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부폰의 명예로운 은퇴에 박수를![심재희의 골라인]
[마이데일리 = 심재희 기자] "저 코스는 골키퍼가 책임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2002 한일월드컵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 연장전 전반 11분 한국이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페널티박스 바로 뒤 좋은 위치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프리키커로 나선 인물은 베테랑 스트라이커 황선홍. 평소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거의 차지 않았던 황선홍이 공 앞에 섰다. 그리고 절묘한 깔아 차기 슈팅으로 골을 직감했다.
이탈리아 수비벽은 벽을 위로 넘기는 프리킥을 예상하고 점프를 했다. 황선홍은 이 점을 역이용해 벽 아래로 슈팅을 날렸고, 공은 골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듯했다. 이 순간, 이탈리아 수문장이 긴 팔을 뻗어 공을 걷어냈다. 지안루이즈 부폰이 '슈퍼 세이브'에 성공했다.
당시 독일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의 소니 센터에서 경기를 지켜 본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코스와 타이밍을 고려할 때 그건 그냥 골이었다. 그런데 부폰이 놀라운 선방으로 공을 걷어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으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막아냈다. 승부가 계속 이어졌고, 안정환의 극적인 골든골로 히딩크호가 8강 고지를 밟았다. 정신없이 거리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승리에 감격하면서도 부폰의 '미친 선방'은 뇌리에 계속 남았다. TV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등을 보는데, 독일 해설진이 이렇게 설명했다. "저 코스는 골키퍼가 책임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독일 축구 전문가들도 혀를 내둘렀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거미손'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슈퍼 슈퍼 세이브'였다.
이후 부폰의 경기를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부폰이 이탈리아 대표팀 붙박이 주전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했고,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월드컵 예선, 유로 예선, 이탈리아 세리에 A 해설을 진행하며 부폰의 플레이에 탄성을 내질렀다. 부폰이 놀라운 판단력과 순발력으로 엄청난 슈퍼세이브 행진을 계속 벌여 연신 무릎을 탁 쳤다.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대표팀의 수호신으로 거듭난 그를 향해 '승리의 부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1978년생이니 이제 마흔다섯 살이다. 한일월드컵에서 처음 봤을 때가 20대 중반이었으니, 이제는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30대 중반을 지나 30대 후반에도 월드클래스 기량을 유지했고, 40대에 접어들어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파리 생제르맹을 거쳐 유벤투스로 리턴한 다음, 2021년 친정팀 파르마로 돌와아 골문을 지켰다. 그리고 3일(한국 시각) 은퇴를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클럽의 '오일 머니' 유혹을 뿌리쳤다. 2년간 연봉 425억 원 수준의 거액에도 손사래를 쳤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것으로 끝이다. 여러분은 저에게 모든 것을 줬고, 저도 여러분께 모든 것을 드렸다. 우리는 함께 해냈다"며 은퇴를 시사했다.
스투데토를 10번이나 차지했고, 프랑스 리그1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정상 정복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28년 동안 505번이나 클린시트를 기록한 전설의 수문장 부폰. 그가 돈이 아닌 명예를 선택하며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부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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