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못생긴 신발이 아직도 인기랍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김성모 기자 2023. 8.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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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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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의 오즈위고(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와 크록스가 발렌시아가와 협업해 선보인 클로그, 어그X테바(데커스), 슬립온(구찌), 웨지 펌프스(샤넬).

● 뉴진스도 꽂힌 ‘아빠 신발’

일본 유명 러닝화 브랜드 아식스는 지난해 러닝화 시리즈 ‘젤 카야노14’의 일부 제품을 캐나다 디자인 스튜디오인 자운드(JJJJOUND)와 협업해 선보였다. 두툼한 밑창 위에 은색과 검은색 선들이 뼈대를 이루고 메시(mesh·그물실로 매듭을 지은 원단) 소재가 발을 에워싼 형태의 운동화다. 흔히 아식스 하면 떠오르는 신발 모양이다.

투박한 형태의 이 운동화는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품절됐다. 출시 가격은 180달러(약 23만 원)였지만, 이달 1일 현재 리셀(재판매) 플랫폼에서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나이키 한정판에 맞먹는 수준이다.

10~20대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를 중심으로 ‘못생긴 신발’들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아식스, 호카, 살로몬, 뉴발란스 브랜드의 신발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투박한 디자인이다. 전부 부피가 크고 밑창이 두툼하다. ‘아빠 신발’로 불릴 만큼 칙칙한 느낌도 있다.

지난해 글로벌 리셀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신발 중 하나는 끝이 뭉툭하고 단단해 보이는 살로몬의 트레킹화였다. 살로몬은 1947년 프랑스에서 스키 용품업체로 시작해 등산화 등 아웃도어 용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리한나와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가 살로몬을 신고 등장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물론, 등산하려고 신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 미국에선 아식스, 살로몬보다 더 핫한 브랜드가 있다. 호카다. 러닝화 브랜드인 호카는 2009년 처음 등장했는데, ‘못생겨서’ 주목받았다. 신발 바닥과 안창 사이의 미드솔(중창)이 넓적하고 두툼해 ‘광대 신발’이라는 놀림까지 받았다.

하지만, 호카의 착용감에 반한 사람들이 전도사 역할을 했다. 오래 신어도 발이 편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달리기 동호인에서 시작한 호카의 인기는 주로 서서 일하는 간호사, 식당 종업원 등으로 확산했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카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잘파세대가 호카를 선택한 이유다. 이들은 아식스, 살로몬과 마찬가지로 호카의 디자인에 반했다.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의 스니커즈 디렉터 드류 헤인스는 “편안함도 좋지만, 스타일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스타일리시하고 트렌디하기 때문에 호카를 신는다”고 말했다. 호카는 지난해 스탁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매된 브랜드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뉴발란스, 컨버스를 모두 제쳤다.

사실, ‘어글리 슈즈’ 유행은 팬데믹(대유행) 이전에도 있었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와 아디다스의 ‘이지(Yeezy)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러닝·등산화를 만드는 기능성 브랜드로 인기가 옮겨왔다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나이키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러닝화 시장은 전쟁터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밝혔다.

일러스트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땅 위를 나는 신발, ‘호카’

2009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호카 오네 오네(Hoka One One)’는 원주민인 마오리족 언어로 ‘땅 위를 날다’라는 의미다. 살로몬 브랜드 출신의 니콜라스 메르무드와 장 리크 디아르가 회사를 나와 호카를 설립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내리막 길용 슬립온’을 만들려고 했다. 산에 오를 때는 가방에 넣어뒀다가, 내려올 때 신발 위에 덧신처럼 착용하는 용도를 떠올린 것. (참고로, 당시는 ‘맨발 달리기’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이탈리아 신발 전문 제조사로 유명한 ‘비브람’의 발가락 신발 ‘파이브핑거스’가 인기였다)

메르무드는 2009년 시제품을 들고 미국에서 열린 무역박람회를 찾았다. 부스도 열지 않았는데 새로운 브랜드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한 달리기 선수가 770켤레를 구매했다. 미국 러닝 동호회에서 호카의 기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다음 해 호카는 러너 커뮤니티에서 ‘올해 최고의 러닝화’ 목록에 올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러닝화 판매점은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복도 뒤편에 호카가 담긴 상자를 숨겨두기도 했다”고 지난달 전했다.

콜린 잉그램 호카 글로벌 제품 담당 부사장은 “처음 호카를 신고 포장도로에 발을 내딛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정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며 “그냥 흉측하게 생긴 신발이 아니다. 이 신발에 강점이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2012년 호카의 진가를 알아본 회사가 있었다. 미 아웃도어 기업 데커스였다.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캠퍼스 동문인 더그 오토와 칼 로프커가 1973년 창립한 데커스는 그야말로 ‘못생긴 신발’에 꽂힌 회사다. 특이하게 생긴 신발들을 사모아 성공했다.

