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감별만 20년 국과수 여성 연구관, “지금은 케타민 비상”[플랫]
30대 11명, 20대 5명, 40대 3명, 10대 2명.
지난달 21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마약피혐의자(혹은 피해자) 21명에 대한 감정의뢰(소변)가 들어왔다. 서울, 경기지역의 일선 경찰서부터 서울·인천경찰청, 관세청 등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감정의뢰는 곧 수사당국이 적발한 마약사건의 적발건수를 의미한다. 특히 서울의 마약 감정의뢰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오전에 들어온 의뢰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마약이 얼마나 퍼져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10대 중에는 중학생도 있었다. 성별은 남성(16명)이 여성(5명)보다 많았다.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받았다는 내용,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신 것 같다는 의심 신고, 해외에서 마약을 밀수하려다 적발된 사례 등 다양했다.
(취재가 진행된 이날 서울 신림동에서 흉기난동 살인 사건이 났다. 가해자 조선은 마약 투여 여부를 번복했지만 경찰은 정확한 분석을 위해 감정물을 나중에 국과수에 의뢰했다.)
오후가 되자 추가로 19명에 대한 감정의뢰(소변)가 들어왔다. 이날 하루에만 총 40건(명)이 접수됐다. 김지현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독성화학과 연구관은 “하루에 적으면 30건(명), 많게는 50건(명)까지 들어온다”고 말했다.
신종마약 급증, 유통망 확장…감정 건수로 안다
국과수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20년이 된 김 연구관은 ‘마약 감정 베테랑’이다. 업무 절반 이상을 마약 감정과 감정법 개발에 쏟았다. 줄곧 모발 감정을 담당하다가 최근에 소변 감정을 맡고 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마약 분석을 진행하는 김 연구관은 매일 마약과 싸운다.
김 연구관은 급격히 늘어난 감정의뢰 건수로 우리 사회에 마약이 많이 퍼져 있다는 걸 체감하는 중이다. 마약 감정의뢰는 2019년 클럽 버닝썬, 박유천, 황하나 사건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국과수에 따르면 마약·대마초에 대한 분석은 최근 3년(2020년~2022년) 사이 전국적으로 3.6배 늘었다. 김 연구관은 “(비대면거래가 활발해진) 코로나19 시국에다 세계적인 추세와 맞물리면서 마약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실험실에선 지난 4월 큰 이슈가 됐던 서울 강남구 학원가 ‘마약 음료수 사건’에 대한 감정분석도 이뤄졌다. 김 연구관은 “물은 일반 액상이기 때문에 마약 성분 추출 과정이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해당 음료수는 요구르트에 가까웠다. 조금만 보관을 잘못하면 치즈나 요거트 형태로 굳기 때문에” 추출과정이 까다로웠다.
분석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김 연구관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먹였다는 거였잖나. 해당 음료수에서 필로폰(메스암페타민) 성분이 나왔을 때 경악스러웠다”고 했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1차에 그치지 않고 재실험이 이뤄졌다. 김 연구관은 “1차로 필로폰 성분을 확인했으니 그 약물 성분에 맞도록 감도가 높은 실험방법을 거치는 것”이라고 했다. 확인과 재확인 과정을 거쳐 ‘마약 음료수’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최근엔 이른바 ‘클럽용 마약’으로 불리는 “케타민에 대한 감정건수가 늘었다”고 했다.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적발된 마약류 밀수 중 ‘케타민’이 크게 늘었다. 김 연구관은 “전날(20일) 들어온 마약 감정의뢰 30여 건 중 7건(약 23%)이 케타민이었다”며 “감정의뢰 건수를 보면 남용이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하나의 감정물에 대한 마약성분 분석 시간은 약 4시간이다. 의뢰가 들어온 증거물에 일일이 번호가 부여된 라벨지를 부착하고, 마약성분 추출을 위한 전처리 작업부터 장비를 통한 분석까지 포함한 시간이다. 재실험도 분석까지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다. 경우에 따라 3차까지 재실험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단계의 분석 작업이 끝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연구관이 직접 양성 혹은 음성인지 결론 내린다. 이후 감정서를 작성한다.
마약성분 분석장비는 ‘24시간’ 돌아간다
김 연구관은 “기존 마약에서 약간의 구조가 변경·변종된 ‘신종마약’ 등장이 골치”라고 했다. “이미 남용된 약물은 계속 유통되고 있고 신종마약까지 등장”하면서 끝모를 마약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정보망의 발달로 마약 유입시기도 빨라졌다. 국과수에서 신종마약으로 결론 내리기 위한 분석이 채 끝나기 전에 국내에 마약이 들어오는 식이다. 서울지역 마약담당 연구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명 더 추가돼 총 6명이 됐지만, 신종마약 등장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분석장비는 “24시간 가동”된다. 국과수 연구관들의 싸움 무기는 분석장비다. 예비실험 장비인 ‘임상화학 자동분석 장치’는 감정의뢰된 증거물 중 정밀실험을 해야 할 지 여부를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장비가 알아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증거물을 스포이트로 직접 샘플컵에 옮겨담고, 확인해야 할 마약성분이 뭔지 일일이 입력하는 건 연구관의 몫이다. 대마나 합성대마, 메스암페타민 등 의뢰된 감정물을 일일이 확인하고 분류 한다. 그래야 각 성분에 따라 자동으로 입력된 ‘수치 기준값’으로 분석이 이뤄질 수 있다.
