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닿을 듯 어긋나고 부서져버리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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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가고 싶어서요."
여자 대학생인 희원은 자신이 존경하는 젊은 여자 강사와의 저녁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처받은 희원은 자신도 모르게 강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뱉었다.
희원은 대학원에 진학했고 비정규직 여자 강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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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일 섬세하게 그려
“상처는 사랑했기에 생기는 추억”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지음/352쪽·1만6800원·문학동네
여자 대학생인 희원은 자신이 존경하는 젊은 여자 강사와의 저녁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은행에서 일하다가 스물일곱 살에야 뒤늦게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 건 대학원 진학까지 생각해서라는 것이다. 강사는 “공부는 대학원이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다”며 은근히 만류했다.
상처받은 희원은 자신도 모르게 강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뱉었다. 강의에서 꼬투리를 잡던 다른 학생들을 언급하다 “선생님이 젊은 여자 강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선생님이 정교수였다고 해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강사는 희원의 말에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희원은 대학원에 진학했고 비정규직 여자 강사가 됐다. 현실에 치여 사느라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가끔 자신이 존경하던 그 여자 강사가 떠오른다. 강사 평가서를 읽으며 좌절할 때, 무례한 학생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후회할 때, 성과를 위해 억지로 논문을 쓸 때. 표제작인 단편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내용이다.
7편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은 관계의 시작과 부서짐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여성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연대감을 바탕으로 진한 우정을 맺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일 년’은 정규직 사원과 계약직 인턴인 동갑내기 여성의 우정을 다룬다. 둘은 함께 차를 타고 출퇴근하며 친해지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에 멀어진다. 8년이 지나 우연히 만난 둘은 가면을 쓰며 친한 척하기보단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길을 선택한다. 언니와 멀어지게 된 여동생이 편지를 쓰며 화해를 모색하는 ‘답신’, 60대 여성이 딸을 만나기 위해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자신을 아끼면서도 엄격하던 이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담긴 ‘이모에게’처럼 가족 간의 애증도 다뤘다.
등장인물들은 항상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는 일에도 받는 일에도 재주가 없었지만 언제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상처 역시 사랑했기에 생기는 추억일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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