이들은 처음 캘리포니아 바닷가에서 서퍼들에게 플립플롭(일명 ‘조리’)을 팔았는데, 히피들이 와인 코르크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샌들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버켄스탁’이었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못생긴 신발 유행의 첫 신호를 데커스가 알아챈 순간”이라고 평했다.

아식스가 캐나다 디자인 스튜디오인 자운드(JJJJOUND)와 협업해 선보인 젤 카야노14(사진 왼쪽)와 호카 러닝화 사진. (유튜브, 호카)

● ‘광대 신발 제국’ 이룬 회사

1980년대 초, 데커스는 미 그랜드캐니언에 활동하는 지질학자 겸 가이드 마크 대처에게서 샌들 브랜드 ‘테바(Teva)’의 판매권을 사들였다. 테바는 밑창에 시계 줄을 이어 붙인 형태의 샌들이다. 대처는 물 안팎을 자유롭게 다니며 빠르게 말릴 수 있는(무좀 방지) 샌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발을 자유롭게 하면 마음이 따라올 것”이라며 테바의 기능을 강조했다.

이 ‘수륙양용’ 신발은 데커스의 판매망을 거치며 급속도로 팔려나갔고, 오토와 로프커는 이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자금을 마련했다.

데커스가 규모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다음 인수한 양털 부츠 브랜드 ‘어그(UGG)’ 덕분이었다. 데커스 창업자들은 1995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미 올림픽 대표팀이 어그 부츠를 신고 출전한 것을 발견했다. 데커스는 곧바로 1500만 달러(약 190억 원)를 투자해 어그를 인수했다.

이후, 어그는 겨울용 부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로 어그를 꼽았고, 할리우드 스타들도 어그를 즐겨 신었다. 어그는 최근까지 데커스의 주력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호카를 인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데커스는 2002년 테바와 판권 계약이 만료되자 대처를 설득해 6200만 달러(약 790억 원)에 브랜드를 아예 사버렸다. 데커스는 이후에도 신발 브랜드들을 인수했는데,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은 ‘호카’였다.

인수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호카의 매출을 고려하면 낮은 가격에 사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데커스가 호카를 인수한 2012년, 호카의 매출은 300만 달러(약 38억 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호카는 14억1000만 달러(약 1조8000억 원)를 벌어들였다. 10년 간 매출이 470배로 뛰었다. 데커스 매출에서 호카의 비율은 2017년 5.8%였다. 최근에는 40%에 근접했다. 올해 1분기, 데커스의 주력 브랜드인 어그의 매출을 추월했다. 데커스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70% 가량 뛰었다.

외신들은 데커스의 성장 배경에 ‘어글리 슈즈’ 유행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데커스는 테바와 어그, 호카 같은 ‘광대 신발 제국’을 이뤄 판매와 주가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평했다. 현재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 못생긴 신발이 인기인데, 데커스가 이를 많이 보유해 매출이 급성장했다는 설명이다.

미 블룸버그는 지난해 “호카의 흥행은 2018년 파리, 도쿄 패션 리더들의 사랑을 받은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 스니커즈 열풍과 맞물려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분석대로라면 2018년 유행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 확실히, 호카가 급성장한 최근 몇 년간 신발 업계를 주도한 것은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의 스니커즈보다 항공모함을 떠오르게 하는 ‘못생긴 운동화’였다. 최근 5년 호카의 매출은 9.4배로 늘었다.

이렇게 오래 가는 유행도 있나? 못생긴 신발은 왜 아직도 사랑받고 있을까.

데커스의 테바 샌들(사진 왼쪽부터)과 어그 부츠,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각 홈페이지)

● 못생긴 신발 선발대회

일각에서는 ‘어글리 슈즈’의 기원으로 아디다스 ‘오즈위고’를 꼽는다. 이는 질 샌더,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한 신발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때는 사람들이 오즈위고의 디자인을 기이하게 여겼지만, 이후 이러한 신발들이 결국 유행했다”고 전했다.

곧이어 등장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가 어글리 슈즈 유행을 본격화했다.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선주문이 붙었다. 발렌시아가는 이를 소량만 생산했고, 일부 백화점은 진열대에 트리플S를 두지도 못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명 디자이너+희소성’이라는 성공 방정식으로 ‘못난이’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며 “러닝화에서도 돋보이길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디자인이 도입되고 있다. 모두가 트리플S처럼 트랙터 같이 생기진 않았다”고 2018년 전했다. 2018년은 호카가 막 떠오르던 시기다.