수치 기준값보다 ‘이상’이 나오면 정밀검사를 진행하고, 낮으면 음성으로 종결한다. 이날 진행한 의뢰건수 중 약 60%가 정밀검사 대상으로 넘어갔다. 김 연구관은 “모든 감정물이 예비실험 단계에서 걸러지는 것은 아니고, 일부 향정신성의약품은 예비실험으로 걸러지지 않아 바로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예비실험에서 걸러지지 않아 바로 정밀검사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마약이 요즘 유행하는 ‘케타민’이다. 김 연구관은 직접 ‘액체-액체 추출법’을 진행했다. 케타민을 표준(기준)물질로 하고, 에틸아세테이트 유기용매 혼합액을 이용해 유기용매층(윗부분)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이후 유기용매층을 질소가스 등을 이용해 건조하고, 다시 액체로 변환(재용해)했다.
예비실험 이후 진행되는 전처리 과정은 각 마약성분에 따라 실험방법이 각각 다르다.
분석단계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장비는 ‘GC-MS(기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와 ‘LC-MS(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 등이다. LC-MS 장비는 GC-MS보다 10~100배 정도 감도 차이가 난다. 일반 분석장비에서 검출되지 않는 극미량의 마약성분을 잡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연구관은 “합성대마 역시 GC-MS 장비로 분석이 불가능했는데, LC-MS 도입으로 가능해졌다”고 했다. 현재 서울지역엔 LC-MS 장비가 총 3대가 있다.
극미량의 마약도 잡아내는 분석장비 앞에서 변명의 여지는 없다. 물증이 곧 진실이고, 그것이 곧 국과수의 모토인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다.
일상의 안전이 위협받는 삶은 불행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마약’과 함께 하는 김 연구관은 “마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마약을 한번 접하고 이후 내성이 생겨 강도를 높여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독될 수 있는 거다. 10대들의 마약이 더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며 “중독에 의한 급성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의 마약 관련 부검은 전체 부검의 약 2%인 200여 건이었다. 이 중 24건에서 마약이 검출됐다. 24건 중 6건은 “혈중농도가 치사농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전국에서 각종 마약 사건·사고들이 터지면서 “‘음료수를 먹었는데 맛이 좀 이상하다’와 같은 내용의 감정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국과수에 많이 들어”온다. 김 연구관은 “‘의심이 돼서 음식이나 음료수를 먹을 수 없는’ 사회, ‘성폭력을 당한 게 아닌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는 안전하지 않은 게 아닌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제 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을 ‘부품 제공’에 빗대었다. 그는 “일본 이케이도 준의 소설 <변두리 로켓>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로켓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나사와 같은 작은 부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정교하고 적합한 ‘부품’을 제공한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는 (주인공의) 철학에 공감했다”며 “마약 유통 일당을 잡는 등 대규모 수사를 하는 입장에선 저희 업무가 미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교한 나사를 제공하는 것처럼 저 역시도 ‘신속하고 정확한 감정’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밀려오는 마약감정을 처리하면서도 김 연구관은 감정법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보다 빠르고 정확한 감정을 위해서다. 최근엔 향정신성의약품 ‘크라톰’에 대한 감정법을 개발했다. 다만 부족한 인력과 예산, 분석장비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정법 개발에 온전히 시간을 쏟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김 연구관은 “하루에 몇십 건의 마약을 감정해야 하다 보니 신종마약 분석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안 된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했다.
마약과의 전쟁은 어쩌면 끝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과수 연구관들이 하나라도 더 신속하게 감정하고, 새로운 감정법을 개발하려는 이유다. 모든 마약은 결국엔 과학의 힘으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기에 그렇다. 취재를 마친 늦은 오후에도 김 연구관은 감정 업무로 바빴다. 김 연구관은 “실험실에서 사는 거죠 뭐” 라고 말하며 덤덤하게 웃었다. 마약과의 전쟁 중인 국과수 실험실의 흔한 풍경이었다.
싸우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노동환경이나 성차별적 편견만이 아닙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싸우고,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과 싸우고, 잊혀져가는 기억과 싸웁니다. 실제 ‘싸움’이 직업인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항상 싸움의 연속입니다. 플랫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대상과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지, 지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지, 온갖 역경과 방해물에도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갑옷’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싸움의 온도와 단계도 함께 담아볼 예정입니다. 싸우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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