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흔든 판결] 영화·음악 불법 다운로드 자취 감춘 시발점…저작권 보호한 ‘소리바다’ 판결

홍인석 기자 2023. 8. 5. 06: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 평정한 음원 공유 P2P
대법 “복제권 침해 방조한 책임 있다”
온라인상 창작물 저작권 인식 변화 계기…제도 개선도 잇따라
옛 '소리바다' 실행 화면. /조선DB

2000년대 초중반 ‘필수템(필수적인 아이템)’이었던 MP3 플레이어는 음악의 소비 습관·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놨다. 노래 30곡을 담을 수 있는 128메가바이트(MB) 용량의 MP3 플레이어는 졸업·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콤팩트디스크(CD)나 카세트테이프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전자기기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음악 감상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MP3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바로 ‘소리바다’였다. 소리바다는 2000년 5월 탄생한 국내 최대의 무료 음악 파일 공유 플랫폼이었다. 한때 동시 접속자가 500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P2P(서버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끼리 컴퓨터끼리 직접 통신하는 방식) 음원 공유 서비스로 알려진 ‘냅스터’를 국내 형편에 맞게 도입한 것으로, 이용자가 CD로부터 MP3 파일을 변환해 자신의 공유 폴더에 올려놓으면 다른 이용자가 해당 폴더에 접속해 내려 받았다.

소리바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은 P2P의 전성시대였다. ‘프루나’, ‘당나귀’ 같은 P2P 플랫폼으로 영화와 음악을 주고 받는 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P2P가 지배하던 인터넷 문화에 법원이 제동을 걸기 전까지는 그랬다.

◇소리바다 “MP3 다운로드는 ‘전송’...음반 제작자 권리 해치지 않아”

소리바다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 판결은 P2P에서 횡행하던 불법 다운로드를 규제한 시발점이었다. 2002년 2월, 한국음반산업협회 등은 소리바다가 음반 복제권과 배포권을 침해했다며 서비스 중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소리바다 서비스가 광고료 등 영리 목적에 기반해 음악을 무단으로 복제·배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소리바다는 MP3 파일을 내려받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전송’이며, 전송은 저작권법상 ‘배포’가 아니기 때문에 원 저작자가 아닌 저작인접권자(음반 제작자)가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는 ‘복제권’과 원본이나 복제물을 배포할 ‘배포권’은 원 저작자와 저작인접권자에게만 있다. 소리바다가 강조한 ‘전송권’은 원 저작자에게만 있다. 즉, 음반 제작자는 전송권이 없으니 이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게 소리바다 측 주장의 골자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법원은 음반 제작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저작권법을 근거로 이들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는 소리바다가 복제권과 배포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소리바다를 이용해 MP3 파일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저작인접권자(음반 제작자)에게 전송권을 따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 해서 전송의 방법으로 복제권과 배포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되는 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침해행위가 전송의 범주에 속하더라도 이를 복제·배포행위로 볼 수 있는 한, 저작인접권자의 복제권 및 배포권이 침해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소리바다는 2002년 7월 30일 서비스를 중단했다.

◇항소심 거쳐 대법원까지…‘복제권 침해 방조 책임’ 인정돼

법정 다툼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소리바다가 직접적으로 복제권과 배포권을 침해한 건 아니라고 봤다. 2심에선 결과가 뒤집혔다. 2005년 1월, 서울고법은 음악 파일을 내려받는 과정에서 복제권 침해가 발생했고 소리바다가 이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가처분 결정을 인가했다. 소리바다가 직접 복제권과 배포권을 침해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이용자가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복제권이 침해됐으며, 소리바다가 이를 방관했다는 취지다.

음반 제작자들은 2007년이 돼서야 승리를 확정 지었다. 대법원 3부는 원심을 인정해 “소리바다 서비스 제공자는 음반 제작자들의 저작인접권을 침해하리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 인식했거나 적어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용자들이 음악 CD로부터 변환한 MP3 파일을 P2P 방식으로 주고받아 복제하는 방법으로 저작인접권을 침해하는 걸 소리바다가 용이하게 했다는 판단이다. 즉, 파일을 내려받는 행위를 저작권법상 권리인 복제권 침해로 봐야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한 소리바다에 방조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전경./뉴스1

◇‘온라인 저작권 분쟁’ 관련 첫 대법원 판단…”저작권 보호 방안 체계화한 계기”

소리바다 판결은 국내 온라인 저작권 분쟁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단이다.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음악·영화 등 무단 복제와 배포가 손쉽게 이뤄지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이 판결은 그런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2012년 당시 최민재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원 등은 소리바다 판결이 디지털 공간에서 콘텐츠 저작권 보호 범위와 방식에 대한 방법을 체계화하고, 콘텐츠 저작권의 사회적 인식 수준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판결 이후 무료 공유 서비스들이 줄줄이 금지됐고, 저작권자는 사업자 수익의 일정 요율을 저작권료로 받기 시작했다. 이용자도 음악·영화 등 무료 이용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인식의 변화와 함께 제도적 보완 장치도 마련됐다. 대법원 판결 후 2년 뒤인 2009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상 불법 복제 방지 대책을 강화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불법 복제물을 게시하는 인터넷 게시판의 서비스 정지를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콘텐츠를 소비하려면 적정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의 막이 열린 셈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