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도 소아과·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 '0명'…필수의료 붕괴 현실로
돈 되는 피부·미용에 몰리는 듯…정부 무대책 비판 고조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BIG 5) 병원' 필수진료 과목들이 올 하반기 전공의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위 돈은 안 되면서 고되기만한 일은 않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러다간 필수의료 분야 진료 공백이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 일부 인사는 "정부가 허울뿐인 대책만 내놨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단기적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필수 의료 유지를 위해 더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공석을 채우기 위해 지난 7월 13일부터 27일까지 이뤄진 하반기 상급년차 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8개 전문 진료과목 전공의 충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전체 병원의 총 모집공고 606명 중 확인된 지원자는 3명에 그쳤다.
특히 빅5 중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4개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전공의를 뽑으려 했다. 그런데 총 27명 모집에 지원자는 0명이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상급년차 모집으로 전공의를 충원한 전례가 없고 지원자 찾는 게 특이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선배들이 힘들어 떠난 기피 과를 후배 의사들도 외면하는 모습이다. 소아과 상황이 제일 심각한데,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대에서 2020년 74%, 2021년 38%로 급감했고 2023년 전반기 15.9%까지 떨어졌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급감한 데다 일부 소아 환자 보호자들의 악성 민원에 피로도가 높은 과로 알려지면서 기피 대상 1호로 내몰리고 있다. 비급여 항목도 없어 수입을 의료수가에만 의존하고 앞으로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병원 내 일할 전공의가 부족하니 교수 등 기존 전문의들의 고충은 더욱 심해진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전공의 수련병원 4곳 중 3곳에서는 교수가 당직 근무를 서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는 지역 소아 응급의료 붕괴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도 연계된다.
이번 모집 결과에 대해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위기 경보가 오래전 울렸지만 "복지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지원율은 0.8%를 달성했다"며 정부의 무대책을 비판했다. 또 "내년 상반기 소청과 레지던트 1년차 모집이 불과 4개월 남았다"며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을 우려했다.
기피 과를 중심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현실은 전문의 시험 응시자 감소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2014년 3558명에서 2023년 초 2861명까지 줄었다. 그런데 전문의가 아닌 일반 의사가 의원을 차린 사례는 2018년 2929개에서 2022년 3165개소로 늘었다.
전문 진료과목과 상관없는 진료를 하는 의원도 2018년 5781개소에서 2022년 6277개소로 늘어났다. 의료계는 전문의 시험을 포기한 의사들이 안정적인 진료 환경과 수입이 보장된 피부·미용 같은 급여 위주의 의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임현택 의사회장은 2024년도 1년차 소아과 전공의 모집이 10% 선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성의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기존의 소아과 전문의들도 비급여 위주의 진료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출산 경향으로 의료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게 소아과와 분만의 산부인과다. 많이 안타깝다"면서 "필수 유지를 위해 특히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 장관은 "(해당 진료과 업무를 전공의 중심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한다든지, 교육 수련에 있어 정부 지원을 확대한다든지 제일 어렵다는 게 '근로 여건 개선'인데 다른 진료과보다 먼저 발표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단기적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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