2010년대 중반부터 명품 업계를 중심으로 못생긴 신발 경쟁이 한창이었다. 누가 더 못생긴 것을 내놓는지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샤넬은 검정과 흰색으로 디자인한 구두를 코르크 재질의 통굽 위에 얹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구찌는 슬립온의 발등에 털을 수북이 달았는데 실수로 가발을 발등에 떨어뜨린 듯한 모양새다. 이외에도 마크 제이콥스, 프라다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덜 세련된(?) 제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명품 업계의 ‘못생김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평범한 신발 회사 두 곳이 있었다. 크록스와 데커스였다. 크록스의 대표 상품은 크로슬라이트라는 고무 소재로 만든 ‘클로그’라는 샌들이다. 앞부분이 뭉툭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어글리 슈즈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길을 걷다 보면 10분 안에는 클로그를 발견할 수 있다. 가정마다 한 켤레는 있을 정도로 인기다.

명품 브랜드들은 이들과 손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크록스는 2018년 발렌시아가와 협업해 10㎝짜리 고무 통굽을 단 클로그를 선보였는데,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전 예약에서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

데커스는 더 가관이었다. 어그와 테바를 합친 ‘샌들 부츠’를 내놓았다. 샌들처럼 보이지만 발등에는 양가죽과 양모가 달려있다. 발목까지 덮는 하이탑 버전도 있다. 양모가 안감으로 된 부츠지만, 발 양옆과 발가락 부분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다리가 다쳤을 때 착용하는 보호대를 연상케 하는 신발이다. “혐오스러운 물건”, “악몽 같다”, “겨울용이냐 여름용이냐, 정체가 뭐냐” 같은 부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데커스의 전 임원인 안드레아 오도넬은 “디자이너들이 의도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신발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함과 순수함에서 출발할 뿐”이라고 말했다. 털 부츠와 샌들을 섞어 놓고 할 말은 아닌 듯하다.

이후 여러 패션쇼에 못난이 신발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각종 TV 프로그램과 소셜미디어에서 유명인들이 크고 두툼한 디자인의 신발을 신고 나오면서 유행이 번졌다.

● 못생긴 신발이 계속 사랑받는 이유

못생긴 신발의 인기가 최근까지 이어진 데에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경제적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소규모 신발 브랜드들의 흥행은 불황의 증거”라며 “값비싼 운동화가 우선순위 목록에서 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높은 금리와 잠재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올해 호카와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On)’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한 데 반해,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주가는 하락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로, 지난해 인건비와 원료 가격 등이 크게 오르면서 나이키 등 주요 신발 브랜드들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팬데믹(대유행)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온라인 신발 쇼핑몰 자포스의 뉴웰 핸슨은 “사무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난 재택근무자들이 발이 편한 신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며 “개를 산책시키거나 마트를 찾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라면 (신발의) 기능이 훨씬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헬스장이 문을 닫으면서 젊은 층이 산을 찾거나 도심을 달리는 일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최근 1~2년 사이 패션 업계에서는 ‘고프코어(Gorpcore)’라는 단어가 급부상했다. 이는 야외 활동 시 체력 보충을 위해 먹는 견과류인 고프(Gorp)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다. 일상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아웃도어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못생긴 신발의 트렌드가 명품이나 주요 신발 브랜드에서 러닝·등산화로 달라진 것도 이러한 영향이다. 못생김에도 종류가 있다.

호카 인스타그램

● “예뻐서”

여기까지는 ‘어른’들의 분석에 가깝다. 10, 20대의 반응은 단순하다. “예뻐서.”

이들은 호카나 아식스, 살로몬의 신발을 ‘못생겼다’가 아닌, ‘독특하다(남들과 다르다)’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많은 사람이 신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오히려 지루하고, 못생겨 보인다는 것이 이들의 관점이다. 젊은 층은 신발에서도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개성’이 곧 ‘예쁨’인 셈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타 브랜드와 협업하고 한정판 제품을 주기적으로 내놓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자세한 내용은 신비월드 25화, ‘나이키는 왜 역대급 재고에도 투자를 늘릴까’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102/116283352/1

