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2%p 시대인데…대출 놓고 정부·한국은행 엇박자 [와이즈픽]
또다시 대출 규제 완화 나선 정부
한마디로 역전세난 우려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지난 2021년 9월에 최고가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년 사이 전셋값이 크게 떨어져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전세 보증금 반환 용도에만 한해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섰다.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금융위원회는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금 반환이 지연되거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불안해하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도록 하기 위해 한시적 대출 규제 완화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세금 반환이 어려워진 집주인에 대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DSR은 모든 금융권의 대출 원리금을 따지지만, DTI는 주택담보대출 이외 다른 대출은 이자 상환분만 반영하기 때문에 더 느슨한 규제로 인식된다. 대출 금액은 보증금 차액 안에서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후속 세입자가 당장 구해져서 전세금 차액분만 대출받으면 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에도 완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된다. 역전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되도록 폭넓게 지원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시장에선 '갭투자' 악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은 늘 정부보다 앞섰으니 이번에도 투기 세력이 정책의 빈틈을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이번 대출이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대출금을 돌고 돌리면 하나하나 추적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정부는 이번에 또다시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섰다. 거품이 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에게서 부동산 시장 상황 보고를 받고 "연착륙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대출 규제" 요구…다시 급증한 가계부채
곤란한 건 역시 한국은행이다. 지난 13일 4회 연속 3.5%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금통위원들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뿐만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했다. 정부를 향해 대출 규제 강화를 요구한 것이다. 금리 동결 이후 한국은행에서 가계부채 축소 방안을 담은 보고서까지 냈는데 핵심은 DSR 규제를 강화하고 전세보증한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반대로 '완화'를 선택했다.
실제 정부의 규제 완화로 주춤하던 가계대출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 3,000억 원. 전달 보다 5조 9,000억 원 늘었다. 잔액 기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6조 4,000억 원의 증가 폭을 보였던 2021년 9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3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다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결과이다.
가계대출이 전체적으로 급증한 것은 예상대로 주택담보대출 증가 때문이다. 6월 은행권 주담대 증가 폭은 7조 원에 이른다. 2020년 2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개별 주담대는 물론 정책모기지, 전세대출, 집단대출 등 모두 항목이 늘었다. 이 가운데 정책모기지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대출 상품이다. 정부가 정책 모기지를 통해 하방 압력을 받던 부동산 시장을 강세장으로 돌려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금리차 2%p…더 좁아진 한국은행 선택지
이러기엔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 미국이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p 더 올렸다.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폭이다. 게다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번에 금리 인상을 발표하면서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3.0% 올라 시장 전망(3.1%)을 밑도는 등 인플레이션 완화 움직임을 보인 데 대해서도 "딱 한 번 좋은 지표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강한 수준으로 이어온 긴축 기조를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미 금리차는 최소 올해까지 유지된다는 의미다. 상황에 따라선 더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이전보다 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달 24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 추가 인상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는데 하반기 경기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금융 위기 가능성까지 남아있어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4회 연속 금리 동결을 하면서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진 결과이다. 이미 예상되었던 상황이다.
정부는 불안보단 안정적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주식·채권시장은 견조한 투자수요가 지속되고 있으며 단기자금시장 금리도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자리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함께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경제·금융 수장이 함께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최대 관심사인데 어떤 선택을 해도 크게 놀라울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선택지가 점점 좁아져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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