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그래, 지옥에는 내가 간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 많은 시대
노벨상 작가·웹툰 작가 보며
홀대받던 가치를 떠올린다
아들의 특수교사를 고소한 웹툰 작가 부부를 보며,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를 떠올렸다. 올봄 세상을 떠난 까닭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의 아빠였다는 사실이 먼저였을 것이다.
10여 년 전 책 담당을 맡고 있던 시절, 나는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의 신문 서평을 쓰다가 이 노벨문학상 작가의 개인적 아픔과 체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그때 읽은 작가의 좌우명이 있다. “그래, 지옥에는 내가 간다.”
오에는 이제 고전이 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 일생의 화두를 얻었다고 했다. 주인공 허클베리핀이 도망친 노예 짐을 밀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내뱉는 결심.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천황제와 국가주의 그리고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반대하는 그의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름났지만, 그의 오랜 독자들은 이 문장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를 헤아린다. 탁구공만 한 혹을 뇌에 달고 태어났던 아들 히카리.
오에는 매일매일 40년 넘게 아들의 담요를 덮어주는 일로 하루를 마감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마흔 살이 넘어도 자기 담요 하나 제대로 못 덮어 겨울이면 감기에 걸리는 아들. 아이의 장애는 환갑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으며, 부모가 먼저 늙어 죽어도 장애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학교가, 이웃이 그의 아이를 돕고 연민하겠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지적 장애를 지닌 아들을 책임지고 보살피겠는가.
나는 웹툰 작가 역시 같은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자폐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더 커지면 안 된다는 주장의 당위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고민해 볼 대목이 있다. 우리 사회가 어느 시점부터 개인의 의무나 책임보다 권리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균형추가 옮겨갔다는 우려 말이다. 권리와 권한은 마음껏 누리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을 상상해보라. 학교에서 풀었어야 할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간 사건의 이면에도 이런 기울어진 균형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아이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고, 해당 교사와 면담 한 번 없이 수사 기관에 신고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녹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인터넷에 달린 한 교사의 댓글을 기억한다. “그러면 우리도 보디캠 달아야 하나요.”
교사도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녹음기와 보디캠이 대립하는 학교라니. 그 안에서 무슨 교육과 배움이 있을 것인가.
그에게 쏟아진 비판이 남달리 컸던 까닭에는 이 웹툰 작가가 그동안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배경도 있다. 사회를 향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면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소홀했던 사례를 최근의 우리는 너무 빈번하게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단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무’의 시인 신경림(87)이 들려준 일화 한 토막이 있다. 1970년대 피켓만 들어도 잡혀가던 시절, 다음 날로 예정된 유신 반대 시위를 앞두고 시인과 소설가들이 준비를 위해 모였다. 다들 앞장서서 목청을 높이는데, 유일하게 소설가 이문구(1941~2003) 혼자 조심스레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다들 구속되면 가족은 누가 돌보냐고. 하지만 정작 날이 밝았을 때, 시위 현장에 피켓 들고 나온 건 이문구가 유일했다는 것이다. 시인은 말했다. “나는 좌든 우든 믿지 않아, 성실한 놈만 믿어.”
권리와 책임은 늘 함께 가는 법. 지옥에는 네가 가라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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