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 만에 1조원이 왔다 갔다...어질어질한 2차전지 투자

김찬호 기자 2023. 8. 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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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일 주식시장 마감 후 2차전지 관련 기업 에코프로의 홈페이지 모습. 당일 종가 120만7000원이 표시돼 있다. / 에코프로 홈페이지 갈무리

[주간경향] “지금 주식 투자자라면 ‘에코프로’을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투자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은퇴한 A씨는 새로운 취미 겸 용돈벌이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주로 투자한 종목은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바이오 업계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주가가 정점을 찍은 후 고점 대비 많이 하락한 데다 전염병 유행이 조만간 또 발생할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A씨는 그러나 해당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올해 초, 보유하고 있던 2차전지 관련 회사 ‘에코프로비엠’을 모두 매도한 후, 이른바 ‘갈아타기’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올 초 자신의 에코프로비엠 매수·매도가를 보여주며 “공장에 불이 나고, 경영진 문제 등의 악재를 보고 팔았는데 이렇게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A씨가 올해 초 2차전지 관련 기업 에코프로비엠을 매수·매도한 내역/ A씨 제공

‘에코프로’ 그룹 주식을 보유하지 못해 후회하는 A씨와 달리 직장인 B씨는 주식을 보유한 기억 때문에 고통스럽다. 같은날 기자와 만난 B씨는 지난 7월 26일 상황을 두고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 전부 경험했다”고 말했다. 원래 B씨는 주식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직장에서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든 온통 ‘2차전지’ 관련주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타는 지인의 소식이었다. “친구가 에코프로 투자 수익으로 1억원이 넘는 고급차를 계약했더라”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해서 26일에 2000만원 정도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B씨가 에코프로 주식을 매수한 단가는 136만원대였다. B씨는 “단 1~2시간 만에 한 달 월급 정도가 수익으로 찍히는 것을 보고, 딱 1000만원만 벌고 나오자고 생각했다”며 “인터넷 주식 토론방에 들어가 보니, 신고가를 찍은 만큼 어디까지 더 오를지 모른다는 글에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B씨의 꿈은 채 한 시간도 가지 못했다. 장중 153만9000원까지 치솟았던 ‘에코프로’ 주식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단 몇 분 만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오히려 전일 대비 12% 넘게 하락한 113만6000원까지 내렸다. 하루 등락폭만 주당 40만원이 넘었다. 결국 이날 장은 122만8000원에 마감했다.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등락을 지켜보기만 했던 B씨는 다음날 주가가 더 폭락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손절매했다. 손실액만 500만원에 달했다. 그는 “밤에 잠을 못 자겠더라. 그래서 팔았는데 이틀 만에 다시 주가가 올랐다. 진짜 병이 생길 것 같았다”며 “다시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이 발굴한 종목에 투자해 수익을 얻은 경험은 해보지도 못하고 시장에서 퇴장했다.

B씨가 지난 7월 26일 2차전지 관련 기업 에코프로를 매수했다가 손절한 내역/B씨 제공

한국주식시장에 불어닥친 ‘2차전지’ 투자 열풍이 주가 변동성을 키우며 위험 신호를 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돈을 잃고, 투자 자신감도 잃는 ‘최악의 상황’이다. 후자에 속한 이들은 자신만 부자가 될 기회를 놓친 듯한 불안감을 의미하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호소하기도 한다. 당장 2차전지 관련 주식을 사지 않으면 돈을 잃는 것 같은 기분에 뒤늦게 투자에 뛰어드는 경우다. 그럼에도 B씨처럼 섣부른 투자로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신규 투자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의 욕망’이 주가 변동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개인 투자만으로 시가총액 30조원이 넘는 회사의 주가를 10% 오르게 하거나, 빠지게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가가 단기적 고점인지, 적정 수준인지, 장기적 저점인지에 대한 견해가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무조건 매수, 무조건 매도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주가 변동폭을 키우는 요인은 따로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차전지 투자 열풍이 불어닥친 기간 동안 시장에서는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했거나 포기한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시장의 안정을 돕는다고 알려졌던 장치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매도’다.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판 뒤 해당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다시 매수해서 차익을 얻는 매매 방식을 ‘공매도’라고 한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 폐지 혹은 개혁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이때마다 존치를 외친 이들이 주장한 대표적 이유가 ‘공매도가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서 공매도는 오히려 적정 주가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해당 논리는 이렇다. 주가가 일정 가격 이상 치솟자 손실을 줄이기 위한 공매도 상환, 즉 ‘쇼트 커버링’이 발생하며 1차로 주가가 오른다. 이를 본 개인 매수세가 더해지며 더욱 적극적으로 공매도를 청산하는 ‘쇼트 스퀴즈’가 발생해 2차로 주가가 폭등한다. 그런데 주식이 ‘신고가’를 기록하자 다시 고점에서 공매도가 대량으로 발생하며 주가가 급락한다. 이를 통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극심한 변동성 장세가 완성된다. 지난 7월 중순 이후 에코프로 그룹을 포함한 ‘2차전지’ 관련 종목의 주가 흐름은 해당 논리로 무리없이 설명이 가능하다. 지난 7월 26일 발생한 2차전지 관련 주식들의 흐름이 대표적이다.

