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학대로 실명한 아이의…'여름방학'[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곁에서 들리던 아이 목소릴 따라 고갤 돌렸다. 지호였다. 아이답게 그냥 타봐도 좋건만, 내가 쓰는 걸까 싶어 먼저 묻던 속 깊은 아이. 타고픈 마음 혹여나 줄어들까 싶어, 얼른 타라고 흔쾌히 답했다.
까만 수영복을 입은 지호가 기다란 타원 모양 패들보드에 오르려 했다. 수월히 탈 수 있게 단단히 잡아주었다. 몸을 싣고 물살에 따라 유영하던 자그마한 아이. 열심히 노느라 물에 젖은 앞머리가, 여기 남해의 윤슬처럼 반짝거렸다.
'오늘 정말 잘 놀았으면 좋겠어.' 그날 바람은 그뿐이었다.
불과 5살 때였다. 지호 엄마는 밤늦게 유흥업소에 나갔다. 함께 사는 아저씨가 또 있었다. 이씨란 자였다. 그 시간에 유일하게 의지하고 바라봤을 사람.
그러나 돌아온 건,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잔혹한 학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며 지호 머릴 주먹으로 때렸다. 병원에 데려갔다. 돌아온 지 45분 만에 또 폭행했다. 어떤 날엔 마구 때린 뒤 팔을 꺾어 부러트렸다. 아이가 피흘리며 기절했다. 그러자 이씨는 자전거를 아이 배에 올려놓았다. 2시간이나.
때리고 방치하고. 안구 손상이 심각했고 치료는 없었다. 지호는 한쪽 눈을 잃었다. 고환도 제거해야 했다. 엄마는 아이를 방치했다. 지호가 나중에 이리 말했단다.
"엄마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정부 지원을 받으나 운영비는 턱없이 적다. 고물가에 문 닫기도 한다. 사비도 턴다. 먹고 사는 게 빠듯하니 상대적으로 밀리는 게 있었다. 이를테면 '아이들의 여름방학 추억' 같은.
그걸 넘어 '자존감'까지 영향을 주는. 예컨대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얘길 나눈다. "너 방학 때 뭐 했어? 난 비행기 탔는데." 집에만 있었다면 목소리가 작아질 테고, 마음이 움츠러들 거다. 속상하게도.
거기까지 바라본 어른들이 세상엔 있었다. 기죽을까 고민했다. 지난달 27일, 남해로 가는 차에서 곁에 앉아 있었던 이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이하 대아협) 대표와 이수진 대리, 그리고 수영 잘하는 자칭 김물개씨(가명, 대아협 기획위원)였다. 우린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공 대표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해외여행을 평생 못 다녔어요. 그런데 2016년부터 동생이 효도하기로 작정하고 보내준 거예요. 갔다 오니 다른 사람 얘기할 때 낄 수가 있는 거죠. '아, 거기? 밥이 참 별로였어' 그렇게. 그게 사람을 위축되지 않게 만든단 걸 내가 안 거예요."
그 깨달음으로 바라본 게 가장자리 아이들이었다. 이 대리가 말했다. "애들이 무료하게 집에서만 뒹굴뒹굴하는 걸 보니 맘이 그렇더라고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말고 문화, 정서,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자존감이 커질 거라고.
그래서 그룹홈 아이들 300여 명을 위한 여름휴가를 기획했다. 이른바 '얘들아! 노올자~'다. 아무렴,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아이들에게는 최고니까. 대아협이 기획하고, 구세군이 약 2000만원을 지원했다. 간식 및 저녁 식사 비용 일부는 대아협이 추가 지원했다.
하늘빛 바다에서 물놀이하고, 바나나보트며 디스코팡팡 같은 놀이기구 4가지도 맘껏 타고. 아이들 사연을 듣고 함께 맘 아파하며 여기 사장님은 절반 넘게 할인해줬다고. 사장님 부부 모두 법 없이도 잘 살 것 같은 서글서글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그날도 놀이기구 하나를 추가했는데, 얼마 드리냐고 했더니 사장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알아서 주세요. 안 주시면 안 받는 거고요."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따뜻한 세상. 주인공인 아이들도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 있었다. 깔깔 웃는 소리, 왁자지껄한 여름휴가 분위기. 그런 게 다 좋았다. 기다리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무서운 거 타고 싶어요!"(수아, 가명)
"오, 무서운 거 잘 타요?"(기자)
"네! 빨리 바나나보트 타고 싶어요."(수아)
"그런데요. 저기 상어도 들어와요?"(민호, 가명)
"음, 그럴지도 모르지요(웃음). 상어 보면 어떨 거 같아요?"(기자)
"저 상어 엄청 싫어해요. 아아, 나는 진짜 안 그랬으면 좋겠어…. 무서워 죽겠다!"(민호)
거기에 지호도 있었다. 눈이 바다처럼 예쁘게 반짝이던 아이. 다른 친구들과 쉬이 어울리진 않았으나, 지호도 물에 뛰어들었다. 홀로 노는 시간이 많았으나, 친구들 장난엔 웃음이 별수 없이 종종 섞였다. 가만히 바라보니 내게도 미소가 번졌다. 복잡한 생각이 걷어졌다. 그냥, 짙푸른 아이들이었다.
