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GS건설 결과적으로 좋은 일 했다

김참 부동산부장 2023. 8. 5. 0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5일 GS건설이 지하주차장이 붕괴한 공사 중이던 인천 검단 아파트의 전면 재시공을 발표했을 당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가 붕괴된 것도 아니고 공사 중인 주차장만 무너진 것인데, 너무 비효율적인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효율 만능주의 시대를 살다 보니, 지극히도 당연한 결정을 한 GS건설의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주차장이 붕괴한 아파트 동만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체를 철거후 전면 재시공하겠다는 결정은 비용 측면만 봐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단지를 전면 재시공할 경우 손실이 5000억원 이상 발생해 웬만한 회사는 문을 닫게 된다.

그럼에도 GS건설은 ‘자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키고,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재시공을 결정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효율성에 집착하게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러면 꽤 높은 빈도로 더 나쁜 결정을 하게 된다. 다행히도 GS건설은 효율성을 포기하고, 대신에 혹시 모를 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사실 사람이 입주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붕괴한 사건이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바 있다.

1970년 4월 마포구에 있던 와우아파트의 1개 동이 무너졌다. 무너진 시간은 새벽. 3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다친 사람은 38명이 넘는다. 사고 원인은 워낙 다양해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설계는 당연히 잘못됐고, 철근 70개를 써야 할 기둥에 고작 철근 5개만 쓰는 등 날림 공사가 이뤄졌다. 콘크리트는 시멘트 함량이 적어 강도가 떨어졌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기는 단축했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하청업체들은 빠듯한 공사비에서 이윤을 떼먹기 바빴다. 당시 서울시는 와우아파트 입주 초기에 콘크리트 갈라짐 현상이 나타나며 입주민이 불안해하자, 안전진단을 통과한 건물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최근 벌어진 검단아파트 주차장 붕괴와 LH가 발주한 15개 단지의 철근 누락 사태는 와우아파트처럼 대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부실했던 시공 과정은 판박이처럼 똑같다.

애초 아파트 설계는 잘못됐고, 시공사는 공기 단축 혹은 설계상 문제로 철근을 빼고 아파트를 지었다. 설계와 시공단계에서 오류를 잡아내는 감리사는 제 역할을 못하고, 발주처의 눈치만 봤다. 이런 아파트가 준공 이후 행운이 따른다면 계속해서 버티고 서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예상치 못한 재앙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철근콘트리트 건물의 경우 수명을 20~30년으로 본다. 그러나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수명을 평균 100년 이상으로 보고 있다.

같은 자재로 만든 건물인데 우리는 20~30년을 건물 수명으로 보고, 유럽은 100년 이상으로 보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는 아파트를 지은지 30년만 지나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고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것이 태반이다. 우리나라의 철근콘크리트가 유럽의 철근콘크리트보다 내구성이 약할 리도 없는데 말이다.

이번 철근 누락 부실시공 사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아파트 전수조사와 건설 이권 카르텔을 깨부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어떻게 보면 검단 아파트 입주민들은 운이 좋은 셈이다. 만약 시공사가 대형건설사가 아니라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한 건설사였다면, 일부 경영진과 책임자만 처벌받고 적당히 보강만 해서 공사를 서둘러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해당 아파트에서 불안에 떨며 살 입주민들이 보게 된다.

효율성을 높이고 자원 사용을 최적화한다는 명분하에 철근을 빼고, 비 오는날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철근 간 결속을 느슨하게 해도 다들 애써 눈을 감았다.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짓는다’라는 보편적 가치를 희생하고, 공기(工期)와 비용을 극단적으로 줄여 효율성만 추구했다. 이번 부실시공 사태는 단기적 효율성에 집착하는 오늘날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5000억원이 넘는 비효율이 발생했지만, 건설업계의 민낯을 드려나게 해 부실시공 문제가 뿌리 뽑힐 수만 있다면 GS건설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