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싸웠다…미국 교사의 대응 방법은? [특파원 리포트]

김양순 2023. 8. 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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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집 엄마가 카톡으로 말을 걸어왔다.
"00이가 오늘 교장실에 갔다 왔다던데 별 말 없어요?"
깜짝 놀라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교장실에 갔었어?"

그렇단다. 며칠 전 친구들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는 거다.

큰 사건은 아니었다. 한국계 미국인 아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 한국말로 비속어를 사용했고, 이를 알아들은 친구가 교사에게 '나쁜 말을 썼다'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 서로 마음이 상하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 간에도 편이 갈라졌다.

그런데 이걸 교장이 개입한다고? 교장실에 불려갔다기에 긴장했던 마음은 그러나,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알게 되며 이해가 됐다. 담임이 있는 초등학교든, 담임이 없는 중고등학교든 간에 '교사'는 말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직업이다. 학업 이외에 사회적 교우 관계, 수업 방해 행동, 정신 건강 등의 업은 모두 행정팀이 전담한다. 여기서 행정팀은 미국 학교의 대표적 직군인 '카운슬러'(학생 지도 상담사)와 부교장(한국의 교감), 교장을 의미한다.

아이들 간에 다툼이 발생했고, 수업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교사는 바로 행정팀으로 해당 사안을 보낸다. 한 반에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통솔해야 하는 교사로서는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까지 모두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교사의 메모를 받은 부교장이나 교장은 학교를 행정적으로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는 것이 직무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아이들의 다툼이라고 허투루 조사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따돌림이 발생했는지, 사안이 반복적이었는지,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학부모에게 알린다.
옆집 엄마 역시 교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알려왔기 때문에 사건을 알게 되었다.


■교사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미국은 교사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체계적 통로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교사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페어팩스 교육청 소속으로 10년 넘게 학생지도 상담사를 해왔고, 현재는 사립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원진 교장(매튜 리)은 짚었다. 학생의 문제 행동이 교사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고, 갈수록 높아지는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이걸 어떻게 대처하느냐- 라는 거다.

미국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카운슬러나 교장에게 보내는 것은 단순히 벌을 주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든 아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은 거에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황을 파악해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미국은 체계적으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교사, 카운슬러, 교장이 각각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 해주는 그 신뢰가 구축이 돼 있습니다. - 이원진/페어팩스 교육청 카운슬러/사립학교 교장

■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철저한 매뉴얼

미국의 모든 교육청은 해마다 학생의 권리와 책임(제목은 다 조금씩 다르다)을 담은 매뉴얼을 발간해 새학기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낸다. 한 달 안에 반드시 서명을 해서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특별활동을 할 수 없게 한다. 그만큼 매뉴얼 안에는 학생, 학부모, 학교의 행동 강령이 세밀하게 담겨있다.

수업 중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부터 교내에 금지 물품을 가져오는 경우, 교사와 급우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했을 경우까지 다양한 사례를 범주화해 그에 맞는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과 규칙이 존재한다.

교장 선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스쿨 보드(교육위원회)로 올라갑니다.
교장이 퇴학을 결정하면 교육청 청문회를 열어요. 이건 거의 재판 수준입니다.
교육위원들 앞에서 교장은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아이와 부모는 소명을 합니다.
변호사를 데리고 갈 수도 있지만, 정말 큰 사고를 친 게 아니면 역효과가 납니다.
교육위원들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반성의 여지가 없다고 보거든요.
이런 모든 것들은 다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가해자가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한국처럼 피해자가 전학가는 경우는 한번도 못 봤어요.

- 이원진/페어팩스 교육청 카운슬러/사립학교 교장

몇 년 전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페어팩스 출신 김 선생님이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하며 한국에도 버지니아의 페어팩스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아이비리그 진학률이 가장 높은 학군 중 하나고, 공교육 수준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강남 8학군'이라는 별명은 허명은 아니다. 다만, 페어팩스 교육청의 진짜 힘은 가장 막강한 교원 노조를 통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워싱턴 D.C.와 가깝다보니 많은 정치인들이 페어팩스 교원노조를 리트머스지로 삼기도 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이곳 버지니아 페어팩스 교육청에서 일하는 한국계 교사들도 무거운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은 교사와 학부모의 단편적인 잘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에 집중해야 합니다"
분명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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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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