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 미국 신용등급 강등 “중장기 경제 타격 적겠지만 국가부채 경종 울려” [강인선의 자본추]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2023. 8.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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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용평가사 피치 [EPA = 연합뉴스]
지난 1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2011년 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춘지 12년만입니다. 피치는 미국 의회가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진통을 겪던 지난 5월말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한 바 있는데 이번에 전망은 ‘안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일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했다. [자료 = 피치 홈페이지]
피치는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향후 3년간 미국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미국 정부 부채 수준은 높고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20여년간 지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부채 상한을 두고 의회가 대치를 반복하는 등의 관행이 반복됐다는 겁니다. 피치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정부 부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3.7%에서 올해 6.3%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2025년에는 6.9%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GDP 성장률은 낮아질 것으로 보이는 반면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과 주정부 및 지방정부의 손실이 커질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피치는 미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AAA 등급을 받는 국가들의 평균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美 신용 등급 첫 강등된 2011년엔 무슨 일이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전 사례인 2011년으로 돌아가면 대략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S&P가 미국 신용 등급을 하향한 직후 거래일인 2011년8월8일 다우지수는 5.55%, S&P500 지수는 6.66% 하락했습니다. 코스피 지수도 3.82% 하락했습니다. 강등 이후 10거래일 간 평균 주가 하락률을 살펴보면 다우지수가 5.48%, S&P500지수가 6.32%, 코스피 지수는 7.74% 떨어졌습니다. MSCI 신흥국 지수는 6.81%, 유로스톡스50 지수는 9.1% 하락했습니다. 신흥국과 당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유럽의 영향이 미국 보다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엔 금리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는데 미국 국고채 금리가 하락한 것이 아이러니한데요. 당시에는 미국보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부각되던 시기여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이 미국 국고채로 대거 몰려들었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금리가 떨어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달러 가치도 강등일 이후 10일간 올랐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3거래일이 지난 지금 증시가 받는 영향은 당시 만큼은 큰 것 같지 않습니다.

S&P500 지수와 다우존스 지수는 강등 발표 직후 2거래일간 하락하긴 했으나 그 폭이 1~2%에 그쳤습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도 지난 1일 이후 3일까지 101~102 선을 오가는 등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2일 미국 국고채 2년물 금리는 4.88%로 전일 4.92%에서 소폭 하락했고 10년물은 4.05%에서 4.08%로 오히려 소폭 상승했습니다. 2년물 금리는 통화 정책 영향을 많이 받고 10년물 금리는 경기에 대한 예상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고채권 금리와 주가 지수에도 일부 영향은 있었지만 2011년 강등 당시 수준은 아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경기 싸이클 당시와 달라...“심각한 영향 없을 것”
증권가에서는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경기가 확장기를 달리고 있는지 축소기를 달리고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2011년 신용등급이 강등된 당시에는 OECD 경기선행지수가 하락하고 있는 축소기였기 때문에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슈가 시장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반면 현재는 OECD 경기선행지수가 오르고 있는 국면으로, 영향이 미미했다는 분석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등이 주장한 것처럼 피치의 결정이 이미 지난 사건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1년과 현재 경기 국면 차이 [자료 = KB증권]
또 2011년 신용등급이 처음 강등됐을 때 조차도 크레딧 시장 여파가 한국의 경우 3달, 미국은 2달 정도 지속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매수 기회였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중장기적 영향과는 별개로 신용등급 강등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월가에서는 나옵니다.

우선 미국 부채의 현재 상승 속도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데 더 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지메이슨 대학교 내 씽크탱크 ‘메르카투스 센터’의 수석연구원 베르니크 데 루기는 “(신용등급 하향이) 아주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우리의 부채가 폭발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30년 뒤에는 미국이 여태껏 찍어낸 국채보다 4배가량 많은 국채를 매각해야 할지 모르며 신용등급 강등은 이에 긍정적인 뉴스가 절대 아니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당장 올해 3분기에만 해도 미국 재무부는 1조 달러의 부채를 조달할 예정인데 이는 시장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며 코로나19 이전보다 40% 가량 높습니다.

다소 앞서 나간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일련의 움직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맥쿼리 그룹의 금융 시장 연구원 티에리 위즈만은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피치의 강등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달러 패권’ 움직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즈만 연구원은 “일부 국가에서는 미국 달러를 다른 국가의 통화나 가상화폐, 원자재 등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다”며 “피치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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