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이어 부실설계까지…건설시스템 총체적 난국 언제까지
"안전.품질 강화, 비용 누가 부담할지가 핵심"…분양가 규제‧최저입찰제 개선 목소리도
지난해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이어 올해 3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등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공사 단계마다 요구되는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세밀하게 손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특히 '안전과 품질 확보를 위한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가 재발 방지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런 내용이 간과된 부실 시공 근절 대책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무량판 공법은 무죄"…"공법 대한 불안 조장보다 제도 세밀하게 손 봐야"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주부터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민간아파트 293곳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무량판 구조는 보(beam·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를 바로 얹는 방식이다. 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시공비와 공사기간 단축, 층간소음 완화 등이 장점으로 꼽혔고 정부와 지자체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시 허용 용적률 상향 조정과 분양가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 등을 주며 장려해왔다. 하지만 최근 사고가 발생한 검단 아파트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공법 자체에 대한 불안감과 전반적인 건축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전수조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는 정밀한 설계와 시공이 수반된다면 장점이 많은 공법이라며 공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설계·시공·감리·하청은 물론 공기와 안전 확보 비용, 정책 등이 뒤엉키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공법 자체가 금기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콘크리트학회장을 역임하고 대한건축학회장으로 활동하는 한양대 건축공학부 최창식 교수는 "(논란이 되고 있는)무량판 구조는 기둥과 슬래브 주변을 잘 설계하고 보강해 시공하면 공간 활용과 층고 등 장점을 취할 수 있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구조"라며 "최근 이어지는 건설사고는 공법 문제가 아니라 설계부터 감리까지 각 단계별로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고,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어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조전문가는 품귀에 숙련공은 현장 떠나…건설현장 양질인력 수배난
인공지능이 인력을 속속 대체하고 있는 다른 산업과 달리 아직 사람이 개입하는 정도가 높은 건설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연이은 사고의 주요 원인은 결국 '양질의 인력 수급 문제'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검단 사고의 경우 '구조 기술사무소의 계산 오류'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해당 업체의 담당자가 사직하면서 후임자와 업무 인수인계에 차질이 생기며 사고로 이어졌다는 잠정결론이 나온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구조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가도 제한적인 상황이어서 시공·감리에서 교차검증이 제대로 되지 못해,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 과정에 걸친 시스템 전반이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김영민 부회장은 지난 6월 대한건축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검단 사고는) 무량판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구조)전문가에 의한 구조설계가 부재했다는 점"이라며 "전문가에 의한 (공사)현장 구조 검사가 부재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검단 사고에서 문제가 된 구조 설계의 경우 건축분야 기술 중 가장 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분야 중 하나인데 이런 구조전문가가 내놓은 구조설계를 검증하려면 시공, 감리 역시 또 다른 구조전문가를 통해서 검증해야 한다"며 "구조전문가 인력풀이 제한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교차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 생겼을 것"이라고 전했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처우로 숙련된 현장 인력이 업계를 떠나고 있는 점도 현장 부실을 키우는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는 2021년 기준 165만2천명으로 전년보다 1만9천명, 1.2%가 줄었다. 건설업 종사자는 2019년(172만명) 대비 2년 연속 감소세다.
빈자리는 외국인 노동자 등 비숙련공들이 채우고 있다. 건설 노동자 중 외국인 비율은 14.8%(3월 기준), 최근에 문제가 된 철근공의 비중은 36.8%다. 이들의 숙련도는 국내 인력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업계가 '이권 카르텔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인력난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안전과 품질은 비용, 즉 '돈'의 문제"…"안전 비용,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어야"
최근 이어지는 사고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비용과 무관하지 않고, 이런 이유로 이를 배제한 대책은 현실성이 없을 것이란게 업계의 분석이다. 부실 시공의 원인들로 지목되는 공기 단축과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의 배경은 수년새 급등한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부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상반기 철근 가격은 t당 541달러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t당 1천31달러까지 2배 가량으로 뛰었다. 2021년 6월 t당 7만5천원이던 시멘트 값은 현재 12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정비사업 수주시 시공사들이 제시하는 아파트 공사비는 2~3년 전 3.3㎡(1평)당 400만~500만원에서 최근 700만~800만까지 뛰었다.
투미부동산컨설팅 김제경 소장은 "원가를 맞춰주지 않는 시스템이 최근 불거진 부실시공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정비사업에선 분양가상한제, 공공사업에선 최저입찰제 등으로 수입은 제한되지만 급등한 원가를 반영하지 못해 사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이 원자재 빼돌리기 등 불법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저품질 원자재 사용과 공기 단축, 저숙련공 투입 등을 통해 원가 절감 압박에 대응하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착공 당시에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여유있게 공사 기간을 잡았더라도 코로나, 화물연대 파업, 다양한 배경에서 진행되는 정부 및 공공기관 점검 등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한다"며 "예상보다 공사중단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입주지체 보상금 등을 감안하면 공사 완료시점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공기가 빡빡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 급등이 업계의 현안인 상황에서 단순히 관련 제도만 강화한다면 이는 실무자의 업무가중, 그에 따른 편법찾기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며 "건설 품질 확보와 안전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면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인지하고, 규제 강화에 수반되는 비용 증가가 있다면 이를 공사비에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게 해야 관련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건축학회 윤혁경 건축법 제도개선 위원장도 최근 학회 토론회에서 "안전과 품질은 비용, 즉 '돈'의 문제"라며 "안전확보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해결하지 않으면 건축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작동 않는 낡은 제도 손 보고, 실행력 높이는 규제 미세 조정 필요"
이번 사고를 관련 제도 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창식 교수는 "1962년 제정된 건축법 관련 제도들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건축안전강화특별법' 제정과 국토교통부 산하 '건축도시안전청'을 만드는 것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로 '특별위원회'를 만들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통령 직속 기구 등으로 두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실행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라며 "원칙을 준수하지 않을때 적절한 패널티를 고민해야 하는데 영업정지 등의 패널티는 규정에 있어도 쉽게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원칙 준수를 유도하는 적합한 패널티를 설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때 예외없이 이를 적용하는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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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sy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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