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가는 청년들…초고령 대통령 선거가 만든 신드롬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8. 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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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불타 오른다 / 레이나 립시츠 지음 / 권채령 옮김 / 롤러코스터 펴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가 열린 지난 2022년 11월 8일(현지시간) 밤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러라고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미국 정치에 뉴레프트(New Left)의 새바람이 불어온 건 2018년 중간선거 때였다. 저자는 AOC로 불리는 28살의 정치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그때 처음 만났다. 자동차 정비소 구석에 마련된 선거운동 본부는 대학 기숙사 휴게실 같았고, 자원봉사자들은 이어폰을 꽂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선거캠프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모두가 무아지경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할리우드 스타와 함께 일하는 듯 보였다.

AOC를 만난 뒤 그는 기존의 정치와는 온전히 다른 점을 발견했다. X세대는 정치에 관심을 두기엔 너무 쿨한 세대였고, 이들의 빈자리를 열정 넘치는 밀레니얼 세대가 대체하고 있었다. 2017년 작가 제사 크리스핀은 정치 현실을 “어떤 TV 프로그램이 좋은 방송인지 아닌지나 따지는 10년짜리 대화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선거정치와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꾸는 급진적인 동력이던 시절이 지나가면서 진보 정치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는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일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애틀랜틱, 네이션 등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 레이나 립시츠가 쓴 이 책은 미국의 정치를 흔들고 있는 젊은 진보 정치의 물결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선명하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미국의 젊은 좌파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의 정치지형도가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같은 해 저자는 23세의 알렉산드라 로하스와도 만났다.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D)을 이끄는 로하스는 패션잡지 보그에 실려도 손색없을 매력적인 여성으로, 사람들 앞에 비판받고 평가받는 일에 익숙했다. ‘좋아요’를 두고 경쟁하는 일은 이들 세대에 익숙한 일상이었고, 자신을 소셜미디어에 맞는 상품으로 포장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5만달러가 넘는 학자금에 분노하고 버니 샌더스에 감동한 ‘열병에 걸려 미친 버니 지지자들’의 일원이 되어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 책은 밀레니얼 진보 정치의 태동 시기에 주목한다. 9·11 테러 이후 10여년 이상 호전적 애국주의가 휩쓸면서 전국구 좌파 후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환경 속에 젊은 정치인들은 그야말로 ‘뉴키즈 온 더 블록’처럼 등장했다. 계기는 2015년 버니 샌더스 열풍이다. 마구 뻗친 백발에 싸구려 기성복을 입고 낡은 이념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자가 어떻게 소셜미디어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샌더스 지지자의 주류는 여성과 비백인이다. 그들은 샌더스가 인기에 영합하려 신념을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라틴계인 로하스는 “샌더스에게 영감을 받은 건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가 그리고 있는 미국의 이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를 깨운 건 사회환경의 변화도 있었다. 20대들은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었고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흑인 인권 시위를 경험했다.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총기사건을 겪은 그들은 샌더스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하며 ‘진짜 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성했다.

역사학자 맷 카프는 샌더스가 청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비결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학 등록금 폐지와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내 건 민주당 역사상 가장 가차 없는 이념적 공약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만이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해진 청년세대의 불안을 진지하게 이해한 후보였다. 타협하지 않는 좌파 노선이야말로 샌더스 열풍의 비결이었다.

AOC가 상징적인 건 트럼프와 완벽한 대척점에 있어서다. 비영리단체 직원이자 바텐더였던 이 젊은 정치인은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나 공립학교를 다녔다. 유색인종 젊은 여성이며, 다양성을 사랑하는 미국 젊은 세대에 호소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은 AOC에 시큰둥했다. 2018년 선거에서 뉴욕주 선출직 공직자 중 단 한명도 지지선언을 해주지 않았다. 그가 월가를 등에 업은 경쟁자를 74.6%의 압도적 득표율로 누르자 보수언론은 이념을 경멸하면서도 정치적 기량에는 부러움과 동경을 감추지 못했다. 우익은 사회주의자를 싫어하지만 승자는 사랑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청년이 운영하고 운동을 이끄는 단체들의 면면을 분석한다. 지역으로 파고든 풀뿌리단체와 활동가들이 주류인 신좌파의 특징을 저자는 찾아낸다. 젊고 젠더 다양성이 풍부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뛰어나고 지역사회와 인연이 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라는 것. 대중을 공략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란 꼬리표를 잠시 내려놓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립된 개인들의 불안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민주당을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지역민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변화는 현실에도 뿌리내린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회원이 급증하고, 10대 잡지 틴 보그에 마르크스 특집 기사가 실리고 있다. 이 책은 이를 50년 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고 진단한다. 결론적으로 깜짝 돌풍에 그쳤던 샌더스의 캠페인은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꿔놓았음을 주지시킨다. 노인들의 대결로 향하고 있지만, 내년 미국 대선의 캐스팅 보트도 젊은 좌파들이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흥미진진한 보고서의 진단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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