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잇따르는 묻지마 칼부림과 모방 범죄, 테러로 보고 대응해야
경기도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20대 남성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4명이 다치는 사건이 3일 발생했다. 이 중 12명은 중상이다. 범인은 도망가는 행인들을 쫓아가며 흉기로 찔렀다.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변을 당했고 백화점 이용객들과 행인들은 극심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최근 서울 신림동에서 발생한 ‘묻지 마 칼부림’ 사건 이후 13일 만에 끔찍한 칼부림 난동이 또 벌어진 것이다. 4일엔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흉기를 들고 배회하던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고, 대전에선 고등학교에 침입한 남자가 40대 교사를 흉기로 찌른 사건도 발생했다. 그동안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우리 사회의 치안이 흔들리자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신림동 사건 이후 인터넷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만 수십 건에 달해 모방 범죄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신림동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20대 남성이 구속됐는데도 무차별 살인을 예고한 글은 계속 나오고 있다. ‘분당 사건’도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있다. 범인은 차를 몰고 백화점 앞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다치게 한 뒤 차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둘렀다. 대낮 번화가에서 흉기를 휘두른 신림동 사건, 2008년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 번화가에 차를 몰고 돌진한 뒤 차에서 내려 행인들을 흉기로 찔러 7명을 살해한 ‘아키하바라 사건’과도 유사하다.
분당 사건 범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이후 병원에서 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면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 상대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사건 범인이 신림동 사건과 그 이후 인터넷에 떠돈 ‘살인 예고’ 글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묻지 마 범죄’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예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모방 범죄까지 더해지면 심각한 사회 불안이 생길 수 있다. 경찰은 우선 살인 예고 글을 올린 이들을 빨리 추적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흉악 범죄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지시했고, 경찰은 특별 치안 활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경찰에만 맡길 수준을 넘어섰다. 국가 차원에서도 묻지 마 범죄를 ‘테러 행위’로 간주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묻지 마 테러를 가중 처벌할 수 있는 입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신 질환자 관리 체계나 경쟁 사회에서 낙오한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에 허점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잔인한 폭력물로 넘쳐나는 한국 영화와 일부 TV 프로그램이 이런 범죄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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