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달다방엔 문턱이 없다…누구도 배제 않는 세상을 꿈꾸며
시민사회 숨은 조력자 이상엽과 장애인권운동 활동가 박옥순
“ᄆᆞᆫ 사름(모든 사람)은 날 때부떠 자유롭곡(고), 존엄ᄒᆞ곡, 펭(평)등ᄒᆞ다. ᄆᆞᆫ 사름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안ᄒᆞ곡(않고)….”(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가 제주어로 다시 쓴 ‘세계인권선언’ 1조와 2조)
차별은 선언만으론 물러서지 않았다. 차별 앞에 버티고 선 사람들이 서로의 팔을 잡아 이어질 때 차별도 끊지 못하는 촘촘한 스크럼이 짜였다. ‘선한 연결의 베이스캠프’를 꿈꾸는 삼달다방(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서 지난 7월22일 경쾌한 노래가 연결을 보탰다. 섬마을의 습한 저녁이 쨍하게 들썩였다.
연결의 베이스캠프
“옛날 임금이나 지금 대통령이나 왜 그렇게 우리의 노동시간을 늘리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다고 우리가 행복해질까요?”
그 말을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받았다. 노래가 항의했다.
“기업도 정부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불안정 노동과/ 탄력적 노동을 하란다/ (…) 그래야만 기업이 산다/ 그래야만 너희들이 산다/ 아 아 착각하지 마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조성일 2집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관객들이 몸을 튕기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수가 다시 말했다.
“제주에서 4·16 행사를 지금까지 마음 모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데요, 기억하겠다고 다짐한 어른들은 점점 사라지는데 그 빈자리를 학생들이 지켜가고 있어 정말 고맙고도 미안합니다. 오늘 같이 노래하자고 초청했습니다. 친구들, 나와주세요.”
제주의 대안학교인 ‘볍씨학교’와 ‘보물섬학교’ 학생들이 와르르 무대로 나갔다. 무대를 가득 채우며 “내려치겠어 힘껏 커다란 망치가 되어”(조성일 1집 ‘망치와 칼날’)를 ‘힘껏’ 불렀다.
다락까지 가득 채운 60여명의 관객 사이를 오가며 ‘무심’(삼달다방에선 나이 등 위계가 드러나지 않는 활동명·별명이나 존칭을 뺀 이름을 사용) 이상엽은 공연을 지원하고, 무대와 객석을 살피고, 사진을 찍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다가도 부엌에서 가수와 연주자들 먹일 음식을 준비했다. 그는 이틀 동안 서울과 경기 파주에서 북콘서트를 마치고 이날 아침 일찍 제주로 돌아와 조성일의 콘서트를 준비했다.
2012년 4집 음반을 끝으로 14년간의 ‘꽃다지’(민중음악 그룹) 활동을 정리한 성일은 “다친 성대”와 “음악적 한계”를 짊어지고 그해 제주로 이주했다. 감귤밭에서 일하고, 어린이집 차를 운전하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하면서 삶과 음악의 새길을 모색했다. 집회 현장 대신 생활 현장에서 제주의 문화예술인들과 협업하며 “전엔 사용해본 적 없던 음악적 근육”을 붙여갔다. 어느 날 “제주도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무심이 연락해왔다. 가난한 뮤지션들이 자신만의 음악을 풀어낼 공간이 거의 없는 제주에서 삼달다방은 그의 노래가 시민들과 만나는 무대가 돼줬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노동을 잇고, 사람과 생명을 잇고, 나와 나를 잇는 노래.” 제주살이 10년 끝에 다듬은 음악의 방향도 “다방을 ‘사람을 잇는 공간’으로 가꿔가는 상엽 형과 대화하며” 찾았다.
“오늘 공연 마지막 곡으로 꼭 이 노래를 하고 싶었습니다.”(2차 공연은 8월19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
성일이 9년 만에 내놓은 정규음반(2022년 2집) 타이틀곡 ‘나는 걷는다’를 고백하듯 담담하게 불렀다.
“한두번 걷던 길도 아닌데/ 처음 느껴본 바람도 아닌데/ 별빛 아래 부는 바람에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렀지….”