한 차례 급락으로 개인과 공매도의 싸움이 끝난 것도 아니다. 2차전지 관련 주들은 이내 반등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고 있는 한 전직 애널리스트는 “이제부터는 매수세가 남아 있을 때 한몫 벌겠다는 욕망과 오른 주가를 폭락시켜 돈을 벌겠다는 욕망 간의 대결”이라며 “주식투자가 합리적 선택이 아닌 ‘돈 놓고 돈 먹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시총 30조원이 넘는 회사가 급락만 하는 것이 아닌 급등도 하고 있는 상황인데 너무 쉽게 전문가들이 ‘고평가’, ‘과열’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차전지 관련 주를 두고 어제는 ‘투심이 꺾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오늘은 ‘더 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상 주가 예측이 무의미한 형국이다. 오히려 투자 열풍이 만든 결과들에 집중해 향후 참고할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날의 주가지수를 ‘2차전지’가 결정한다

한국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2차전지 투자 열풍은 각종 기현상을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가지수와 개별 종목의 등락 사이에 발생하는 상관관계다. 주로 기술주들이 모여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 발견된다. 2차전지 관련 대장주로 평가받는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역시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다. 다시 문제의 지난 7월 26일 상황이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장중 956.40포인트를 터치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에코프로 역시 장중 19.03%가 오르며 역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날 코스닥 지수가 오후 2시 무렵 886.14(-5.73%) 포인트까지 급락하며 당일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시각 에코프로 역시 113만6000원(-12.14%)을 기록하며 장중 최저치로 빠졌다. 코스닥 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을 당시 상승하고 있던 종목은 거래 가능한 1586개 코스닥 종목 중 2차전지 관련주를 포함한 70여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날 지수는 2차전지, 특히 에코프로가 결정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쏠림’ 현상은 시가총액을 보면 당연한 것처럼도 보인다. 지난 8월 1일 기준, 코스닥 시가총액 1, 2위가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였다. 각각 39조9518억원, 32조1662억원이었다. 3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는 10조953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코스닥 시총 3~10위를 모두 더해도 44조가량이다. 이날 주가가 2.51%나 빠진 에코프로비엠 한 종목과 비슷한 수치다. 시가총액 1, 2위 종목의 급등락만으로 지수가 흔들릴 만큼 이들 주식의 규모가 커진 상태다.

