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실패해도 난제 도전"…'허준이 펠로우' 3인의 포부
지난달 문을 연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의 첫 '허준이 펠로우' 3명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연구로 수학계 리더로 자리매김할까요.
● 라준현 허준이 펠로우 “많이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과정을 거쳐 진보하는 거니까요”
수학 연구를 하면서 거의 매번 막히는 부분과 마주하고 머리를 싸매요.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거의 다 실패하죠. 처음엔 들인 시간이 아깝고 심적으로도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까 지금은 ‘자주 있는 일이야. 어쩔 수 없지’ 하고 받아들여요. 다음에 다시 해결해보자고 생각하지요. 성공하기 전엔 다 실패지만 그것이 또 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우리가 사는 시공간을 잘 이해하고 싶어 유체와 고분자 물질, 우주와 물질계 등을 편미분방정식으로 설명하는 편미분방정식을 연구해요. 세상과 수학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어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하거든요. 편미분방정식은 각각의 변수들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변화량을 볼 수 있는 방정식으로 연구를 통해 예측 모형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어요.
박사과정 때 통계역학적 방법을 활용해서 유체역학 문제를 해결했어요. 박사과정 때 유체에 고분자 물질이 녹아 있을 때 유체의 속도를 설명하는 방정식의 부분적인 해를 찾았지요. 모든 순간의 해들이 유체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해를 찾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찾다가 고분자의 분포함수의 평균값만 미분가능하면 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이외에도 유체에 고분자 물질을 약간 넣으면 송유관과 유체 사이 마찰력이 줄어 난류가 거의 생기지 않고 유체의 속도를 높인다는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편미분방정식 모형을 만들어 수학적으로 증명했어요.
앞으로 학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어요.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인 피터 콘스탄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님에게 배운 것을 후배 수학자와 나중에 생길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요.
콘스탄틴 교수님은 제게 ‘시행착오와 실패를 포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어요. 정기적으로 연구 결과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제가 아무리 사소한 아이디어를 가져가도 주의 깊게 들어 주신 건 물론 미처 생각지 못하고 빠트린 부분을 말씀해줘 논문 속 결론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어요.
● 박현준 허준이 펠로우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연구를 계속 할 거예요”
저는 연구가 더 나아갈 부분이 보이면 완전히 꽂혀 몰두하는 편입니다. 풀고 싶은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이 방법을 이용하면 이 문제로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새로운 도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지요.
대학 시절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수리과학부로 전과했어요. 대학교에 들어와 공부해보니 물리보다 수학이 더 제게 맞았습니다. 대학원 1학년 땐 밤을 자주 새울 만큼 공부가 쉽진 않았습니다.
한 줄 한 줄은 따라갈 수 있는데 전체 내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갑자기 전체적인 구조가 이해되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때 정말 짜릿했고 ‘이게 대수기하학의 묘미구나’ 하고 느껴 지금까지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어요.
저는 4차원 다양체 위에 있는 기하학적 대상의 수를 세는 불변량들을 연구해요. 2022년 곡면의 수를 세는 불변량을 올바르게 정의하는 법을 제시했는데, 신기하게도 밀레니엄 수학 7대 난제인 ‘호지 추측’과 연결점을 발견했어요. 또 4차원에서 기하학적 대상을 세는 불변량들이 있는데 그것을 계산하는 여러 가지 도구를 개발했어요.
전 하나의 문제를 푸는 것보다 그것과 관련한 모든 수학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문제만 풀면 더 빨리 풀 수도 있겠지만 넓고 깊게 연구해 다양한 도구들을 개발하면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니까요.
수학 연구에 ‘공부, 연구, 논문 작성, 수학자와 교류’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보는데요. 네 단계를 모두 잘하는 수학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각 단계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지요. 전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에서 수학자와 교류를 많이 해서 대수기하학에서 제가 하는 분야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요.
6월 20일부터 진행된 워크숍을 주관했는데, 해당 문제에서 그 방법이 통할지, 안 통할지 확실치 않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너무 즐거웠어요. 워크숍에서 생긴 아이디어들을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에서 풀어나가려고요.
● 최인혁 허준이 펠로우 “수학 발전에 도움주면서 수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싶어요”
‘좋은 수학’으로 다른 수학자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진짜 의미 있는 연구라면 연구하는 사람이 불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연구하는 데 있어 좀 괴로울 수도 있지만 푼 사람도 그 결과를 듣는 사람도 재밌어 하고 더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연구가 모여 좋은 수학이 되는 거 같아요.
저는 KAIST에서 물리학과, 수학, 생명과학 이렇게 총 세 개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서 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 전 여러 전공을 탐색할 기회라고 생각해 한 선택이었지요. 그중 수학을 공부할 때 가장 성취감을 느껴 수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대학원 세부 전공은 대학교 3학년 때 새로 부임한 백형렬 KAIST 교수님의 위상수학 특강을 듣고 선택했어요. 풍경을 스케치하듯 위상수학의 대상을 그림으로 설명해주셨는데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돼서 백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동일하게 위상수학과 쌍곡기하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석박사 과정 때 확률론 방법을 이용해 1982 필즈상 수상자 윌리엄 서스턴이 만든 추측의 일부를 해결했어요. 1970년대에 나온 ‘서스턴의 추측’은 쌍곡공간 안에서 무작위 행보를 했을 때 평행이동하는 움직임이 많은지 어떤 점을 중심으로 도는 움직임이 많은지 묻는 문제예요.
무작위 행보는 매 순간 무작위로 움직임을 결정해 움직이는 것으로 수학자는 이 움직임이 공간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찾아요. 저는 무한대인 쌍곡공간을 유한대로 바꿔서 반지름 안에 들어오는 움직임만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반지름을 극한으로 보냈을 때 두 움직임 중에 어떤 움직임이 많은지 비율의 추이를 살펴봤어요. 그랬더니 평행이동이 훨씬 많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저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수학자가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아요. ‘우리가 새로운 걸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허준이 펠로우라는 자리가 필요하다 생각해서 지원했죠.
허준이 펠로우로서 수학 발전에 도움을 주거나 대중과 수학 사이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생 때 만화를 연재한 것도 많은 사람에게 수학을 쉽게 알리려는 일종의 노력이었습니다.
● 이래서 '허준이 펠로우'로 선정했다
세 명의 허준이 펠로우는 어떤 부분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은 걸까요.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의 공식입장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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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하 기자 cown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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