이날 저녁 삼달다방 ‘문화동’은 공연장이었다. 아침엔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여는 카페였고, 하루 세끼마다 어울려 밥을 나누는 식당이었다. 책으로 가득 찬 책방이었고, 각종 행사들이 열리는 문화공간이었으며, 인권교육과 워크숍과 토론이 밤을 밀어내는 장소였다. 강연장이 됐다가, 함께 영화를 보는 극장이 되기도 했다. 무엇이든 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자리였다. 무심과 ‘오케이’ 박옥순은 연결을 짓고 묶는 고리였다.
삼달에서 찾다
“오케이.”
2015년 봄 제주도로 출장 간 무심이 전화로 “이 땅을 사고 싶다”고 했을 때 오케이가 답했다. “우연히 둘러본 땅에 반나절 머물렀는데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남편 말에 물어보긴 했다.
“참 좋네. 그런데 돈 있어?”
“이 땅 살 돈(퇴직금)은 있어.”
“잘됐네. 오케이.”
회사를 퇴직한 무심은 그 땅 무밭에 상자를 깔고 자며 ‘가치 있는 전환’을 구상했다. 1년쯤 뒤 무심이 “초기 구상을 끝냈다”고 했다. “이 땅에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남편 전화에 오케이가 물어보긴 했다.
“좋네. 그런데 돈 있어?”
“우리 집을 팔아야 할 것 같아.”
“다행이다. 돈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오케이.”(두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믿기지 않는 대화가 과장된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오케이의 “오케이”를 받은 무심은 마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삼달다방을 지었다. 직장인 시절 무심은 ‘시민사회의 숨은 조력자’였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간을 견디고 중견 건설사의 홍보 책임자가 된 뒤 시민사회단체들을 돕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해냈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이끌며 장애인·아동·여성들과 차별받는 존재들을 지원했다. 기업을 앞세울 수 없는 사회성 짙은 문화행사들 뒤에도 그가 있을 때가 많았다. 그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진단받고 기업을 떠나며 다른 삶을 고민했다. 고민이 도착한 곳이 삼달다방이었다.
오케이는 한국 장애인권운동을 대표하는 활동가 중 한명이었다. 30년이 넘도록 장애인차별금지와 탈시설 운동의 맨 앞자리를 지켰다. 11년간 맡아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사무총장 역할을 지난 2월 내려놓고(현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대표) 무심 옆으로 왔다. 그가 숨 쉬듯 말하는 “오케이, 좋아요”는 돈보다 가치에 삶을 던진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긍정의 에너지원이었다. 무심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망설임 없이 “아내 오케이”라고 답했다.
삼달다방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실험실이었다. 다방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별 없이 섞였다. 장애를 장애로 구별 짓는 모든 턱을 없앴다. 인간들이 주로 찾아왔지만 비인간 동물들이 인간 사이를 오가며 종의 경계를 확장했다. 어른과 아이가 권위를 다투지 않았고, 인종과 국적과 종교와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다. 다방 문을 열면 그 꿈을 새긴 문장이 팔 벌려 맞았다.
“위 웰컴 올.”(We welcome ALL)
그 꿈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을 모은 책 ‘사람을 잇다 사람이 있다 삼달다방’(미니멈)이 최근 출간됐다. 무심이 혼자 깊이 쓰는 대신13명의 필자들이 넓게 쓰는 방식을 택했다. 다방의 꿈을 응원하고 그 꿈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연결했다. 성일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오늘로 네번째 빠꾸.”
‘다른 필자’ 규식(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이규식)이 휠체어를 되돌렸다. 이튿날(7월23일) 아침 산책은 섭지코지(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방두포등대로 이동하던 중 만난 계단 3개 앞에서 끝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돼온 ‘무관심의 증거물’이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솟구치는 장면을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이끼’ 학생들이 규식 옆에서 지켜봤다. 무심이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세계적 관광지인 제주에서 이 계단 3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이건 예산의 문제도 정책의 문제도 아니에요. 그냥 관심이 없는 거예요.”
섭지코지 해안 산책로는 무심이 장애인 게스트들과 일출·일몰을 보러 자주 찾는 장소였다. 그때마다 언제나 같은 계단 앞에서 막혔다. 무심은 지난 4월 제주도가 섭지코지 등의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에 나서도록 시정 권고를 내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규식,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와 공동 진정)를 제출했다.
