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연기의 비결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매번 얼굴을 갈아끼운 듯한 연기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배우 이병헌이 본인만의 연기 비결을 들려줬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에서 멀쩡하게 남은 단 하나의 건물, 황궁아파트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 중 이병헌은 주민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아파트를 지키려는 황궁 아파트 입주민 대표이자 비밀을 지닌 영탁 역으로 분해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서사에 힘을 불어넣는다.
"어제 시사회 때까지만 하더라도 직접적인 관객들의 반응을 들을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좋은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힌 이병헌은 '이병헌'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은 없냐는 물음에 "15년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긴장이 된다"고 조심스럽게 답하며 "그땐 막연하게 '언제쯤 이 부담감이 없어질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같은 질문을 들으니 떨림은 똑같은 것 같다. 내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관객분들이 내 연기가 상식적이지 않다 생각하면 어떡하지, 감정 이입이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들은 여전히 날 긴장하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부담감에도 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해 온 이병헌. 매번 이런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비결을 묻자 "배우는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그 역할에 젖어있어야 한다. 인물의 상황과 사회적 신분, 감정 상태와 같은 것들에 계속 젖어있어야 하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촬영을 잠시 쉬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웃고 떠들지만 마음 한편엔 작품이 있어야 하고, 쉬더라도 감정의 끈은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라고 솔직히 답했다.
"때론 이렇게 감정의 끈을 잡고 있는 게 힘들긴 해요. 작품을 하다 보면 촬영이 몇 개월 동안 지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끈을 놓을 수 없다 보니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하죠. 다만 이건 배우들이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부담감이라 생각해요."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다"라는 그는 "이젠 농담을 하다가도 촬영에 들어가면 조건반사처럼 감정이 나온다. 감정을 계속 갖고 있는 상태로 지내기 때문인데, 아마 배우로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변화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탁 역을 그려나간 과정도 들려줬다. "일단 대본에 집중했다. 우선 대본에 담긴 인물을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려내는 게 첫 번째 단계였다"라고 운을 뗀 이병헌은 "이후 감독님과 대화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붙여냈고, 이 인물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조금 더 상황이 재밌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대화와 회의를 반복했었다"라고 말했다.
영탁은 평범한 주민이었다가 대표로서 권력의 맛을 보고 점차 광기 어린 독재자로 변해가는 인물. 이런 변화에 대해선 "처음엔 가족들과 본인의 삶을 모두 잃어버린 무기력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내려 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권력의 맛을 느끼고 그게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변하게 되는데, 이 자체가 영탁의 포인트라 생각했다. 조금씩 변해가는 심경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영탁을 연기하며 이해가 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냐고 묻자 "기본적으로 그 인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야 연기도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아무리 그 캐릭터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 해도 말이다. 당연히 영탁은 하지 말아야 할 짓도 많이 하지만, 영탁 입장에선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 판단해서 일을 저질렀다 생각했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엔 절대적인 악이나 절대적인 선이 등장하지 않는데, 다 상식선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라 이 이야기에 더 공감됐던 것 같다"라며 공감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다고 답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8월 '비상선언'을 선보였던 이병헌은 1년 만에 연달아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 앞선 작품이 흥행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기록한 가운데, 다시 한번 재난 영화를 선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냐 묻자 "개인적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재난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물론 재난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작의 부진이) 의식되진 않는다"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끝으로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영화의 정서"라고 밝히며 "영화가 전반적으로 현실적이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긴장감이 커지는 데 중간중간 이상하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라고 담백하게 덧붙였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 |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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