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평 '스마트 팩토리'에서 제조공정 혁신 인재 키운다
지난 7월 11일 국립 창원대 스마트제조융합전공(학부)과 스마트제조융합협동과정(대학원)이 있는 82동에 들어가자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가 보였다. 면적이 1000m2에 달하는 스마트 팩토리는 나노공정실, 로봇 적층제조실, 3차원(3D) 프린터실, 메이커아지트 제작실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강의실에서 얻은 지식과 아이디어를 직접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이었다.
창원대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은 2021년 처음 신입생을 모집한 신생학과다. 2019년 정부는 창원국가산업단지를 포함해 전국 15개의 산업단지를 스마트산업단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산업단지 내에 있는 공장들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스마트산업단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전체 공정 과정과 접목해 효율적인 생산과 관리가 가능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비뿐만 아니라 인력이 필요했다. 공장에 들어가는 각종 ICT 기술을 연구하고 물류의 흐름과 네트워크 등 빅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인재. 창원대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신설됐다.
● 응용 분야 무궁무진한 미세 패턴 정렬 기술 개발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은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았지만 창원대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4단계 BK21 스마트공장 교육연구단의 지원에 힘입은 교수진과 스마트제조융합협동과정 대학원생들의 활약 덕분이다.
지난 봄 조영태, 김석 교수팀은 정렬 마크없이 미세 패턴을 정확하게 정렬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4월 1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했다. (doi: s41467-023-37828-8)
미세 패턴이란 말 그대로 아주 작은 패턴이다. 100만분의 1m인 마이크로미터, 10억분의 1m인 나노미터를 단위로 하는 미세 패턴은 대표적으로 반도체 기판 위에서 볼 수 있다. 또 물에 젖지 않는 초발수 필름이나 위조방지 기능 필름에도 표면에 미세 패턴이 형성돼 있다.
같은 미세 패턴을 연속해 찍기 위해서는 보통 원판을 먼저 제작한다. 반도체에서는 석영을 가공해 만든 포토마스크가 그 역할을 한다. 원판에 미세 패턴을 그려 넣은 후 이 원판으로 여러 장의 필름에 패턴을 찍는 것이다.
미세 패턴이 찍힌 커다란 필름을 갖고 싶다면 여러 장의 필름을 이어 붙여야 한다. 그동안은 ‘정렬 마크’를 사용했다. 미세 패턴이 찍힌 필름 꼭지점에 마크를 새겨 넣은 뒤 마크와 마크가 정확하게 포개지게 필름을 붙였다. 그런데 기존의 정렬 마크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필름을 위아래로, 좌우로 붙이면 붙일수록 정렬 마크가 가려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두 장의 필름을 좌우 혹은 위아래로 붙인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정렬 마크는 2개다. 필름지에 그려진 정렬 마크 2개가 포개지게 붙이면 된다. 거기에 한 장의 필름을 다른 방향으로 붙여보자.
세 장의 필름지가 니은(ㄴ) 혹은 기역(ㄱ)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2개 정렬 마크 중 하나는 앞서 포개어진 상태다. 남은 하나를 이용해 수평, 수직을 맞춰 제대로 이어 붙이려고 해도 아주 미세한 오차가 발생한다.
“저희 연구팀에서는 미세 패턴 필름을 이어붙이는 과정을 ‘108배’라고 불렀어요.”
조 교수는 2018년부터 넓은 면적의 초발수 필름을 만드는 산업통상자원부 과제를 수행했다. 이때 길이 120cm, 너비 90cm의 초발수 필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미세 패턴 필름은 대부분 가로세로 10cm 크기로 제작됐다. 가로 방향으로는 12개, 세로 방향으로는 9개, 그래서 총 108개의 필름을 이어 붙여야 했다. 그 과정이 숙련된 연구원들에게도 고되어 불교에서 행해지는 108배에 비유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108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했다. “컴퓨터 모니터나 TV를 휴대전화로 찍어본 적이 있다면 어떤 패턴을 본 적 있으실 거예요. ‘모아레’ 무늬라고 하죠.” 모아레 무늬란 물결 모양의 간섭 무늬다. 모니터나 TV의 해상도를 만드는 픽셀에 주기적인 미세 패턴이 있고 휴대전화 카메라에도 형상을 인식하는 장치에 미세 패턴이 있어 두 패턴이 겹치면서 기하학적인 모아레 무늬가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이런 모아레 무늬를 활용해 정렬 마크없이 미세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세 패턴이 새겨진 필름과 필름을 잘못 이어붙였을 때에 모아레 무늬가 생성된다는 점에 착안해 모아레 무늬를 통해 미세 패턴의 정렬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이뤄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틀어졌는지까지 알 수 있는 기술이다.
● 지역에서 시작해 세계로 향하는 ‘글로컬’ 인재
“공동연구를 위해 여러 대학에 출장을 가는데 이곳 창원대 스마트제조융합협동과정만큼 연구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 없습니다.”
박사과정 3년 차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출판 논문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김우영 스마트제조융합협동과정 연구원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로 연구 인프라를 꼽는다.
미세공정 연구는 자외선 파장대역의 빛이 없는 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스마트 팩토리 1층에 있는 나노공정실이 그런 완벽한 환경이었다. 나노공정실 창문 밖으로는 노란 빛이 새어나왔다. 공기 중에 미세먼지가 극히 적고 온습도가 철저하게 관리되는 클린룸에 자외선이 차단된 등을 설치해 만들었다.
“지역에서 시작해 세계로 향하는 ‘글로컬(global+local)’은 처음부터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을 설명하는 단어였습니다.”
조 교수는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이 지역 특화 산업과의 상생을 위해 개설됐지만 결코 지역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산업을 이끄는 연구와 그 연구를 하는 연구자는 어디에 있든 세계 유수 대학, 연구자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미세 패턴 공정 연구도 미세 패턴 가공 분야의 대가인 니콜라스 팡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홍콩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협력하고 있다.
창원대 스마트제조융합전공은 2024학년도 입시부터 작년보다 10명 더 많은 40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올해 4월, 교육부가 일반대학 첨단 분야 학과의 입학 정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대학원인 스마트제조융합협동과정에서 지난 3년 간 꾸준히 국제적인 연구 성과를 낸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마트산업단지 조성 프로젝트는 전국 15개 산업단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창원시와 맞닿은 경남 밀양시에서도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나노융합산업단지를 준비하고 있다. 조 교수는 “미래 4차 산업을 대비한 대학 교육의 혁신이 시작됐다”며 “스마트제조융합전공에서 기르고 배출하는 인재들이 경상남도의 내일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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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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