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금바오(金寶)] 안세영 “1,335등 뒤에서 2번째였는데...이제 세계 1위로 갑니다”
2017년 중학교 3학년 신분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천재 소녀’는 어느덧 한국 배드민턴의 대들보가 됐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대표팀에서 막내지만 실력은 세계 1위다. 최근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못내 침체를 겪던 한국 배드민턴의 대체 불가한 희망이다.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세계 1위...안세영 시대 활짝
안세영(삼성생명)은 올해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지금까지 11차례 국제대회에 나가 7번 우승했고, 3번은 준우승했다. 그 결과, 지난 1일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집계한 세계랭킹 포인트에서 10만3,914점을 쌓아 2022년 9월부터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던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10만1,917점)를 끌어내리고 가장 높은 위치로 올라섰다. 2018년 2월 처음 세계랭킹 포인트를 얻어 1,335위로 출발해 5년여 만에 이뤄낸 쾌거다. 여자단식에서 세계 1위가 탄생한 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 이후 27년 만이다.
세계 최강 자격으로 이달 말 세계선수권대회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안세영은 3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생각보다 빨리 1위에 올라 다들 놀란 것 같다”며 “꿈꿔 왔던 순간을 이룰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도 ‘이제 우리 집안에 세계 1위가 나왔다’고 엄청 좋아했다”고 기뻐했다. 배드민턴 여자단식 ‘빅4’는 모두 아시아권 선수들이라, 아시안게임 금메달 경쟁이 올림픽 수준이다.
6년 전 광주체중 3학년 때 여자단식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현역 국가대표와 성인부 선수들을 차례로 제치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단 안세영은 꾸준히 성장했다. 2018년 처음으로 세계랭킹 순위에 이름을 올렸고, 2019년 BWF 신인상을 받았다. 2021년 11월엔 여자단식 ‘톱10’에 진입했고, 지난해부터는 2위로 1위 야마구치를 추격했다.
"힘든 순간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어"
안세영은 “세계 1위 소식을 듣고 지난 과정들이 생각났다”며 “처음에 1,335등, 뒤에서 두 번째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봤다. 이어 “단계별로 잘 거쳐 비교적 순탄하게 올라오지 않았나 싶다”며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온라인에 5년 전 세계여자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 8강전 승리 후 코트에서 선보인 화끈한 ‘골반 춤’ 세리머니가 1위 등극 기념으로 공개되자, “내가 봐도 웃기더라. 머리카락이 짧으니까 지금과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 이건 흑역사”라며 웃었다.
1위라는 꿈은 이뤘지만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김학균 배드민턴 대표팀 총감독 역시 안세영에게 “1위라는 자리는 영예와 함께 부담도 많이 따른다”며 “진정한 세계 최고가 되려면 모든 걸 이겨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세영은 “당연히 (1위를) 지키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며 “미리 걱정하면 나아질 게 없으니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혔다.
2018 아시안게임 혹독한 신고식...독기 품는 계기
아시안게임은 안세영이 독기를 품게 만든 대회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32강전에서 천위페이(중국)를 만나 0-2로 완패한 뒤 “운동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 새벽부터 야간까지 땀방울을 쏟으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안세영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맞수를 넘어섰다. 그간 천위페이에게 약했지만 올해는 4승 2패로 우위다. 가장 최근 대결이었던 7월 22일 코리아오픈 4강전에서도 2-1로 이겼다.
안세영은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덕분에 내 모든 걸 다 바꿔가며 차근차근 올라왔다. 이제는 연습한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자카르타 대회 때는 실망이 너무 커 항저우 대회에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강조했다.
안세영의 또 다른 무기는 ‘젊음’이다. ‘빅4’ 천위페이와 야마구치는 20대 중반, 타이쯔잉(대만)은 20대 후반이다. 김학균 감독은 “여자단식 선수의 전성기는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라는 걸 비춰볼 때 세영이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오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세영도 “아직 젊네요”라며 미소 지은 뒤 “5년 전보다 (실력이) 달라진 건 나다. 날 믿고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방심은 없다. 안세영은 “상위 랭커 선수들을 상대할 때는 항상 어렵다”며 “당일 컨디션이나 운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아 아무리 상대 전적에서 이기고 있다고 해도 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이다. 안세영은 “다들 오래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한다. 나도 배드민턴에서 기록을 깨는 게 재미 있다.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랜드슬램도 가능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진천 =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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