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구하지 않았다면… 케네디 대통령도 없었다
아버지 구한 솔로몬 제도 찾아
지난 1일(현지 시각)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 제도(諸島)의 한 마을. 금발의 백인 모자(母子)가 마을로 들어서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섬나라 원주민들이 꽃다발을 걸어주며 반겼다. 마을의 특별한 손님은 존 F 케네디(1917~1963) 전 미국 대통령의 딸이자 유일한 생존 자녀인 캐럴라인 케네디(66) 호주 주재 미국 대사와 케네디 대사의 아들 잭 슐로스버그(30). 이들은 80년 전 당시 존 F 케네디 미 해군 중위의 목숨을 구해준 비우쿠 가사(1923~2005)와 에로니 쿠마나(1918~2014) 등 두 원주민 청년의 후손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8월 1일. 솔로몬 제도 일대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미 해군 어뢰정 PT-109가 일본 구축함에 격침돼 두 동강 났다. 길이 24m의 소형 어뢰정을 지휘한 인물은 훗날 35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케네디 중위였다. 2명은 숨졌고, 남은 승조원 11명은 가까스로 헤엄쳐 인근 섬에 올라갔다.
고립무원의 생존 장병들을 발견한 이들이 가사와 쿠마나였다. 이들이 배속돼 있던 호주 군 지휘관이 미 어뢰정 침몰 소식을 듣고 보낸 것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에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56㎞ 해역을 배로 이동하며 주변 섬들을 수색한 결과 케네디 중위와 휘하 대원들을 찾아냈다.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케네디 대통령도, 그의 취임이 불러올 정치적 격변도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구출 작전은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된다. 캐럴라인 모자가 섬을 찾은 지난 1일은 어뢰정 격침 80주년이었다.
캐럴라인은 이날 호주 주재 미 대사관 페이스북에 소감을 밝혔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비우쿠 가사와 에로니 쿠마나에 대해 개인적으로 빚을 졌다”며 “이들의 용기 덕에 아버지는 살 수 있었고, 내 아들과 나는 80년 전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 해변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다. 솔로몬 제도를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든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휘하 승조원들의 목숨을 살려낸 경험은 국가에 헌신하고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했던 존 F 케네디 리더십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캐럴라인 모자는 이날 수영복을 입고 80년 전 케네디 중위와 승조원들이 어뢰정을 탈출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던 생존 루트를 재현하는 행사도 가졌다. 당시 케네디 정장을 필두로 한 승조원들이 처음 도착한 무인도인 플럼 푸딩 섬은 이후 케네디 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군 전역 뒤 미국 정계의 샛별로 떠오르며 대통령까지 오른 존 F 케네디는 1961년 1월 취임식에 가사와 쿠마나를 초청했다. 다만 이들의 참석은 불발됐다. 영어가 서툴러 출국장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설, 솔로몬 제도를 지배하던 영국 당국이 이들의 남루한 옷차림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냈다는 설 등이 나돈다.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솔로몬 제도의 은인들’을 다시 못 만났지만 인연을 잊지 않기 위해 이들로부터 받은 코코넛을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뒀다고 한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은 텍사스주 유세 중 리 하비 오즈월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케네디 전 대통령을 무인도에서 구출한 솔로몬 제도 원주민 2명의 사연도 점차 잊혀가는 듯했다. 가사와 쿠마나는 각각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기인 2002년과 2007년 미국 정부에서 공적을 공식 인정받고 감사표창과 답례품을 받았다. 쿠마나는 2007년 AP통신 인터뷰에서 “그 젊은 장교 케네디는 꼭 솔로몬 제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었다”며 “그의 암살 소식을 듣고 일주일 동안 애도했다”고 말했다.
솔로몬 제도는 여전히 열강이 패권을 다투는 최전선이다. 남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아내려는 미국이 총성 없는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일정을 공개한 호주 주재 미국 대사관 페이스북에는 캐럴라인 못지않게 그의 아들 슐로스버그를 부각시킨 사진도 여러 장 게재됐다. 자신을 통해 ‘존 F 케네디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엄마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케네디 대통령의 딸’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캐럴라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2017년 일본 대사를 역임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2021년 12월 호주 대사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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