‘이끼’ 소속 학생들은 전날 삼달다방으로 1박2일 인권캠프를 왔다. 학생들은 규식과 표선해수욕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장애인과 교통약자들의 접근성을 조사했다.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던 장애인 화장실 구조에서부터 우리끼리 점검한 내용과 당사자의 관점엔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이끼 활동을 돕는 민석(서귀포시 동부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말했다. 그날 다방에선 최근의 인권 이슈들을 놓고 학생들과 민석·무심의 토론이 자정을 넘겨 계속됐다.
돌아내려오는 산책로도 휠체어 사용자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큼 기울기가 급했다. “추락의 경험이 있는 규식은 경사가 심한 곳을 무서워했”(무심)다. 1999년 규식은 서울 혜화역 리프트에서 추락해 의식을 잃었다. 그의 추락은 혜화역에 전국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계기가 됐다. 리프트 추락은 ‘이동권 전사’ 이규식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규식은 삼달로 오기 나흘 전(7월17일)에도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내버스 탑승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꿀잠 잤어요!
“역시 수영은 장비빨이지.”
“돈 좀 썼다”는 고글과 오리발을 가리키며 규식이 씩 웃었다. 활동지원사 ‘행진’(김형진)의 도움을 받아 전신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섭지코지에서 이끼와 헤어진 무심·규식·행진은 ‘노랑버스’(삼달다방 리프트 차량)를 몰아 삼달주어포구로 갔다. 물을 좋아하는 규식이 “1년 동안 못 한 수영”을 하고 싶어 했다. 다방 이웃인 ‘탈루’(김뭉)가 포구에서 합류했다. 탈루는 8년 전 무심에게 다방 터를 소개하고 공사를 도운 마을 친구였다.
“다리 먼저.”
규식의 주문에 따라 행진과 무심이 그의 몸을 안아 다리부터 물에 담갔다. 먼저 입수해 있던 탈루가 규식을 받았다. 구명조끼를 입은 규식이 등을 대고 바다에 누웠다. 탈루가 규식을 천천히 포구 밖으로 이끌었다. 무심과 행진도 고됐던 몸을 파도에 맡기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투모사’(투쟁밖에 모르는 사람) 규식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을 동료들과 이끌어낸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 장애인권운동의 역사였다. 그 역사는 1990년대 초 시설 생활을 하던 규식이 처참한 이동권 현실과 ‘바깥세상 맛’을 한꺼번에 본 ‘제주 홀로 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삼달다방 ‘이음동’ 건축도 규식이 “매달 수급비에서 2만원씩 떼서 10년간 모은 전 재산” 500만원을 “장애인도 한달살이 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달라”며 무심에게 송금하면서 첫 삽을 떴다.
“내가 사람을 안 믿어. 어떻게 믿겠어요. 그런데 저 형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직장 다닐 땐 넥타이 맨 모가지가 뻣뻣해서 좀 거만해 보였는데. 가만히 보니까 아니야.”
“야, 너, 형한테 거만이 뭐냐.”
할 일 널린 다방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던 무심이 한마디 퐁당 떨구고 지나갔다. 규식이 또 씩 웃었다.
“그래 봐야 500만원이에요. 그 돈으로 건물을 어떻게 지어. 형만 불쌍하게 독박 쓴 거지.”
완성된 이음동에 투숙한 첫 손님은 정작 규식이 아니었다. 탈시설한 중증장애인 부부의 신혼여행 방으로 내줬다. 오케이가 깨끗한 침구를 깔고 아로마 향을 뿌려 부부를 맞았다.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부부를 위해 흰쌀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였다. 축하주를 사 들고 와서 대기하던 규식이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부부가 결혼 선물로 받은 찔레나무 두 그루는 현재 다방 초입에 뿌리를 내리고 봄마다 맑은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 3월 나온 규식의 자서전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후마니타스)도 삼달다방에서 시작됐다. 중증장애인이 ‘자기 입’을 가진 적 없는 한국 사회에서 ‘출간 자체가 사건’인 책이었다. 24년 인권활동 뒤 쉼을 찾아 온 ‘개굴’(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에게 같은 시기 다방에서 요양 중이던 규식이 ‘접근’했다. “나 같은 사람이 왜 죽도록 싸우는지 말하고 싶어서” 자서전 쓸 소망을 오래 품어온 규식에게 무심이 “개굴에게 부탁해보라”고 귀띔했다. (규식은 ‘싸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가 죽지 않으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싸우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요구는 들리지도 않는다. 출근길 지하철 타기 행동을 하며 ‘병신 병신 병신’ 소리를 듣고 나면, 꿈속에서도 ‘병신 병신 병신’거려서 잠들기가 싫었다. 우리 마음은 이미 남은 것 없이 다 썩어 문드러졌다. 어차피 썩었으니 거름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 거름 위에서 미래의 누군가가 누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겠지.”) 규식은 ‘추진력 대마왕’답게 즉시 실행에 옮겼다. 언어장애가 있고 직접 글을 쓰기 힘든 규식의 말을 세 친구(김소영·김형진·배경내)가 ‘집필활동지원사’를 자처하며 기록해냈다. 무심은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고 자신의 책 출간을 늦추며 규식의 북콘서트를 꾸렸다.
