자(정주현)가 꼼짝없이 걸렸다. 홈으로 스타트했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몇 차례 왕복 달리기 끝에 횡사했다. 8회 초를 끝내는 세 번째 아웃이다.
해프닝은 8회 말에 또 나온다. 홈 팀이 2사 2, 3루를 만들었다. 안타 하나면 승부는 다시 뒤집힌다. 타석에는 4번 강민호다. 바뀐 투수 유영찬이 상대한다. 1루가 비어 있다. 쉬운 승부는 하지 않을 것이다. 풀카운트까지 실랑이다.
이 대목이다. 하필이면 중계 카메라가 또 트윈스 덕아웃을 잡는다. 화면 가득 염갈량의 모습이다. 그라운드를 향해 뭔가 신호를 보낸다. 오른손으로는 깎고, 왼손은 비껴내는 동작이다. 이걸 본 이대형 위원이 다시 웃기 시작한다. “지금도 염경엽 감독이 사인을 손으로 보여줬습니다. ‘슬라이더, 밖으로 빼라.’ 그냥 뭐, 공개적으로 사인을 줍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몇 초 뒤다. 137㎞짜리 슬라이더가 뿌려진다. 약간 높게 걸린 실투다. 강민호가 이걸 놓칠 리 없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우중간에 빨랫줄을 넌다. 주자 2명을 불러들이는 2루타다. 스코어는 3-4에서 5-4로 바뀐다. 이 경기의 최종 결과다.
염 감독은 왜 이런 사인을 반복하는 것일까. 해설자도 훤히 꿰뚫을 정도로 뻔한 작전을 말이다. 물론 이대형 위원이 탁월한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상대 팀 전력 분석이나 코치진보다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해설자들도 트윈스의 주루 문제를 비판하며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니까 중계석에서도 훤히 보이는 걸, 굳이 왜 시도하다가 실패하냐는 지적들이다.
물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어차피 예상할 수 있는 작전이다. 굳이 숨기고,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알아봐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걸 노리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주장도 있을 법하다. 알면서도 속는 게 야구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지켜보는 팬들의 심정이다. 얼마나 안타깝고, 황당하겠나. 어제(4일) 상황에 대해 각종 커뮤니티에는 비난과 비판이 빗발친다. 패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연승이 끊어진 것도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뭔가 우습고, 허탈한 모양새가 된 것은 참기 어렵다. 그런 얘기들이다.
작전은 승리를 위한 작업이다. 어떤 사령탑도 패하려고 사인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감의 영역인 것도 분명하다. 성공/실패의 결과와는 다른 문제다. 그 디테일한 과정이나 방식도 중요하다.
어떤 승리는 무게가 다르다. 벅차고, 자랑스럽고, 유난히 뿌듯하다. 패배도 마찬가지다. 더 아프고, 쓰릴 때가 있다. 그건 구성원이나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수긍할 수 없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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