바나나보트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들은 빠지지 않으려 꽉 잡았으나, 뒤집혀서 바닷물에 빠지기도 했다. 빠지면 그만인 거였고, 웃음이 떠올랐다. 물에 빠진 형이 쉬이 헤엄을 못 치자 동생이 끌어주기도 했다. "동생이 이런 것도 해줘야 돼?"라며. 핀잔처럼 보였으나 실은 애정이었다.
"몇 살이야, 어디서 왔어." 아이들이 친해지는 데엔 한두 가지 질문이면 충분했다. 이리저리 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서먹해한 것도 잠시였고, 금세 섞여서 물장난을 치며 놀았다. 빠트리고, 밀고, 뒤집고, 웃고, 뭐라 하기도 하고. 떠들썩한 말들은 시원했고, 질서 없는 놀이는 한껏 자유로웠다. 틈틈이 들리던 아이들의 말들은 즐거웠다.
"아군, 공격! 아아아아아, 날 버리지마! 끄아아."
"이야아아아아아아, 야야 당겨! 우아악!"
"너무 짜! 바닷물 우아악, 하하하."
높은 데서 뛸 수 있었다. 조금 큰 남자애들은 뒤로 돌며 멋지게 점프했다. 멋들어진 다이빙이 끝나고, 한 여자애가 주춤거리며 올라갔다. 많은 이들 관심이 주목되자, 아이는 부담스러운 듯 말했다. "전 멋지게 안 뛸 거예요." 뭐 상관없다고, 거기 올라간 걸로도 대단한 용기라고, 다들 북돋아 줬다. 그에 힘입어 아이는 뒤돌아 뛰었다. 환호성이 터졌다.
물에 첨벙 잠겼던 아이는 위로 떠올랐다. 머리가 엉망이 된 채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놀기 좋은, 여름이었다.
일없이 아이들은 엄마, 아빠라 부르며 찾았고, 부모다운 부모는 아이들 도시락을 챙겼다. 이토록 가족이었다.
공 대표와 이 대리는 부지런히 아이들 도시락을 챙겼다. 적게 하면 모자란다고, 넉넉히도 준비했다. 남을지라도 그랬다. 불고기에 참치 샐러드에 칼집 낸 소시지에 볶음김치. 맛있었다. 순식간에 다 먹고, 컵라면도 먹었다(돼지). 아이들도 재빠르게 먹었다. 이미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귀여움). 내가 물었다.
"어, 벌써 준비 다 된 거예요?"(기자)
"네,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수아)
"저는 모자도 썼어요!"(준우, 가명)
배 꺼질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냐며, 엄마와 아빠들이 나무랐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아이들은 계곡이라도 내려가 놀았고, 우린 그룹홈 시설장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온통 애들 얘기뿐이었다. 학점이 낮아 노트북 지원이 안 된다고, 외모 신경 쓸 나이인데 치아 교정해주고 싶다고, 해외여행도 보내주고 싶다고. 앞다퉈 공 대표에게 얘길 쏟아내었다.
될 진 몰라도 얘긴 꼭 하고 싶다고, 뭐 하나라도 더해주고픈 마음. 거기에 엄마와 아빠들이 다 있었다.
시선을 고루 보내던 공 대표가 한 아이를 바라봤다. 민호(가명)였다. 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아이. 무섭다고 했다. 이 대리가 아이에게 괜찮다고 했다. 게를 잡으면 된다고. 그 약속을 기억하던 아이는, 점심을 먹자마자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쥐고 서 있었다. "게 잡으려고 준비한 거야?"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게는 밤에 나오는데 큰일이라며 다들 걱정이었다.
동심을 깰 수는 없기에. 공 대표가 바지를 걷어붙였다. 나도 바지를 걷었다. 민호에게 바다에 내려가자고 했다. 망설이는 아이 손을 꼭 잡았다. 천천히 들어갔다. 시원했다. 깊은 바다만 있는 게 아녔다. 얕아도 좋았다. 물에 들어가자 민호 손에 들어간 힘이 강해졌다. 그만큼 꼭 잡아주었다.
파도를 보지 않고 뒤돌아섰다. 뒤꿈치에 다다른 바닷물이 철썩거리며 하얗게 부서졌다. 민호는 두 발로 중심을 잡고 꼿꼿이 섰다.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하던 아이는, 짧은 순간에도 자라고 있었다. 우린 함께 돌을 멀리 던지는 놀이를 했다. 민호는 여러 돌을 골랐고, 열심히 던졌다. 돌아가던 길엔 조개껍데기가 보였다. 민호가 그걸 주웠다. 그리고 저 멀리엔 민호를 기다리는 엄마가 보였다. 민호가 자랑스레 외쳤다.