“우리 준호가 꿀잠 잤대요.”
7월24일 오전 규식이 3박4일의 삼달 휴식을 마치고 공항으로 떠난 뒤 이음동에 묵었던 준호네도 퇴실을 준비했다. 엄마 선숙(대전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이 오케이와 포옹하며 아들의 말을 전했다. “그런 말 들으면 너무 행복하다”며 오케이가 활짝 웃었다.
같이 여행 온 10여명의 친지들이 리조트에서 머무는 동안 준호네는 삼달로 왔다. 장벽투성이인 리조트 구조에 힘들어했던 준호는 오케이를 보자마자 “이렇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했다.
스물여섯살 뇌병변 장애인 준호는 지금까지 수술만 여덟 차례 받았다. 아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엄마는 수없이 거리로 나섰다. 아빠가 엄마의 삭발을 말릴 땐 준호가 엄마를 대신해 삭발했다. 준호가 오케이에게 말했다.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누구와 친해지려면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해요. 애들이 먼저 안 다가와요. 엄마한텐 ‘제가 밀림의 사자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선숙 “그 말 듣고 슬퍼서 울었잖아.”) 나는 친해지려고 다가가는데 애들은 사자를 본 것처럼 무서워해요.”
“와,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어요?”
오케이가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준호는 자신의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검사)를 소개했다.
“제가 이(E)예요. 저는 100% 에너지를 내면 전세계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인데 상황마다 선택적 아이(I)가 돼요.”
오케이는 “저도 최강 이(E)인데 때에 따라 아이(I)가 된다”며 말했다.
“쉬고 싶거나 상대의 반응이 기대와 다를 때 선택적 아이(I)를 사용한다니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멋있는 거 알아요?”
“음, 가끔.”
“오케이, 좋아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가 깔깔깔 웃었다.
나눔의 순환
7월25일 오후 한 중년 부부가 다방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왔다.
“차 한잔 마실 수 있을까 해서 왔어요.”
“차 파는 다방은 아니지만 한잔하고 가세요.”
무심과 오케이가 환대했다. 따뜻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씩을 앞에 두고 부부는 다방 부부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10여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는 그들은 “다방 이야기를 듣고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무심과 오케이가 각자 일을 하는 중에도 그들은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부부가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간 뒤 얼마 되지 않아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메뉴 뭐가 돼요?”
“차 파는 다방은 아니지만 한잔하고 가세요.”
다방이 풍기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그들은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나갔다. 다방이란 이름을 보고 정말 다방인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다방인데 커피가 공짜인 ‘기묘한 다방’의 커피를 무심과 오케이는 사본 적이 없었다. 다방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커피가 떨어질 때쯤 ‘무서운 촉’을 발휘해 꼬박꼬박 커피를 보내왔다. 부부는 반대로 다방 밭에서 농사지은 무를 장애인야학과 지역아동센터, 탈성매매여성인권단체 등에 보냈다. 김장은 다방에서 필요한 양을 웃돌게 해서 동네 홀몸 이웃들에게 전했다. 손님들은 농사와 김장을 도왔고, 식사를 함께 준비해 어울려 먹었으며, 자기 돈으로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웠다. 연결은 나눔의 순환이기도 했다.
“삼도야, 산책 가자.”