미 캔자스주 위치토에 사는 라시다 로저스(28)는 나이키 대신에 아식스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그는 “남들이 다 신고 다니는 건 싫다”고 강조했다. 소화 류머티즘 전문의인 카렌 오넬은 “최근 코넬대에 재학 중인 딸이 통화에서 ‘호카를 사야겠다’고 했다. 호카가 뉴욕을 점령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물론, 모두가 나이키 대신 호카나 아식스를 신는다면 이들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WSJ은 지난해 ‘중년의 아빠들’에게 어글리 슈즈 유행에 관해 물었는데 답변이 흥미롭다. 기자가 뉴욕에 사는 케빈 스털링(64)에게 “요즘 아식스 신발이 유행”이라고 이야기하자 이렇게 반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What the hell?!)” 15년 간 아식스를 신은 마이클 퍼스(56)는 “잔디 깎을 때 신는 아식스 몇 켤레가 있는데, 패션을 생각해 산 건 아니다”면서 “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졌다니. 이러다 가격 오르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살로몬 인스타그램

● 제품도, 사업도 빛난 호카

사실, 미국의 호카 열풍에는 못생긴 신발 유행 이외에 여러 요소가 있다.

호카는 신발이라는 제품 본질에 충실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호카는 사업 초기부터 발이 편한 운동화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디자인보다는 성능을 개선하는 데 몰두한 것. 2009년 호카가 처음 등장할 때는 간결한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이 대세였다. 성능을 위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디자인을 용감하게 선보인 셈이다.

호카는 밑창 기술이 핵심이다. 두껍고 넓은 중창은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한다. 이를 통해, 오래 착용했을 때 피로감을 던다. 바닥 면도 완만한 곡선 형태로 제작해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호카의 훌륭한 밑창 덕에 좋은 기록을 낸 선수도 여럿 있었다. 2020년 미국 올림픽 마라톤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서 알리핀 툴리아무크 선수는 호카의 ‘로켓X’를 신고 2시간 27분 23초로 여자 레이스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호카의 기술력에 대한 호평도 많지만, 호카를 인수한 데커스의 사업 전략에 대한 분석도 다수 나오고 있다. 사실, 기술력으로는 아식스도 훌륭한 회사다. 아식스는 핵심 러닝화 브랜드인 ‘젤 카야노’를 개발하는 데 65년간 모은 발 모양 데이터를 충실히 활용했다.

▶동아일보 기사 “65년간 모은 발모양 데이터가 아식스 러닝화 성공비결”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40808/65641368/1

호카는 항상 시중에 수요보다 적은 물량을 풀어 ‘구하기 어려운 신발’이 되도록 만들었다. 신발의 공급을 충분히 늘리면 당장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브랜드 이미지 등 장기적인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카의 최고 판매책임자이자 임시회장인 스테파노 캐로티는 “우리는 분명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브랜드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좋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가격도 125달러에서 175달러(약 16만~23만 원)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일종의 고급화 전략을 꾀한 것. 호카는 미 최대 신발 잡화점인 풋락커에서 입점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기까지 했다. 운동화가 대량 공급되면 제품 공급과 가격을 직접 조절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WSJ은 “호카 경영진은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길게 보고 사업을 했다. 모든 소비자를 사로잡으려다 브랜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고 전했다.

호카의 판매 전략은 데커스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됐다. 2016년 데이브 파워스가 데커스 최고경영자(CEO)를 맡았을 때 회사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파워스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브랜드를 인수했고, 매장도 지나치게 많이 열었다. 재고는 쌓였고 새로운 고객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정말 잔인한 상황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캐시카우였던 어그의 매출도 정체된 상태였다.

다음 해, 데커스는 적자를 기록했는데,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회사의 저성과를 비난하며 회사의 매각을 요청했다. 데커스는 사업부를 통합하고 부진한 브랜드는 팔았다. 실적이 저조한 매장도 정리했다.

이때의 경험이 데커스가 판매 전략을 정교하게 짜는 발판이 됐다. WSJ은 “뜨거운 열기를 유지하는 방법은 불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이 아니라 불을 계속 지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분기마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에는 쉽지 않은 조언이다.

눈을 비비게 만드는 부분은 데커스가 사업 구조조정을 한 직후 내놓은 제품이다. 가장 필사적이어야 할 시기에 데커스는 어그 부츠와 테바 샌들을 합친 극단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였다. 맞다. 앞서 언급한 정체 모를 그 신발이다. 여러 회사를 인수해 어려움을 겪은 데커스가 두 브랜드를 합치는 묘책을 내놓은 것. 블룸버그는 “관심을 끌기 위한 극단적인 전략이자 기발한 마케팅 묘기였다”고 평했다. 파워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못생겼지만, 눈에 띄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우리 자신을 흔들어 깨우려는 의지 같았다”며 “테바와 어그가 역사상 가장 못생긴 신발을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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