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랑 같이 살자냥…인간과 동물의 동거 고민하는 건축가들

이유진 기자 2023. 8. 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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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사람]동물과 사는 집
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조성학·박지현 대표
경기도 양평 도장리에 있는 주택 ‘브리사’의 두 고양이. 브리사 건축주 제공

2017년 일본은 반려묘 수가 처음으로 반려견 수를 앞질렀다. 그해 사단법인 일본펫푸드협회 조사를 보면, 반려묘가 952만 마리였고 반려견은 892만 마리였다. 일본 반려묘 관련 시장은 한 해 2조엔(약 18조4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고양이(네코)와 경제(이코노믹스)를 합친 ‘네코노믹스’라는 신조어가 생긴 지도 꽤 오래됐다. 반려묘 증가는 협소한 주거 공간과 맞벌이 세대 증가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양이는 개보다 작은 집에서도 키우기 용이하고 독립적인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네코부동산’도 등장했다.

한국도 이제 고양이와 인간의 동거를 위한 공간을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14년 설립한 건축사사무소 비유에스아키텍츠도 시간이 갈수록 도시와 동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됐다. 이 사무소는 도시, 문화, 사람 사이 다양한 관계 설정에 몰두하며 지금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부부와 두 고양이를 위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묘각형 주택’, 친구들이 모여 사는 서울 용산구 다가구주택 ‘후아미’, 제주 서귀포시 한적한 귤밭에 자리잡은 ‘소규모식탁’ 등이 있다.

도시 동물들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 계기는 강남구로 이사 오기 전, 종로구 서촌 사무실에 밥을 먹으러 오던 길고양이 ‘짜구’와 ‘호구’를 만나면서였다. 도시의 동물들과 관계 맺기 시작한 직원들은 함께 2021년 고양이와 건축에 관해 쓴 <가가묘묘>라는 책까지 내게 됐다. 비가 쉼 없이 내리던 2023년 6월26일, 강남구 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에서 박지현(36), 조성학(37) 대표를 만났다.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가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던 시절 사무실을 즐겨 찾던 길냥이 짜구.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제공

집집마다 고양이

―책 <가가묘묘>를 낸 뒤 달라진 점이 있나요.

박지현(이하 박): “이 책을 쓰면서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좀더 면밀하게 살펴보게 됐죠. 책을 쓰면서 저희가 지은 집에서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반려동물을 위해 만든 공간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하게 됐으니 건축가에게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의뢰하는 집이 늘고 있다는데, 체감상 언제부터인가요.

조성학(이하 조): “8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는 2015년부터?”

박: “조심스럽지만 그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두세 개씩 반려묘 관련 프로젝트가 쏟아져 들어온 것은 2018년 정도부터였어요. 집집마다 고양이가 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책 제목도 <가가묘묘>라고 붙였습니다.”

비유에스아키텍츠 조성학(왼쪽), 박지현 대표.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조: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짓는 사람들은 정형화되지 않는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런 분이 반려동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다양한 개체와 어울리고 함께 사는 데 분명 관심이 많은 사람이죠. 지금은 반려동물이 없더라도 주택 거주자라면 언젠가는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으니 건축할 때 한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가 설계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주택의 건축주분들도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이 없다고 해 아예 배제하는 설계를 했는데, 지금은 제일 많은 개체를 키워요.(웃음)”

―건축가 사이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집이 화제인가요.

박: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 같아요. 고령인구가 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례가 더 많아지니까요. 이제 동물도 일반적인 가족 구성원에 포함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 “지금은 집을 넘어서 더 다양한 공간이 생기고 있죠. 반려견 동반 카페라든지, 반려견 스테이 등을 설계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아요. 보통 카페 설계는 실내에 더 중점을 두는 반면, 반려견 동반 카페는 실외 면적이 더 커야 하고 실내 벽도 일정 높이 이상은 세척하기 쉬운 재료를 써야 한다는 얘기가 건축가 사이에서 나와요.”

고양이들이 창밖을 보고 있다. 브리사 건축주 제공

귀가 안 좋은 고양이 위해 식기를 모두 수납장에

―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건축주들이 공통으로 요구하는 게 있나요.

박: “개보다는 고양이를 위한 집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통된 요구는 드레스룸과 고양이 공간을 적극 분리해달라는 거예요. ‘사막화’라고 하죠. 고양이가 화장실에서 배변한 뒤 모래를 발에 묻히고 나와서 주변에 흘리는 것을 뜻해요. 사실 사막화를 완벽히 처리하긴 힘들어요. 최대한 모래를 털어낼 수 있는 긴 동선을 만들어주자든지 여러 아이디어를 내지만 쉽지 않았어요. 사람이 쓰는 화장실 안에 적절한 공간을 구분해주고 물청소가 가능한 화장실 바닥을 만들어 해결하기도 했어요.”

―개를 위한 집을 짓겠다는 분은 없었나요.

조: “강아지와 함께하는 분들은 큰 요구사항이 없었어요. 산책과 집 외부 활동이 중요하니까요. 고양이는 집을 같이 사용하는 가족 구성원으로 적극 인식되는 편이라, 집을 설계할 때부터 (고양이를 고려해)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박지현 대표가 그린 그림.
박지현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그린 협소주택 그림.

―기억에 남는 집이 있나요.

