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인생은 모두 날씨였다
“세 시의 거리는 뜨거웠고 네 시엔 더 뜨거워졌다. 4월의 먼지는 태양을 그물로 잡아두었다가, 영겁과도 같은 오후마다 되풀이하는 낡은 농담거리처럼 세상에 다시 퍼뜨릴 태세였다. 하지만 네 시 반이 되자 고요의 첫 번째 층이 드리워졌고, 차양과 잎사귀 무성한 나무들 아래로는 그림자가 길어졌다. 이런 열기 속에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인생은 모두 날씨였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젤리빈’을 읽다가, 마지막 문단 일부를 옮겨 적어 봅니다. 어느 여름,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구절을 본 후, 폭염이 찾아올 때면 ‘젤리빈’을 떠올리곤 합니다. 특히 이 문장, ‘인생은 모두 날씨였다(All life was weather).’
‘젤리빈(Jelly-bean)’이란 내세울 것 없는 한량을 일컫는 1910~1920년대 미국 속어랍니다. 소설 배경은 미국 남부 조지아의 소도시 탈턴. 주인공 짐은 ‘젤리빈’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빈둥대는 청년인데, 마을의 매혹적 처녀 낸시에게 반합니다. “추억 속의 키스 같은 입술, 아련한 눈매,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검푸른 머리칼을 지닌” 여자이지요.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에게 바친 개츠비의 순정이 그러했듯, 낸시에 대한 짐의 순정도 결실을 보지 못합니다. 그 모든 열망과 절망이 몽롱한 남부의 더위 속에서 열에 들뜬 듯 피어올랐다 헛되이 사그라들지요.
‘인생은 모두 날씨였다’를 잇는 문장을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세상 어떤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뜨거움을 거쳐, 지친 이마에 갖다 대는 여자의 손처럼 부드럽고 위안이 되는 서늘함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연일 약탈적인 더위.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서늘한 손길 같은 바람은 대체 언제쯤 불어올까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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