지난 7월 18일 2차전지 관련 기업 에코프로가 전 거래일 대비 11.91% 오른 111만8천원으로 종가 기준 100만원을 돌파했다./연합뉴스

문제는 자금이 이들 종목에 쏠리며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이 투자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자 나머지 종목 주가가 횡보하거나 좋은 실적에도 오히려 하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코스닥,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을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대차 주가는 2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한 지난 7월 26일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호실적에도 주가가 하락하면 나타나는 무적의 ‘피크아웃’ 이론이 이번에도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 수급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4거래일 동안, 2차전지 주식이 만든 변동성이 극대화되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이오, 반도체 등 산업군을 막론하고 나타난다. 이로 인해 2차전지 주가 하락으로 전체 지수는 내리지만, 당일 시장에서 주가가 오른 종목 수가 내린 종목 수보다 많은 기현상이 벌어진다. 굳이 2차전지에 투자하겠다면 그 대체재가 될 주식을 적절히 나눠 담아야 한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러한 쏠림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를 두고선 의견이 엇갈린다. 시장 주도주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지속론’과 열풍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는 ‘조정론’이 맞서 있다. 각각의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속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오는 8월 11일 2차전지 대장주라고 불리는 에코프로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편입되면 새로운 상승동력이 만들어질 거라고 본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해 패시브 자금이 유입돼 주가는 다시 상승한다는 시각이다. 2차전지 관련 시장의 성장성, 각 회사의 기술력 측면에서도 여전히 투자 매력이 있다는 평가다. 반면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이들은 단기간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점, 주식 거래량이 줄고 있다는 점, 반도체·바이오 등 다른 산업군으로 투자자금이 흘러들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꼽는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개별 주가의 흐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2차전지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시장 전체로 볼 때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며 “지난달 상승 흐름이 한 차례 꺾이면서 ‘쏠림’ 현상의 클라이맥스는 통과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투자자금 ‘쏠림’ 현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 같은 진풍경만 낳는 것은 아니다. 해묵은 논쟁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바로 ‘공매도 제도의 목적이 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다.

공매도는 주가를 안정시키나, 불안정하게 만드나

지난 8월 2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지난달 발생한 2차전지 폭락 사태에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있었는지 금감원이 조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2차전지 관련 주식의 동시다발적 폭락을 공매도가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시위를 주도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아무런 악재도 없이 2차전지 관련 주식이 오후 2시 13분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대량 매도 물량이 나오며 폭락했다”며 “인위적 하락을 부추긴 세력이 있다면 결국 공매도를 이용했을 것이고, 이중엔 분명 주식을 정상적으로 대여하지 않고 공매도를 하는 ‘무차입 공매도’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엄연히 불법인 만큼 금감원이 당일 폭락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반드시 조사해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불법 공매도 조사 촉구 집회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2차전지 주식들의 등락에서 공매도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 주가 폭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데 이어 주가 폭락의 원인으로도 주목받는 모양새다. 이는 한국거래소의 공매도 통계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31일까지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는 166만539주에서 65만2195주로 60% 넘게 줄었다. 해당 시기 외국인은 에코프로 주식을 1조1552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순매수가 결국, 공매도 상환이 목적이었고 천문학적 돈이 유입되며 쇼트 스퀴즈가 발생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는 또 주가 폭등을 불렀다.

공매도 잔고가 줄었다는 건 언제든 다시 늘어날 여건이 갖춰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스닥 시총 1위 에코프로비엠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코프로비엠도 지난 한 달 사이 공매도 잔고 수량이 약 452만 주에서 209만 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그러자 에코프로비엠 공매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일, 에코프로비엠의 공매도 수량은 36만5471주였다. 이는 당일 거래량의 20.14%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날 주가는 6.85% 하락했다. 에코프로비엠의 주가가 폭락한 지난 7월 26일에도 공매도가 80만 주에 달했다. 이날 하루 약 4130억원을 공매도에 쏟아부은 셈이다.

개별 종목 공매도가 과열되자 금융당국은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을 했다. 실제로 7월 27~28일 양일간 에코프로비엠은 공매도 거래가 금지됐다. 이때도 에코프로비엠 공매도는 여전히 54만 주에 달했다. 거래대금으로 따지면 약 2185억원어치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시장조성자제도’라는 명목으로 금융투자회사는 예외로 공매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제도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인데, 에코프로비엠의 이틀간 거래량은 1100만 주에 달했다. 공매도를 통한 유동성 공급이 정말 필요했느냐, 주가 하락이 목적 아니었느냐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공매도와 주가 하락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2차전지 관련주에 투자하는 일부 개인은 주식을 팔지 않고 버티면 공매도 세력이 다시 ‘쇼트 스퀴즈’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보고도 버틸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공매도 세력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공포탄만 쏴도 개인투자자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주가가 인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을 ‘시세조작’이라고 부른다. 주로 주가를 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공매도가 촉발하는 주가 폭락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2차전지 투자 열풍이 끝나는 시점이 언제가 되더라도, 해당 시기에 공매도가 시장을 어떻게 흔들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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