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앙은행 금리 인상 후유증, 상업용 부동산 부실[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2023. 8.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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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2021년 4월 이후 전 세계인에게 고통을 줬던 인플레이션이 각국 중앙은행의 통제권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과 근원 CPI 상승률은 각각 3%, 4.8%로 크게 둔화했다. 같은 달 한국의 CPI 상승률은 2.7%로 3% 밑으로 떨어졌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물가 지표에 대한 재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중요한 잣대로 삼는 근원 CPI 상승률은 유럽 방식으로 귀속 임대료(OER : Owner’s Equivalent Rent)를 빼 재산출하면 2.3%로 더 떨어진다. 더 이상 금리 인상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OER은 자가 소유자가 내지 않는 상상 속의 임대료를 말한다.


물가 안정, 금리 인상 효과? “No!”

궁금한 것은 물가가 안정되는 것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효과라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노(No)’다. 작년 3월 Fed가 처음 금리를 올린 이후 4개월이 지난 때부터 물가가 안정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명확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Fed가 추정하는 통화 정책 시차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9개월이기 때문이다.
    
물가 하락 속도도 너무 빠르다. 미국의 CPI 상승률은 불과 1년 만에 9.1%에서 3.0%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지난 20년 동안 저금리 시대가 지속돼 통화 정책 전달 경로상 금리 변화와 총수요 간의 관계가 비탄력적인 유동성 함정에 처한 여건에서는 금리 인상이 물가를 빠르게 떨어뜨릴 수 없다.
    
다른 요인이 결부돼 있다. 2년 전 물가 문제가 불거질 당시 미국 경기가 좋은 때는 아니었다. 전례가 없었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공급망 차질 등이 발생하면서 각종 공급 비용이 급증한 것이 물가를 부추긴 요인이다. 금리 인상은 경기 과열로 물가가 오를 때 추진하는 총수요 관리 대책이다.
    
금리 변경이 적절했는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 공식은 실질 균형 금리에 평가 기간 중 물가를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물가에서 목표치를 뺀 수치에 정책 반응 계수(물가와 성장에 대한 통화 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성장률에 잠재 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 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이번 금리 인상 속도는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 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아 폴 볼커 당시 Fed 의장이 금리를 올릴 때 이어 가장 빠르다.
    
볼커식 대응은 반드시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을 불러온다. 하지만 Fed는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에 대해 경기 침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그 근거로 고용 시장이 견실한 점을 들고 있다. 오히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가 희생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볼커식 대응을 계속할 뜻을 비추고 있다.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곳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다. 엔데믹(주기적 유행) 시대에 들어가면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은 평균 20% 이상 수준으로 치솟았다. 가격도 비슷한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와 함께 미국의 양대 부동산 경제학자로 꼽히고 있는 스테인 반 니우에뷔르흐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는 상업용 부동산이 앞으로 ‘도시 죽음의 고리(UDL : Urban Doom Loop)’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UDL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금리 인상과 원격 근무 등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 다음 단계에서는 세수 부족으로 세금을 인상하거나 교육·문화·예술 등의 공공 서비스 지출이 줄어들고 거주 도시민이 본격 이탈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텅 빈 상업용 건물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면서 시카고 공포가 확산된다.

니우에뷔르흐 교수는 UDL이 진행될수록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진다고 봤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계층별로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 자산이 급증했던 부자일수록 경기가 악화되는 ‘리치 리세션’에 빠지고 중하위 계층들도 부자들의 소비 감소에 따른 낙수 효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주장했다.



부작용,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

극단적인 비관론이다. 하지만 통화 정책이나 재정 정책 면에서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첫 단계에서 둘째 단계로 이행될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은 작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R스타(R*)’ 금리가 ‘R스타스타(R**) 금리’보다 높아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될 R* 금리는 실물 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 금리로 알려져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R** 금리는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 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져 스트레스 지수(SI)가 올라가고 위기가 발생한다.
    
특정국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안으로 SI를 개발한 캐나다 중앙은행은 ‘SI를 시장과 정책 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피로도’라고 정의했다. 경제 변수의 기댓값이 변하거나 분산이나 표준 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지면 SI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되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 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린다면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 세수가 부족하면 재정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도 통화 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만약 세금 인상과 공공 서비스 지출 삭감 등을 통한 긴축으로 대응한다면 도심일수록 ‘죽음의 도시’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감세와 공공 서비스 지출을 늘려 도심의 매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간단한 래퍼 곡선을 통해 살펴보면 대도시처럼 세율과 재정 수입 간에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 지대에 놓여 있는 여건에서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 의욕과 도시 매력을 높여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고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근처럼 작년 3월 이후 각국의 금리 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은 ‘경기 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UDL을 방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은행은 참조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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