"엄마, 엄마, 이거 잡았어요! 게는 못 잡았는데 이거 잡았어요."(아이)
"오, 이거 되게 예쁘다. 우리 저 그늘에 가서 앉아 있자."(시설장)
"엄마는 미혼모였고 아이는 학대당했어요. 5살에 그룹홈에 왔어요. 처음엔 샤워기 물소리만 들어도 자지러졌지요. 길에서 음악 소리가 나면 귀를 막고 주저앉았어요. 계단도 못 내려갔어요."
그러던 아이가 이젠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춘다고. 바다에도 들어가게 된 거라고. 그게 다 '심리치료' 힘이란다. 그런데 지원이 안 돼 시설장들이 후원단체마다 제안서를 쓴다. 되기도 어렵고, 기간도 짧단다. 꼭 필요한 건데 이리 불안정했다.
지호 얘기로 이어졌다. 5살에 엄마 내연남에게 맞아 실명한 아이. 그러니 심리치료가 너무 절실한데, 8월에 끝난단다. 선생님들은 미리 걱정이었다. 6년이 흘렀어도, 한밤중에 이리 얘기한단다. "지금도 생각나요. 다 기억나요." 이 그룹홈에 심리치료가 필요한 건 지호뿐 아니라 세 아이가 더 있었다. 비용은 한 번에 20만원이다.
공 대표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저희가 지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기한은 최소 2년, 길게는 4년까지 하고요. 이리 하라고 후원금 주시는 거니까요."
너무너무 고맙다고, 선생님들은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그제야 물을 부어놓고도 못 먹어 다 불어버린 컵라면을 먹었다. 치료해주겠단 대답을 들은 뒤에야.
그날 고생했던 여자 사장님의 말에 시계를 봤다. 노는 시간이 그리 빨랐다. 초중고생은 여전히 바다에서 광인처럼 지칠 줄 몰랐다. 그룹홈에서 13년을 지냈고 이제 대학생이 된 친구가 말했다. "아, 힘들어요." 그러게, 스무 살만 넘어도 체력이 달랐다. 역으로 따지니 그런 거였다. 맘껏 놀아도 좋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고.
이 대리는 그룹홈 아이들 여름휴가를 위해 많이 애썼다. 안전 고민, 짧은 시간에 최대한 놀게 해주고픈 고민, 비용 고민. 매일 다른 그룹홈에서 물놀이를 오는데, 첫날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저렸단다.
"괜히 저 혼자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는 거예요. 이걸 자랑하고 싶었어요. 우리 애들, 이렇게 잘 논다고요."
해가 넘어가기 직전까지 놀던 아이들. 돌아오며 "너무너무 재밌었어요"라고 싱글벙글 웃던 수아. 두 볼이 잔뜩 상기돼 있던 지호. 그게 뭐라고 한참이나 빤히 보며 울컥했는지 나도 잘 몰랐다. 문득 바라본, 스마트 워치에 찍힌 심장박동수. 물놀이할 때 120~130이 넘어가며 쿵쿵거리던 기분 좋은 진동음. 아마 그날 아이들도 그랬을 거라고.
공 대표는 지호 아동학대 사건 때도 목소릴 냈었다. 동거남 형량이 징역 18년, 엄마는 6년이 나왔다.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을 대신해 떠드느라 10년이 훌쩍 흘렀다. 일이 많아 한 번도 안 쉬었다. 여름휴가는 지난해 처음 가 봤단다. 동해로, 7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 고성까지 갔다고. 그가 구세군 직원에게 하는 말을 보니,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겨울엔 스키, 보드 캠프 운영하는 거예요. '나 스키 타 봤어', 자존감 향상되는 거잖아요."
벌써 다음 겨울방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올, 새하얀 입김이 보이는 듯했다.
에필로그(epilogue).
찬란한 광경들이 많았으나,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바다에 떠 있던 작은 보트. 중학생 형들이 타고 놀고 있었다.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작은 아이가 말했다.
"저도 타고 싶어요."
형들은 아이를 가운데 자리에 태워줬다. 노를 저으며 여기저기 다니게 해줬다. 아이는 신나 보였다. 그때였다. 물속에 있었던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와아, 배를 뒤집자, 우리가 뺏자"하며 장난쳤다. 타고 있던 작은 아이가 불안해했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중학생 아이가 말했다.
"뒤집으면 안 돼! 애기 있어."
둘 다 아이인데, 조금 더 컸다고 더 작은 친구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보다 더 큰 어른인 우리에게도 말하는 거였다.
우리가 잘 크도록 부디 지켜달라고.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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