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핫플? BTS 성지! 을지다방 [MZ 공간 트렌드]

2023. 8. 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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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라면 되나요?”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쭈뼛대며 묻는 말에 정감 넘치는 답변이 돌아온다. “어어 되지, 하나 끓여 줘?” 분식집인가 싶은 이곳은 다방이다. 

1985년 개업한 ‘을지다방’은 오래된 노포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지금까지도 터줏대감처럼 을지로3가역 10번 출입구 앞을 지키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BTS의 사진이 손님을 맞이한다.



마음을 담아 쓴 아미의 애정 어린 메세지. BTS가 한국어 공부 열풍까지 불러 왔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전 세계 아미 모이는 을지다방

‘BTS 방탄소년단 성지!’라고 적힌 핑크색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입구에 붙은 BTS 멤버들의 포토 카드와 스티커, 화보가 간판에 적힌 성지라는 표현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다방 안에 들어서니 더 많은 BTS의 사진이 있다. 액자에 전시된 사진과 쿠션, 캐리커처 등 다양한 ‘굿즈’가 창가와 내부 벽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힙지로(Hip+을지로)의 상징과도 같은 을지다방은 처음에는 그 옛날 다방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레트로 명소로 유명했다. 지금은 BTS의 성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BTS가 다녀간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이른바 ‘BTS 성지 순례’라고 한다. 이는 BTS 공식 팬덤 아미(A.R.M.Y)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BTS는 을지다방에서 ‘BTS 시즌 그리팅 2021(BTS Season Greetings 2021)’ 포토북 화보를 촬영했다. 시즌 그리팅은 연말연시 연예인의 사진을 담은 포토북과 달력, 카드 지갑, 스티커 등 다양한 ‘굿즈’들이 포함된 세트를 의미한다. 레트로를 콘셉트로 촬영된 시즌 그리팅 포토북 화보에는 1970~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레트로한 옷차림의 BTS 멤버들이 을지로 곳곳에서 촬영한 모습이 담겼다. 그들이 촬영한 을지로의 식당, 당구장, 카메라 판매점, 시계 판매점 등은 바로 BTS 성지로 떠올랐다.

이 중 을지다방은 BTS의 단체 컷을 촬영한 장소로, 을지로 BTS 성지 순례를 하는 아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팬들이 얼마나 몰렸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BTS가 앉았던 좌석은 사진 촬영 전용 좌석으로 따로 빼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6월 BTS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2023 BTS 페스타’ 기간에는 더 많은 아미들이 이곳을 찾았다. 홍콩과 일본 등 전 세계에서 날아온 해외 팬들이 단체로 방문하기도 하고 혼자 조용히 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가는 팬도 많다.

카운터에 놓인 방명록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들로 BTS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아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팬들의 마음을 헤아린 사장님은 시즌 그리팅 촬영 당시 지민이 보자기를 머리에 두르고 촬영한 것처럼 팬들도 체험해 볼 수 있게 보자기를 구비해 뒀다. 본인이 아미라면 미리 사장님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천한다. BTS가 앉은 자리부터 쌍화차 맛있게 먹는 법을 설명해 주는 것은 물론 보자기까지 내줄 테니….

인증 샷을 찍고 라면으로 식사까지 마쳤다면 후식으로 쌍화차를 마셔줘야 ‘BTS 성지 순례–을지다방’ 코스가 끝난다. 쌍화차 안에 든 노란 노른자가 익을 때까지 살살 굴려주다가 어느 정도 겉이 익은 것 같으면 한입에 넣고 터뜨려 먹어야 그 부드러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노른자를 다 넘기기 전에 쌍화차를 한입 들이켜면 노른자가 달달함과 만나 그 고소함이 배가 된다.

을지다방의 뜨끈한 쌍화차 한 잔. 노른자는 절대 터트리지 말고 한 입에 넣어야 한다.


커피나 차를 판매하는 곳이기 때문에 냄새를 싫어하는 손님도 있어 오전 11시까지만 먹을 수 있는 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찐 다방’

예전에는 ‘다방’이라고 하면 으레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었다. 다방 마담, 아가씨, 티켓 영업 등이 떠올라서다. 그런데 요즘의 다방은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최근에는 다방의 이미지와 명칭이 조금 더 대중화됐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든 데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상호명도 한몫했다. 우선 (주)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이끄는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 이름이 ‘빽다방’이다. 즉석떡볶이 프랜차이즈 전문점 이름도 ‘청년다방’이다. 본래 다방(茶房)은 차나 음료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니 가게 이름에 다방이 붙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다.

이에 더해 레트로 열풍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휩쓸면서 카페나 문화 공간을 그 옛날 다방 느낌대로 꾸며 놓은 곳도 많아졌다. 또 다방을 콘셉트로 현대식으로 꾸며 놓은 곳이 아니라 진짜 옛날부터 운영되던 다방을 선호하는 이들도 생겼다.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50여 년간 운영한 ‘교동다방’과 근처의 ‘궁전다방’이 교동도의 필수 관광 코스로 각광받는 이유다. 을지다방 역시 이 두 다방 못지않게 오랜 세월을 간직한 ‘찐(진짜) 다방’이다. 정갈하게 정리돼 있는 하얀색의 다방 컵과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맥심이 적힌 빨간색 보온병, 천장에 달린 꽃망울 모양의 샹들리에,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거는 빨간 전화기까지 그 시절 다방 그대로 옮겨 온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오래가게 SINCE 1985’ 네온 사인이 빛난다. 1985년부터 운영해 40년 가까운 세월 운영해 온 공로를 인정받은 이곳은 2017년 서울시 오래가게에 선정됐다. 하지만 그간 이어 온 노포의 명맥이 끊길 뻔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서울시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공구거리를 포함한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가 철거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37년간 운영되던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은 영업을 종료했고 그 위층에 자리 잡고 있던 을지다방도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을지다방은 우리 생각보다 더 깊고 단단하게 을지로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근처 회사원들에게는 점심 시간 사랑방으로, 식사를 거른 지역 상인들의 아침 식사 장소로, BTS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면서….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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