조: “경기도 양평 도장리 ‘브리사’는 전원에서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하는 레스토랑 겸 살림집입니다. 둘째 아이의 눈 색깔이 파란색이었는데, 파란 눈은 선천적 청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청각이 좋지 않아 그릇이 깨져도 인식을 잘 못하니 2층 주택의 모든 식기를 노출되지 않는 수납장에 넣을 수 있도록 했어요.”

박: “저는 효창동 협소주택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신혼부부를 위한 도시의 협소주택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고양이를 만나게 된 경우거든요. 효창동 주택은 1층에 꽃집이 있는데, 고양이들이 꽃집에 놔둔 흙포대를 찾아왔어요. 흙에서 쉬고 싶었던 거죠. 도시의 길고양이에게는 흙이 필요하고, 아스팔트 포장은 친화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듣고 보니 도시 건축은 인간만을 위한 게 아니군요.

박: “주택은 거주를 영위할 목적이 있고 특별히 관습화된 삶의 조건도 반영해야 하죠. 그렇지만 너무 개인화된 건물은 말 그대로 윤리가 좀 없다고 느껴져요. 건축은 공공재적 성격을 띠기에 그 위치에 어떻게 지역적 색깔을 넣을지, 건물 철학을 건축가가 조금은 제안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지금까지는 건축의 초점이 사람에게 있었는데, 도시의 동식물 생태계를 간과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 “건축주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반려묘를 둔 건축주들은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하고 공간을 제안해요. 예컨대 생태면적률(건축대장지 면적 중 자연순환 기능을 가진 토양면적 비율을 수치화한 것)이란 게 있어요. 무분별한 도로포장은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게 하잖아요. 싱크홀(땅 꺼짐)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고요. 신도시에선 생태면적률 규정이 있어요. 당장 편리하게 도시를 만들다보면 인간이나 동식물에게도 불편함이 생길 수 있어요. 도심에 흙이 있다면 고양이도 너구리도 살아가기 훨씬 좋겠죠.”

망고와 탱고가 창밖을 보고 있다. 묘각형 주택 건축주 제공

남은 묘생을 위해 배려해준 건축주

―두 분이 지은 건물 중에 ‘묘각형 주택’이 유명하던데요.

조: “경기도 용인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집인데 저희도 아주 좋아하는 주택이고 건축주와 집이 정말 멋져요. 남편분 목공 실력이 취미를 넘어 거의 프로 수준까지 이르렀고, 아내분은 조경 디자이너이고요. 집 내부뿐 아니라 바깥 정원도 설계를 염두에 두고 활발히 가꿔서 초대받아 가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아요. 고양이가 있는 정원에서 건축주가 직접 화덕에서 요리해주는 모습이 정말 멋져요.”

박: “마치 무릉도원 같달까요. 이분들은 워낙 주택에 잘 맞고, 집을 잘 쓰세요. 사계절 식물과 교류하고 수확하고, 목공 하는 남편이 실력을 발휘해 이웃에서 가구 제작을 의뢰할 정도예요.”

―작은 주택에서 강아지를 키운다면 어떤 설계를 시도하고 싶으세요.

조: “작은 주택이라면 그만큼 외부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할 테죠. 그래도 강아지라면 마당 있는 집이면 좋겠어요. 얼마나 내 공간을 강아지에게 내주고 마당을 만들어줄지가 관건이 될 것 같은데요. 밖에서 생활하는 듯한 집이면 어떨까요. 집 안에 흙이 있고, 나무도 있는.”

묘각형 주택 고양이. 묘각형 주택 건축주 제공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박: “한 건축주가 반려묘를 위해 남은 묘생을 어떻게 보낼지 배려해주고 싶어 했어요. 턱을 낮게 하는 등 나이 든 고양이를 고려한 환경을 만들었죠. 그 집이 완성되고 1~2년 뒤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들었어요.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동물이 저희가 지은 공간에서 마지막을 누렸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반려인에게도 좋은 기억이 됐을 거예요.”

―요즘은 반려동물 전용 빌라, 부동산 등에 대해서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박: “특정 동물을 일반화한 습성으로 분류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예전에 개는 수평적 공간에 걸맞고 고양이는 수직친화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떤 개는 고양이처럼 자기 영역을 중시하고, 어떤 고양이는 활동 반경이 넓을 수도 있으니까요. 동물과 함께하는 빌리지도 다양한 기획 속에 접근하는 매뉴얼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묘각형’ 주택 평면도.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제공

사람이 행복하면 동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유념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박: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 제 결론은 사람이 행복하면 동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조: “저도 동의합니다. 물론 고양이 눈높이에 맞춰 아래쪽에 통로를 만들고 고양이가 내려다볼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주는 등 공간적인 배려도 필요하지만, 주거의 쾌적성에서 내가 피곤하지 않은 집을 만들어야 반려동물도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반려동물을 돌보는 장치와 더불어 나를 챙기는 설계가 필요해요.”

―몇 달 전부터 두 분이 옆집에 살게 됐다고요.

박: “저는 개와 같이 살 계획이 있어요. 설계 때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있어 배변 패드 위치나 마당에서 뛰어다닐 때 안전펜스라든지 어느 정도 영역 구분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지었어요. 산책하고 오면 발을 씻길 수 있는 수돗가 동선 등을 배려해뒀죠.”

조: “우리 삶의 방식을 설계로 구현하고, 그 설계를 이용하면서 사니까 정말 행복한 거예요. 이제 고양이가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예전 사무실이 서촌에 있을 때부터 길냥이들에게 친숙해서요. 묘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

글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계단을 오르고 있는 고양이. 묘각형 주택 건축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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