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황계측기 먼저 꽂으면 임자?…웃돈 주고 사업권 팔아 수억 장사[알박기 신재생①]

이승주 기자 2023. 8.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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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허가 415%↑…개시 30% 그쳐
7000배 수익 의혹 '새만금해상풍력'까지
[춘천=뉴시스] 태백 가덕산 풍력단지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연관이 없습니다(강원특별자치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이승주 임소현 기자 = #1. A씨는 토지를 매입해 풍력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풍황계측기를 세우고 허가를 받고 사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 B씨가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사업지 바로 옆에 계측기를 꽂고 허가를 받았다. A씨는 사업을 추진하며 풍향을 살펴보니 계측기를 옆으로 옮기는 것이 사업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B씨가 허가를 받아 불가능했다. 정작 B씨는 허가만 받았을 뿐 발전 사업을 개시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2. C씨는 바람이 좋은 대지를 발견하고 이곳에서 풍력 사업을 추진하려 했는데, 이미 다른 풍황계측기가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사업을 영위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이처럼 사업자 간 부지가 중복될 때는 계측기를 먼저 설치한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만큼 C씨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5일 에너지 당국과 업계 등에 따르면 이처럼 신재생 사업을 영위할 의지는 없지만 무작위로 허가부터 받고 버티는 '알박기'가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인허가 기준을 완화한 틈을 타 알박기 등 편법이 성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 허가를 받아둔 뒤 실제 사업하려는 진성 사업자들에게 웃돈을 받고 사업권을 파는 수법이다.

[신안=뉴시스] 전남 신안군 자은도 해상풍력 발전단지 전경.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사진=전남도 제공) 2023.03.06. photo@newsis.com


알박기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계측기를 우선 설치만 한 뒤 우선권을 얻어 매매를 시도하는 경우, 발전사업 허가까지 모두 받아 놓은 뒤 매매를 시도하는 경우다. 업계 등에 따르면 프리미엄은 지역이나 용량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못 받아도 수억원에 달한다. 거래액이 큰 것이 양도·양수 등 매매가 성행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유형은 A씨처럼 사업을 시작한 이들에게 접근해 인근에 계측기를 꽂은 뒤, 옆 사업 부지에 허가가 필요할 때쯤 나타나 웃돈을 얹어 파는 식이다. '부지중복'된 C씨에게도 접근해 돈을 받고 매매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조국 한국풍력산업협회 사무국 실장은 "풍력 사업을 처음 시작할때 누군가 이미 허가를 받았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풍력발전이 아닌 기상계측이 목적이라며 허가를 받아 놓은 경우도 있다"며 "이같은 행정 시스템을 악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례도 다수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지난 10년 간 신재생 사업 인허가 건수는 급증했지만 정작 사업을 개시한 비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에 따르면 3㎿ 규모를 초과한 것을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신규 허가건수는 지난 2011년 19건에서 2021년 98건으로 약 415% 증가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개시한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조영제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 사무국장은 "풍력·태양광 발전사업을 하려면 전기위 사무국에 허가 신청을 하는 게 첫단계다. 이후 절차를 진행한 뒤 마지막으로 사업개시 신고를 하면 전력 생산을 할 수 있는데, 허가를 받고도 발전 사업을 개시하는 이들은 10명 중 2~3명 수준이었다"며 "허가만 받고 정작 사업을 영위할 의지는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업권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등 이득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사업자가 풍황계측기를 무려 30여개 설치한 경우도 발견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계측기 하나를 설치하고 운영하는데 약 1조원이 든다. 자기자본을 10%만 투입하더라도 1000억원, 설사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최대주주로 운영을 했다고 하더라도 약 5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치자"라며 "물론 이 사례를 편법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규모로 봤을 때 실제 30개 모두를 발전 사업을 개시하려는 것인지 의심이 들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수법을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새만금해상풍력 비리 의혹이다. '바다 위 대장동' 논란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무려 7000배 수익을 거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조계 및 감사원 등에 따르면 전북대 S교수는 지난 2015년 6월 '새만금 해상풍력'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그해 12월 산업부에서 새만금 풍력발전 사업 허가를 받았다. 새만금해상풍력 지분은 '해양에너지기술원'이란 회사가 51% 공동대표인 S교수의 형이 49% 보유하고 있다. 해양에너지기술원은 S교수가 최대 주주다.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사업 관계도.(사진=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이후 새만금해상풍력은 지난해 11월 산업부의 양수인가를 거쳐 S교수가 실소유주로 의심되는 특수목적법인(SPC) '더지오디'에 발전 사업권을 양도했다. 자본금이 1000만원에 불과했던 더지오디는 다시 지난 6월 '조도풍력발전'에 지분 84%를 넘기며 자본금 대비 7000배가 넘는 약 720억원을 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 전주지검은 전북대 S교수와 그의 형인 새만금해상풍력 S대표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영위하려는 진성 사업자 피해가 계속되는 만큼 알박기 사업자 근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 실장은 "발전사업 허가 기준 자체가 없던 때에 허가가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알박기 형태로 사업권을 매매하는 사업자가 성행했다"며 "앞으로는 진짜 신재생 사업을 하려는 진성 사업자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oo47@newsis.com, shl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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