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연기력 호평? 늘 부담은 있어요”[인터뷰]

이다원 기자 2023. 8. 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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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연기력을 칭찬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매 작품 매순간 늘 칭찬을 받는다면 무감할 수도 있다. 배우 이병헌에게 ‘연기력 호평’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아니죠. 칭찬 들으면 늘 기분이 좋은 걸요. 연기력 기대치에 대한 부담이 있느냐는 질문은 15년 전에도 받아본 기억이 나는데요. 그땐 막연하게 ‘난 언제쯤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질까’란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지금 또 그 질문을 받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름 확신을 갖고 잔신감 있게 연기를 했는데 보여지기 직전 똑같이 긴장하는 것 같아요. 내 감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 안 되면 어떡하지,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감정 이입 안되면 빠져나올텐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로 더더욱 긴장하는 것 같아요.”

이병헌은 최근 스포츠경향과 만나 신작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로 돌아온 소감, 김선영과 연기 대결을 펼친 특별한 에피소드, 엄태화 감독에 대한 애정, 건치미소 유행으로 한결 친근해진 이미지에 대한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아파트 하나만 살아남았단 설정, 재밌겠다 싶었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게 무너진 사이 나홀로 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생존기를 다룬다. 이병헌은 극 중 주민 대표로 선출되는 ‘영탁’으로 분한다.

“아파트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만화 같은 설정에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겠구나 궁금해졌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인간성에 대해 깊은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절대 선과 악도 없고 보통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이는 갈등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고요.”

클라이막스 이후 김선영과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두 사람의 연기 대결에 신명났을 법했다.

“김선영 배우가 더 신난 것 같더라고요.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촬영날 아침부터 저한테 와서 ‘어떡해요, 선배. 제가 때려야 하는데!’라고 미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 연기잖아요. 그냥 하세요’라고 했는데, 또 와서 ‘어떡해요’라고 하는 거예요. 점심 먹고서도 또 와서 ‘어떡해요’라고 미안해해서 ‘그만 좀 하세요. 한번에 안 끝내면 둘 다 힘들어요. 그냥 합시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리고 뺨 때리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태어나서 맞은 것 중에 제일 아팠어요. 순간적으로 기절했을 만큼요. 더 황당했던 건 뺨 어루만지면서 감독에게 가서 ‘오케이 나왔죠? 너무 아파’라고 했더니 이거 안 때려도 되는 신인데 왜 때렸냐고 하더라고요. 맞은 사람 입장에서 정말 통쾌했을 것 같을 정도로 세게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건치미소 유행? 신비로운 배우로 남고 싶은데”

엄태화 감독과는 첫 작업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2004)를 촬영할 때 엄태화 감독이 당시 연출부 막내였거든요. 제가 영화 감독 역을 맡았는데, 흡혈귀인 염정아가 피를 꺼내먹다가 구토하는 장면까지 원씬 원커트로 진행되는 거였어요. 33번이나 NG를 내다가 드디어 ‘오케이’ 싸인이 나와서 다들 환호성을 질렀거든요. 그때 엄 감독이 붐 마이크 들고 실제로 제 스태프 역을 맡아 영화에 출연했는데, 다시 체크해보니 붐 마이크를 거꾸로 들고 있더라고요. 엄 감독은 그 경험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막상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했다.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디렉션을 많이 주는 감독이 있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촬영을 여러번 가는 감독도 있는데, 엄태화 감독은 그 반대예요. 디렉션을 거의 안 주죠. 신인 배우들이나 처음 시작하는 배우들은 힘들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거의 디렉션을 안 주니까 막막해하는 배우들도 있을 법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 감독에게 일부러 말을 많이 걸었어요. ‘이 씬으로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거냐. 이 대사에 대한 의도는 뭐냐’ 등 막 말을 걸어서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미처 감독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얘기도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게 대화하면서 고쳐갔던 게 많았던 영화였어요.”

늘 연기력으로 입증하는 배우지만 최근엔 팬미팅에서 보여준 ‘건치미소’ 무대 장면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결 친근해졌다. ‘밈’ 현상에 대해 묻자 난처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전 아직도 신비롭고 싶은 걸요. 의도해서 그런 장면이 생긴 건 아닌데 왜 그런 게 인기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처음엔 충격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왕 나온 거 어떻게 하겠어요? 그럼 그냥 즐기자는 게 제 마음이에요.”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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