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풀어” 농담 던졌다가 징집 5년…‘웃음’ 지워버린 나라, 그가 한 복수는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4] 밀란 쿤데라 ‘농담’
단 한 마디 ‘농담’ 때문이었습니다. 여학생에게 보낸 엽서에 적은 한 마디였습니다.
농담 때문에 스무 살 주인공은 대학에서 퇴학을 당합니다. 학교를 가지 못하니 군 복무 영장이 나옵니다. 끌려가보니 병영이 아닌 ‘지하 탄광 갱도’였습니다. 원래 2년 복무였는데 자꾸 늘어나 5년을 보냈습니다. 농담의 대가 치고는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 ‘농담’ 이야기입니다. 40년간 노벨상 후보였던 쿤데라가 최근 만 94세로 타계하자 전 세계가 애도했지요. 쿤데라 소설은 이처럼 늘 예찬과 감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쿤데라 책은 고국 체코에선 20년간 독서와 유통이 금지된 책이었습니다. 그의 저작 중 가장 논란이었던 금서 ‘농담’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주인공 루드비크, 그가 마음을 품었던 여고생 마르케타, 또 루드비크를 퇴학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학교 리더 제마네크, 그리고 훗날 제마네크 아내이자 루드비크 정부(情婦)가 되는 헬레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체코 어린 학생들은 공산당이 주입한 이상한 열기, 무조건적 심오한 이념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시대정신은 유머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사라진 시대였습니다. 말과 글에 해학이나 아이러니가 첨가되는 건 반동으로 여겨졌습니다.
여학생 마르케타도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농담을 절대 이해 못하는 치명적 성격”(52쪽)이었죠. 너무 예뻐 모든 남학생들이 좋아했지만, 마르케타는 경직돼 있었고 학교 일을 늘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주인공인 남학생 루드비크는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그래서 마르케타에게 엽서 한 장을 씁니다. 그런데 그 엽서는 루드비크 인생 전체를 붕괴시킬 폭탄이었습니다.
여기서 낙관주의란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것이란 무비판적 낙관과 경직된 사고’를 뜻합니다. (또 당초 카를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류의 아편으로 표현한 바 있었는데, 이 유명한 말을 패러디한 문구이기도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루드비크가 엽서에 적 저 농담은 “마르케타, 긴장 좀 풀어”란 뜻이었죠.
그런데 엽서를 확인한 마르케타는 이 농담조차 진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학내 공산당 위원들도 이걸 농담으로 수용하지 못합니다. 공산당의 소중한 정신을 마약(‘아편’)으로 봤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루드비크의 농담이 체코 근로자 전체를 모독했다’고 판단합니다.
여기까지가 소설 초반부입니다. 이야기는 이제 기상천외하게 전개됩니다. 일단 학교 리더 제마네크가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몰아갑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친이 사망했지만 가볼 수 없었습니다. 합법적 복무기간은 2년. 하지만 군내에는 ‘그럴 만하다고 여겨지는 만큼 전역을 연기시켜도 된다’는 불합리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루드비크는 무려 5년을 복무합니다. 복무가 아니라 사실상 복역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루드비크는 전역하고 우여곡절 끝에 연구원이 됩니다. 그러다 우연히 15년 만에 고향에 갑니다. 그는 호텔에서 나이가 비슷한 한 30대 여성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호텔 프론트 관리인은 그 여성이 불러주는 이름을 숙박부에 천천히 적고 있었습니다. ‘헬레나 제마네크, 헬레나 제마네크···.’
루드비크는 직감합니다. 헬레나란 이름의 저 여인이, 15년 전 자신을 퇴학시키고 오지로 보냈던 제마네크의 현재 와이프라는 것을요. 루드비크는 ‘침대’에서 헬레나를 굴복시켜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기로 다짐합니다. 그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쿤데라 소설은 1968년 금서로 지정됩니다. 왜일까요.
쿤데라는 ‘농담’ 발표 즈음에 체코 작가동맹 회의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연설의 그의 운명을 결정하지요.
당시 작가동맹 회장은 J. 헨드리흐란 공산주의자였습니다. 헨드리흐는 “공산당에 대한 작가들의 충성심이 이전보다 약해졌다”라고 말하고 다니며 예술인의 반감을 샀습니다. 그러나 체코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위험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① “제(밀란 쿤데라)가 알기로, 자유를 언급하면 화를 내고, 사회주의 문학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면서 항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J. 헨드리흐)이 있습니다. 모든 자유에 한계가 있다는 말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 한계는 지식의 상황, 편견의 규모, 교육 수준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새로운 진보의 시대도 자체의 한계에 의해 규정된 적이 없었습니다.” (28쪽)
② “사회주의 문학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똑같은 해방을 달성하지 못하는 한 긍정적인 의미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계를 초월하기보다는 옹호하는 데 더 굳건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치 및 사회 상황이 정신적 자유에 관한 여러 가지 제약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29쪽)
공산당 예술계 수장을 면전에 두고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쿤데라는 교수직에서 쫓겨납니다. 책 출판 권리도 박탈 당합니다. 또 무엇보다 당에서 제명되면서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산당이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할수록 쿤데라의 세계 독자는 늘어만 갔습니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도 탄압과 명성은 비례했으니까요.