오케이가 삼도의 목끈을 잡고 다방 뒷길로 나섰다. 무심은 몸집이 엄마보다 커진 새끼 한라의 줄을 잡았다. 부부는 그들의 자식이었던 반려견 초코를 2021년 말 떠나보냈다. 초코가 좋아했던 다방의 팽나무 아래 묻었다. 동물 매장은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법(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는 민법 제98조)의 지시대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릴 순 없었다. 초코를 묻을 때 다방에 머무르던 ‘노마’(사회학자 조형근)는 신문 칼럼을 써서 ‘생명에 예의 없는 법’의 변화를 촉구했다. 삼도는 초코가 떠난 직후 다방을 찾아온 떠돌이 개였다.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삼도에게 오케이가 음식을 주자 다방에 눌러앉았고 새끼까지 낳았다. 열아홉살 청년 게스트가 삼도를 보살피며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이겨냈다. 무심은 삼달과 청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삼도라 지었다.
“남편, 경인이가 길을 잃고 전화한 데가 여기야.”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오케이가 무심을 보며 가리켰다.
어느 날 삼도가 이끄는 대로 산책을 하던 발달장애인 경인(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위원장 박경인)이 갈림길을 만나자 길을 놓쳤다. 당황한 경인이 오케이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오케이가 “오케이, 오케이, 괜찮아, 괜찮아” 하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그사이 삼도가 경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안정을 찾은 경인은 “여긴 안전한 곳이란 믿음을 갖게 됐고 그 뒤부터 삼달로 혼자 여행 올 수 있게 됐”다. 그때의 경험을 경인이 다방 책의 서울 북콘서트(7월20일 서울시청 바스락홀)에서 마이크를 잡고 나눴을 때, 참석자들이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경인은 무연고 장애인이었다. 비혼모시설에서 태어나 스무세살까지 살았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경찰에 의뢰해 찾았으나 엄마에게서 만남을 거부당했다. 지난 6월14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오체투지 투쟁(정부에 발달장애인 전 생애 24시간 지원 요구)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들려주며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인의 연대발언은 큰 울림을 줬다.
7월26일과 27일 손님들이 잇따라 도착하면서 ‘무지개동’(숙소동)이 북적거렸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발바닥) 활동가 미소네와 정하네, 구조한 반려견들과 함께 온 ‘여산’(더나은문화공동체 기획자 윤혜진)과 ‘아저씨’(놀이작가 박성현) 부부, 연인인 ‘제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임연구원 김재우)와 영주(역사교사)가 방에 짐을 풀었다. ‘오렌지가 좋아’(다산인권센터 고 엄명환 활동가를 기리는 방), ‘초코는 달콤해’(초코를 기억하는 방), ‘분홍종이배’(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상징하는 방), ‘숫사자’(인권희망 강강술래 대표 고 배임숙일을 기리는 방) 등 방 이름에서도 다방의 지향은 뚜렷했다.
최근 새로 만들어 아직 이름이 없는 방의 에어컨은 세월호 희생자 민우(단원고 2학년7반) 아빠가 무료로 설치해줬다. 무심과 민우 아빠(이종철)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인연을 맺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유족들에게 무심이 문화제(‘아주 특별한 휴가 광화문으로 가자’ 등)를 기획해 힘을 보탠 2014년 8월께 처음 만났다. 2020년 6월엔 삼달다방에서 4·16합창단의 초청공연을 열었고, 합창단 지휘자(박미리)는 다방 책 북콘서트에서 무대감독을 맡았다. 연결이 연결을 낳았다.
“장애인이 안전할 때 모두가 안전”
7월29일 아침 무심이 다방에 없었다.
밤새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해가 뜨자마자 병원에 허리 치료를 받으러 갔다. 제주의 발달장애인 가족들과 한달에 한번 여는 생태놀이가 있는 날이었다. 다방 무밭이 놀이 장소였다. 성산읍은 제주 월동무의 주산지였다. 무심은 무를 수확한 뒤 땅이 풀리는 4월부터 다시 파종을 시작하는 8월까지 빈 밭을 발달장애인과 엄마들이 뛰어노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진행자인 여산·아저씨가 놀이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이틀 전부터 풀이 무성한 밭을 갈아엎고 예초기를 돌려 주변을 정리했다. 대학 시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무너진 건물에 매몰돼 다친 허리가 몸이 무리할 때마다 어김없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서울발레시어터 기획자 출신인 여산은 “2012년 민간예술단체인 발레단의 재정 자립 자문을 구하면서 무심과 알게 됐”다. 10년 뒤 남편인 아저씨와 다방으로 여행 왔다가 무밭에서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흙놀이 프로그램을 제안받았다. 흙에 물·나무·쇠 등을 더한 생태놀이를 지난해 한 차례 실험해본 뒤 올해 ‘별난고양이꿈밭’과 다방 무밭에서 본격적으로 놀았다. 별난고양이꿈밭은 제주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돌봄 협동조합이었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곳이 없었던” 엄마들이 “직접 서로의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적 조합”을 만들었다. “서로 돌봐야 함께 나아갈 수 있었”(박정경 대표)다.
