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오로지 나만의 땅에서’ 도멘 졸리에 클로 드 라 페리에르 루즈

유진우 기자 2023. 8.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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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獨占)’에 대한 인식은 싸늘하다.

독점이란 특정 상품을 유일하게 만드는 생산자를 말한다. 일반 시장에서 대다수 소비자는 독점 생산자를 과도한 이윤을 추구하고, 사회 전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원흉으로 지목한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생산자가 오랜 기간 쏟아부은 노력은 이 과정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다. 생산자가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위험성과 책임 역시 외면한다.

와인 시장에서 독점에 대한 인식은 조금 다르다. 와인업계에도 독점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에서 주로 쓰인다. 프랑스어로 ‘모노폴(monopole)’은 독점을 뜻한다. 이 단어는 와인업계에서 한 생산자가 특정 이름을 가진 좋은 포도밭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도 수백년 넘게 와인을 만들어 온 부르고뉴 지방에서 와이너리는 가업인 경우가 많다. 와이너리를 가진 가문에서 가장 큰 재산은 포도가 자라는 밭이다.

이 지역에서는 밭고랑 하나, 돌담 하나 차이로 밭 가치가 수십배까지 달라진다. 포도가 자라기 좋은 환경인지, 프랑스 국립원산지 명칭 연구소(INAO)가 얼마나 높은 등급을 준 밭인지 여부에 따라 땅값이 갈린다.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포도밭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문은 거의 없다. 대부분 상속 과정에서 여러 형제 자매가 밭에 대한 소유권을 나눠 가진다. 와인 사업에 관심이 있는 일부는 물려준 땅을 계속 일군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가 본인이 상속한 밭을 팔아 치운다. 때로는 혼인이나, 외부에서 지분을 담보로 한 대규모 투자를 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한 가문이 가지고 있던 거대한 포도밭도 시간이 지날 수록 조각보처럼 소유권이 찢어지기 마련이다.

가령 고가 와인이 즐비하게 나오는 특급 포도밭 에세조(Échézeaux)는 축구장 5개 정도 크기 밭에 소유권을 가진 생산자가 80명이 넘는다. 평균으로 치면 한 와이너리 당 비닐하우스 3개 정도 크기다.

이 정도 크기 포도밭에서는 2000~3000병 남짓한 와인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기 어려우니, 소규모 생산자들은 가격을 매년 올린다. 자연히 소비자 부담도 커진다. 독점이 아닌 데도, 값을 더 지불해야 하는 완전경쟁의 역설이다.

그래픽=정서희

도멘 졸리에는 900여년 전 1142년부터 클로 드 라 페리에르(Clos de la Perrière)라는 밭을 독점 보유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와이너리다.

클로 드 라 페리에르는 ‘픽생(Fixin)’이라는 다소 외진 지역에 자리한다. 200여년 전, 초기 프랑스 와인 권위자 앙드레 줄리앙이 저서에서 ‘부르고뉴 전역에서 최고의 포도원 중 하나가 클로 드 라 페리에르’라고 인용할 정도로 품질은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다.

이 와이너리는 1853년 졸리에 가문이 이 밭을 사들이기 전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이 원인이었다. 이 포도밭은 여느 부르고뉴 지역 유명 포도밭처럼 수도사들이 처음 일궜다.

그러나 종교전쟁 이후 수도사들이 떠나면서 밭이 황폐화됐다. 전쟁 이후 황무지 같던 포도밭은 이름 난 포도밭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 눈에서 멀어졌다. 그 덕에 19세기까지 밭 주인은 바뀌었을지언정, 밭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

졸리에 가문은 이 밭 가치를 알아보고 체계적으로 밭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현재 6대손 베니 졸리에는 와이너리 시설을 현대화해 매년 일정한 품질로 높은 점수를 받는 와인을 만들어 낸다. 그의 딸 카미유는 7대로 가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도멘 졸리에 클로 드 라 페리에르 루즈는 졸리에가 독점적으로 보유한 클로 드 라 페리에르에서 자란 포도만을 이용해 만드는 와인이다. 이 밭 이름을 쓸 수 있는 와이너리는 전 세계에서 도멘 졸리에가 유일하다.

세계적인 평론가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치솟는 부르고뉴 유명 와인의 좋은 대안으로 이 와인을 꼽았다. 90점 이상은 좀처럼 주지 않는 깐깐한 와인평론가 앨런 미도우는 2021년산 이 와인에 9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면서 “평균 수령 50년이 넘은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딴 열매로 만들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평가했다. 국내 수입사는 비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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