쿤데라의 책은 그로부터 약 20년 후인 1989년 체코 공산정권이 붕괴되면서 금지도서 목록에서 해제됩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쿤데라는 세계적인 노벨문학상 후보로 도약합니다.
1990년대 한국 대학생들이 밀란 쿤데라를 특히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2000년대 학번인 저로서는 아무리 쿤데라의 문장을 탐닉하고 옛 논문을 검색하더라도 당시 감정을 영원히 피부로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1990년대 당시의 대학생이 쿤데라 문장을 읽고 전율하며 느꼈던 감정과 2000년대 이후 학번이 쿤데라 문장을 좋아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니까요.)
그래서 ‘서울대 국문과 95학번’인 신형철 문학평론가(현 서울대 영문과 비교문학 전공 교수)와 잠시 쿤데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2023. 7. 26. 통화)
◎ 사실 밀란 쿤데라가 갖고 있던 장점과 위험을 동시에 감지한 건 저보다 조금 앞선 선배 세대였다. 앞세대 선배들은 ‘전체’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체제 안에서 생겨나는 부작용도 대의를 위해서 생겨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그런 양가적인 마음이었다. 그래서 몇 년 선배들은 후배들이 쿤데라 책을 읽고 있으면 ‘무슨 이런 작가를 읽고 있느냐’고 한 소리 하기도 했다.
◎ 그런데 쿤데라가 그것을(‘전체는 개인에 우선한다’) 신랄하게 까뒤집고 냉소하니까 대학생 독자들은 통쾌해 했던 거였다. 물론 그런 쿤데라의 소설을 얄밉게 느낀 사람도 있었고, 때로 당시 상황을 우울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는 서로 거리가 먼 사이였지만 당대 한국 독자들이 느끼는 두 사람의 상징적 위상은 비슷했다. 쿤데라와 하루키가 말하고자 한 건 ‘전체 대 개인’이었으니까. 쿤데라가 한국문학이 결핍돼 있던 철학적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작가였음은 분명하다.
민음사에 확인을 요청해보니 쿤데라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00만부, ‘농담’은 1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됩니다. 특히 ‘밀란 쿤데라 전집’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나라도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독자의 쿤데라 사랑이 대단히 컸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는 루드비크에게 완전히 빠져듭니다. 두 사람은 결국 관계를 맺습니다. 하지만 루드비크는 이 모든 복수의 무의미성을 깨닫고 헬레나와 이별하기로 결심합니다. 실연 당한 헬레나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힘든 마음에 독약을 입에 털어넣습니다.
하지만 헬레나가 삼킨 약은 다량의 독약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량의 ‘변비약’이었죠.
밀란 쿤데라는 헬레나가 고통받는 저 비극적(?) 장면을 유쾌하게 묘사했습니다. 루드비크는 헬레나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독약이 아닌 변비약을 삼킨 헬레나는 화장실에서 발견됩니다. 헬레나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루드비크에게 제발 저쪽으로 가라고 절규하지만,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루드비크는 혹시라도 헬레나가 잘못 될까봐 자꾸만 헬레나의 팔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며, 올해 들어 가장 크게 웃었습니다. 소설 500~510쪽.)
이 장면은 밀란 쿤데라의 단순한 기교만은 아닐 겁니다.
주인공 루드비크가 엽서에 적은 한 마디로 마르케타를 웃게 만들려 했던 것처럼, 밀란 쿤데라는 이 책 한 권으로 세계 전체를 한 번 크게 웃기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 ‘농담’ 한 권 전체가 한 편의 ‘농담’이었던 셈이고, 쿤데라는 이 책을 통해서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엄숙주의에 거대한 어퍼컷을 제대로 한 방 꽂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아꼈던, 밀란 쿤데라의 문장 하나를 공유하며 글 맺습니다. 쿤데라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탐하는 이들이라면 영원히 기억할 문장이겠지요.
“아름다움이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마지막 승리다.”(‘소설의 기술’ 195쪽)
마치 밀란 쿤데라 그의 문학 인생을 즙으로 짜낸 듯한 문장이란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일까요?
쿤데라 문장을 읽는다는 건 세계 전체와 호흡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결국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의 관에 덧씌워진 찬사의 질량을 잴 수 있다면 전세계에 출간된 그의 종이책 무게 총량보다 무거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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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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