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금 70억 원만 날리고 청산이라니…” [위기의 택시협동조합]①
택시협동조합의 시작은 2015년 서울에 처음 등장한 '한국택시협동조합'입니다. 출자금 2천여만 원을 내고 조합에 가입하면, 조합원들이 동일한 지분을 갖고 회사를 공동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법인택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일반 법인택시보다 낮은 사납금, 개인택시에는 없는 행정 지원 등으로 주목을 받아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 현재 77곳까지 늘어났습니다.
특히 대구는 현재 협동조합 택시가 법인택시 시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택시협동조합 설립 8년이 지난 지금, 업계는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나이도 70이 넘었고, 손녀 인형 하나 사줄 돈이나 벌면서 살려고 했는데.. 그걸 망친 거예요. 이사장이.."
-대구 A 택시협동조합 기사 전상재 씨
'사납금 없는 택시'로 주목받으며 등장한 택시협동조합.
경기 악화와 기사 수급난으로 침체된 택시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으로 확산했습니다.
하지만 야심 찬 출발과는 달리 이사장들의 방만 경영에 삐걱거리면서
인생 이모작을 꿈꾸던 이들의 절규가 업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 부채만 28억 원, 무너진 대구 최대 택시협동조합
한때 조합원이 285명에 달하며 대구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 달성군의 A 택시협동조합.
최근 대구시에 해산 신청을 하고 청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사장이 부실 경영을 인정, 회사를 일방적으로 청산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공식 확인된 부채 규모만 28억 원.
조합원들이 낸 출자금 70억 원도 온데간데없습니다.
조합원들은 일자리 안정자금 등 집계되지 않은 항목을 더하면 부채가 44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에 회사 경영 상황이 어려워 지면서 지난 5월부터는 조합원 180여 명 중 상당수가 임금을 못 받고 있는 상황.
조합원들은 이번 청산 절차가 채무를 조합원들에게 전가하고, 법인통장을 공개하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천정기/○○택시협동조합 비상대책위원장
"이사장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청산 절차가 진행되면서 월급도 제대로 안 들어오고 조합원들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청산 총회도 며칠 전에 통보하거나, 회계 자료 제출도 엉터리입니다. 이대로라면 조합원들은 퇴직금과 출자금은커녕 부채만 떠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겁니다."
■ 이사장 독점 경영에 '횡령, 배임' 의혹 줄줄이
문제의 발단은 이사장 개인이 조합의 경영권을 독점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조합원들은 이사장을 횡령, 배임 혐의로 고소하고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의혹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사장이 주유소에 대납해야 할 유류비 4억 5천만 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입니다.
매달 임금에서 기사들이 사용한 유류비를 공제하고 있어 체납될 이유가 없다는 게 근거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 채무를 회사에 전가했다는 의혹입니다.
이사장이 주유소에서 5억 2천만 원을 차용했는데, 이를 회사의 이름을 빌려 유용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법인택시 인수대금 편취입니다.
이사장이 2018년에 한 법인택시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약 6억 9천만 원을 지급했는데 매매 대금을 부풀려 차액을 편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해당 회사가 자회사로 편입됐음에도 자금 집행 내역과 수익 등을 단 한 차례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입니다.
달성경찰서는 지난달 25일 해당 조합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 떠나도 계속되는 고통, 출자금의 고리
조합을 떠난다 해도 고통은 계속됩니다.
달서구의 한 택시협동조합 기사로 일한 윤미혜 씨는 조합의 불투명한 운영방식을 믿을 수 없어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입 당시 낸 출자금 2천5백만 원을 탈퇴 1년이 넘도록 못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법인택시 기사로 2년간 일했던 윤 씨가 처음으로 협동조합을 알게 된 건 3년 전입니다.
가입하면 사납금이 없고, 출자금 2천5백만 원만 내면 3년 후 내 차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윤 씨는 5년간 부은 적금을 쏟아 넣어 조합에 입성했습니다.
"들어갈 당시에는 그랬어요. 3개월이 지나면 출자금을 다시 주겠다고. 녹음도 다 했었는데.."
윤 씨가 가입하고 몇 개월이 지나서 석연찮은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27만 원이었던 보험료가 갑자기 30만 원을 훌쩍 넘어갔습니다.
이유를 물었지만, 이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서로 떠넘기기를 하며 답변을 미뤘습니다.
알고 보니 조합원들과 상의 없이 사망사고 차량을 매입해왔다가 보험료가 오른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합은 모든 사항이 총회를 통해 의결돼야 하지만 조합원들과 상의 없이 운영비가 오르는 등의 일이 반복된 겁니다.
결국, 지난해 4월 윤 씨는 조합을 나왔습니다.
현재는 출자금을 돌려받기 위한 민사소송을 1년 가까이 진행 하고 있습니다.
■ 피해자만 120명, 피해액은 30억 원
윤 씨처럼 조합을 떠나서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는 대구에서만 5개 조합, 120명에 달합니다.
총 피해액은 30억여 원입니다.
원인은 조합에 가입할 때 내는 출자금.
택시협동조합을 가입하려면 평균 2천5백만 원을 출자해야 하는데 '협동조합 기본법'은 탈퇴한 다음해에 총회를 열어 출자금을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이사장들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조합을 탈퇴해도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겁니다.
윤 씨는 출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더이상 나와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일하던 곳의 이사장이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협동조합에 대해 자기도 잘 알지 못했다고. 협동조합을 2년 운영하고 나서도 조금씩 알게 됐다고. 대구시한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왜 설립을 내줘서 이런 피해자들이 생기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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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기자 (go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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