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자 막겠다는 텍사스 '수중 장벽', 결국 인명 사고... 현실이 된 '죽음의 덫'

권영은 2023. 8. 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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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주, 미-멕시코 국경 강물 속 설치
성인 남성·어린이 시신 2구 처음 발견돼
"사람 잡는 덫... 당장 제거를" 비난 쇄도
미 연방정부 소송·멕시코 대통령도 가세
지난달 24일 멕시코에서 미국 텍사스주 이글패스로 가기 위해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수중 장벽'의 틈새를 찾아 조심조심 거닐고 있다. 이글패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州)가 밀입국자를 막겠다며 멕시코와의 국경을 가르는 리오그란데강에 설치한 '수중 장벽'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온두라스 출신 어린이 등 2명이 익사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죽음의 덫'이라는 비판이 쇄도하면서 문제의 수중 장벽을 둘러싼 논란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멕시코와의 외교 갈등으로도 비화할 조짐이다.


날카로운 금속 붙인 부표… "국경 보호 조치"라는 텍사스

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지역매체 댈러스모닝뉴스에 따르면, 멕시코 외무부는 전날 "리오브라보강(미국명 리오그란데강)의 수중 장벽과 연결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305m 길이의 수중 장벽 남쪽 부분에 낀 채 숨진 한 성인 남성의 시신이 나온 것이다. 몇 시간 후, 이 지점으로부터 약 5㎞ 떨어진 강 하류에서도 또 다른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이번엔 온두라스 출신 어린이였다. 아이의 엄마가 티셔츠와 신발을 통해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잇단 인명 사고에 비난의 화살은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에게 쏟아졌다. 수중 장벽은 '미국 보수의 텃밭' 텍사스에서 내리 3선을 한 공화당 소속 애벗 주지사의 작품이다. 이른바 '론스타 작전'으로 반(反)난민 정책 선봉에 서 있는 그는 "이민자, 마약 등으로부터 국경을 보호하겠다"고 연일 외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불법 이민자를 즉각 추방할 수 있도록 한 '42호 정책'이 지난 5월 종료되자 국경 빗장을 다시 걸어 잠그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달 8일 국경도시 이글패스가 끼고 있는 리오그란데 강둑에 세운 수중 장벽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상대적으로 강폭이 좁아 미국으로 향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길목에 설치한 부유식 장벽인데, 강바닥에 고정된 부표 사이에 날카로운 금속 조각을 붙인 탓이다. 댈러스모닝뉴스는 "좁은 틈새를 기어오르려다가는 자상을 입기 쉽다"고 지적했다.

비인도적 처사라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시민단체 루터교 이민·난민서비스(LIRS)의 크리쉬 비냐라자 최고경영자(CEO)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절대적 비극 앞에서 이민 정책에 대한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며 "이목을 끌려는 정치적 행동이 '죽음의 덫'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강 건너 이글패스와 마주하는 멕시코 도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의 이주민보호소에서 일하는 이사벨 투르치오스 수녀는 "수중 장벽은 이민자들을 겨냥해 설치된 덫"이라며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이주민들을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미국 텍사스주 이글패스의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주 경찰이 철조망을 넘는 이민자를 붙잡고 있다. 이글패스=EPA 연합뉴스

"비인도적"… 커지는 '장벽 제거' 목소리

그럼에도 애벗 주지사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달 24일 미국 법무부가 "연방정부 승인 없이 수중 장벽을 설치했다"며 텍사스주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애벗 주지사는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법정에서 보자"고 응수했다.

이번 인명 사고에 대해서도 수중 장벽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강을 건너다 익사한 시신이 수중 장벽 쪽으로 떠밀려 온 것이라는 입장만 취했다. 앤드루 마할레리스 주지사 대변인은 "리오그란데강에서는 불법으로 강을 건너다 익사하는 일이 흔하다"며 "이 모든 죽음은 바이든 대통령과 멕시코 대통령의 무모한 국경 개방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멕시코 정부는 발끈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3일 일일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말한 뒤, 애벗 주지사를 향해 "비인도적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직격했다. 이어 "수중 장벽이 멕시코의 주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부표를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일 시민단체 60여 곳은 "폭력적인 국경 전략을 중단하고 수중 장벽을 제거하라"는 내용의 공동 서한을 텍사스 주의원들에게 보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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