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⑫"청년들 믿고 맡긴 게 상권 부활 비결"
자율성과 연대감으로 허름한 골목을 지역 명소로 일궈내
전국 청년들 모여 주말이면 대규모 벼룩시장도 개최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충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충북 충주시 성내동은 과거 충주읍성 안에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관아가 있던 곳이어서 관아골이라고도 불린, 오랫동안 충주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여느 도시처럼 신도심으로 상권이 이동하면서 빈 점포들이 속출했고 뒷골목 곳곳에는 빈집이 넘쳐났다.
그러던 관아골의 한 좁디좁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골목길에 청년 창업인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충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청년가게 조성사업'의 대상 지역으로 이 골목을 점찍은 것이다. 그렇다고 애초에 상권이 형성됐던 곳도 아니었다. 그냥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낡은 옛집들이 이어지는, 도무지 장사라고는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다.
좁고 허름한 골목에 청년들 모여들어 가게 열기 시작
그러나 볼품없는 이곳에 청년들은 카페를 열고 빵집을 차렸다. 허름한 빈집의 원형을 최대한 살린 채였다. 충주시의 지원금이라고 해야 리모델링비 1천만원이 전부여서 턱 없이 부족했지만 청년들은 개의치 않았다. 2017년 시작된 일이었다.
사업 전반을 이끄는 성내·성서동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박진영 이사 겸 사무국장은 "청년들이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복고풍)에 주목한 것 같다"며 "젊은이들의 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년여만에 70∼80m 남짓한 길이의 이 골목길은 대부분 청년들 차지가 됐다. 청년들은 가정집들을 임대하거나 사들여 카페와 빵집, 공방, 피부 관리점, 어린이 놀이시설 등으로 개조했다. 좁은 골목길과 허름한 집, 젊은 상인들의 감성적 상품과 서비스가 어우러지며 자아내는 묘한 분위기는 금세 소문이 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집값과 땅값도 3∼4배씩 뛰었다.
그러자 더 이상 집주인들이 집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고 청년들은 옆 골목으로 가게를 넓혀갔다. 이렇게 해서 이 일대에 들어선 청년 가게만 15곳, 인근의 성서동을 포함하면 40곳이 넘었다.
인근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며 40여개 가게 창업
충주시도 "생각지도 못했던 대성공"이라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박진영 사무국장은 "행정이 주도하지 않고 청년을 믿고 전적으로 맡긴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충주시의 '청년가게 조성사업'은 철저히 청년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해 진행됐다. 대부분의 도시재생사업이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뤄지고 민간은 대상자로 전락하곤 하는 것과는 달랐다.
작년을 기준으로 청년가게는 42호점까지 숫자를 늘려갔다. 애초 계획을 10곳 이상 초과한 것이다. 이 가운데 폐업한 점포가 6곳에 불과할 정도로 성공률도 매우 높다.
이 사업을 전후해 관아골 일대의 빈 점포율은 37%에서 15%로 급감했다. 성내동과 성서동의 점포 수는 1천549개에서 1천730개로 늘었다. 망가진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관아골 골목에서 만난 연미옥(56)씨는 "예전에는 시내 사는 사람들도 태반이 이 골목이 있는지를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다 죽은 골목을 살려냈다"며 "기특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일행인 김상민(48)씨는 "프랜차이즈 점포가 주름잡는 시대에 옛 골목과 집을 그대로 살리고 독특한 자기들만의 제품을 내놓는 것이 정겹고 보기 좋다"며 "옛날 생각이 날 때면 들르고 한다"고 거들었다.
청년 창업가들도 한 곳에 모여 일하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다.
평소 취미를 살려 도자기 공방을 차렸다는 여진주(30)씨는 "결혼하면서 고향을 떠나 이곳에 공방을 냈다. 마땅히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비슷한 또래의 청년 점포주들이 스스럼 없이 대해 주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 큰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씨는 "문화적 감성이 맞다 보니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각종 모임 열어 '영업 비밀'까지 공유하며 상생 모색
청년들은 수시로 각종 모임을 함께 하며 '영업 비밀'을 공유하고 상생 방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박 사무국장은 커피점을 운영하는 청년 창업가들의 모임을 예로 들었다. 콩을 볶고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맛의 차이를 내는데, 정기적인 모임을 하며 이를 주저 없이 서로에게 가르쳐주고 배운다는 것이다.
박 사무국장은 "청년들이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를 통한 공생과 공존을 선택한 것"이라며 "이는 관아골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협력과 연대감이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청년 창업자들의 정보 교류의 장이자 쉼터인 '청년 플랫폼'을 만들어주고 창업 컨설팅과 상인 교육 등을 지속해온 충주시도시재생센터, 날줄과 씨줄을 엮듯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낸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바탕에 있었다. 이를 토대로 청년들은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관아골 청년들의 자율성과 연대감은 '골목 플리마켓(벼룩시장)'이라는 또 하나의 이색적 풍경이자 자랑거리를 만들어냈다.
벼룩시장은 청년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펼쳐진다. 이 골목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골목 안의 청년 상인들이 각자 만든 물건을 내다 파는 데서 시작했다. 2017년 15개 점포와 플리마켓 팀이 참여한 가운데 출발한 이 벼룩시장은 지금은 50여개 팀으로 늘었다. 충주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 경북 등지의 청년 창업인들까지 찾아온다. 물건 종류도 유리공예품, 액세서리, 수제 인형 및 식기, 수제 먹거리 등으로 다양하다.
관광객들까지 몰리면서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은 가뜩이나 좁은 골목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청년 상인들, 점포 선뜻 내주며 명소 벼룩시장 만들어
그러자 청년 점포주들은 자신들의 가게를 외부에서 온 플리마켓 팀들에게 선뜻 내놓기 시작했다. 그날만큼은 외부의 플리마켓 팀과 주인이 한 가게에서 서로 다른 제품을 파는 '기묘한 동거'가 이뤄진다. 자릿세 한 푼 받지 않으면서다.
박 사무국장은 "대부분이 토박이가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갖고 외부에서 온 청년들"이라며 "그래서 오히려 외부의 젊은 플리마켓 팀들까지 친구처럼 생각하고, 골목이 활성화해야 각자의 가게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청년들에게 더 큰 선물이 돼 돌아오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상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서 골목 내 청년 가게들의 매출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 벼룩시장은 이제 주말이면 꼭 들러야 할 지역 명소가 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청년가게 조성사업의 성공은 행정이 주도하는 대신 청년들을 전적으로 믿고 맡긴 추진 방식, 끈끈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한 청년들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 청년 상인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사업 성공을 위해 헌신한 활동가들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라며 "연대의 폭을 넓혀 충주시 전체가 함께하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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