하하하하, 꺄르르르, 꺄아아아.
꽃처럼 저마다의 빛깔로 예쁜 웃음들이 무밭에서 활짝 피었다. 덥지만 쨍쨍한 하늘 아래서 아이들이 흙에서 구르고, 물을 뿌리고, 도망가고, 쫓아갔다. 흙을 쌓아 올린 낮은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웅덩이로 풍덩 돌진했다. 흙을 뒤집어쓰고 놀다 보면 장애·비장애·어른·아이의 구분도 없어졌다. 아이들만큼 엄마들도 즐거워했다. 편견 어린 시선과 ‘조용히 시키라’는 핀잔 걱정 없이 소리 지르고 발산할 공간이 엄마들에게도 필요(박정경 “삼달이니까 가능한 거예요”)했다.
다방 손님들은 활동지원사와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다. 여산·아저씨의 설치 작업을 도운 제리는 다정한 고음을 빽빽 질러가며 진행에도 열심이었다. 번아웃과 다친 마음을 안고 지난해 초 처음 삼달에 왔던 그는 한해 동안만 열다섯 차례 다방을 찾으며 조금씩 회복했다. 발바닥 활동가 ‘미소’(김은애)는 흙밭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하준을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전담하며 밭 가장자리에서 같이 놀았다. “하준이가 엄마랑 떨어진 것만 해도 대단한 일”(오케이)이었고, 아들을 미소에게 맡긴 덕분에 엄마도 신나게 흙밭을 질주했다. 정하(김정하)도 온몸이 흙범벅 되도록 아이들과 뒹굴었다. 그는 비리 사회복지법인 석암재단의 후신인 프리웰(시민사회의 노력으로 폐쇄한 석암재단을 탈시설지원기관으로 전환)의 이사장이기도 했다. 2018년 취임 뒤 옛 재단의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 집’ 폐쇄(2021년)를 단행하고 지금까지 100여명의 장애인을 자립시켰다. “한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활동가”란 무심의 말에 정하가 웃으며 말했다.
“박경석(전장연 대표)이 있으니까 두번째.”
무심과 오케이가 끓여 낸 50인분의 떡볶이로 허기를 채웠을 때쯤 아저씨가 줄다리기 편을 나누며 외쳤다.
“자신의 정신연령이 어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쪽,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쪽으로 서세요. 하나둘셋 시이이작.”
영차, 영차, 영차.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질질 끌려가며 우당탕탕 넘어졌다. 넘어져도 안전한 흙밭이었다. “장애인에게 안전한 세상은 누구에게나 안전”(오케이)했다.
가장 신나게 논 친구는 드론 조종사가 꿈인 연우였다. 전날 밤 엄마와 삼달에 온 연우는 도착 한 시간 만에 엄마를 졸라 체류 기간을 연장했다. 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틀만 머물 생각으로 온 엄마 ‘씨앗’(사회복지 공무원)도 항암을 위해 입원하기 직전까지 다방에 머물기로 계획을 바꿨다.
“돕는 사람을 돕는 공간.”
무심과 오케이가 소망하는 다방의 모습은 “방이 모자랄 만큼 사람들이 몰려와 번창하는 숙박업소”가 아니었다. “머물러야 할 사람이 찾아왔을 때 언제나 머물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소진되지 않도록 바람을 막아주는 사회적 바리케이드”로 만들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의 소진을 걱정하기 앞서 두 사람의 소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부추겨 다방의 꿈에 청년 조력자를 참여시킬 ‘삼백에 삼백(300/300) 프로젝트’(1만원 후원자 300명을 모아 월 300만원 조성)를 시작했다. 서울 북콘서트를 마무리할 때 무심이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만큼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찾으시면 늘 그 자리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서귀포/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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