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지 않는 책과 우중독서의 낭만[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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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컴퓨터에 전자책(e북)이 수천 권 있어도 안 읽게 되더라."
다른 지인도 "사실 e북은 도서관 온라인 홈페이지에 가입한 뒤 무료로 빌려볼 수도 있다"며 "이번 e북 해킹 사건과 상관없이 책을 살 사람은 사고, 안 살 사람은 안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속에서도 보도록 안내서를 인쇄하거나 군대에서 쓰는 공책을 만들 때 주로 쓰는 미네랄 페이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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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비 내린다면 필수품 될지도
◇나의 친구/문보영 외 지음/96쪽·1만5000원·민음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누가 온라인 서점 알라딘 e북 해킹 파일을 줬다는 지인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처음엔 호기심 반, 소장욕 반으로 e북 파일을 받았지만 결국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지인도 “사실 e북은 도서관 온라인 홈페이지에 가입한 뒤 무료로 빌려볼 수도 있다”며 “이번 e북 해킹 사건과 상관없이 책을 살 사람은 사고, 안 살 사람은 안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출판계 베스트셀러 등 e북 5000여 권이 알라딘 해킹으로 유출된 지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의외로(?) 파장이 크지 않다. 경찰 수사가 바로 시작된 덕도 있지만, 물성(物性)이 강한 책이란 상품이 지닌 특성 때문일 터다. e북이 유출돼도 종이책을 사거나 빌려 보는 사람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워터프루프북’이야말로 물성을 찾는 애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책 아닐까. ‘나의 친구’는 물에 닿아도 젖지 않는 워터프루프북이다. 이 책은 물이 닿더라도 금세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속에서도 보도록 안내서를 인쇄하거나 군대에서 쓰는 공책을 만들 때 주로 쓰는 미네랄 페이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워터프루프북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18년이다. 처음엔 정세랑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2016년·민음사) 같은 기존 베스트셀러를 워터프루프북으로 다시 펴냈다. 이와 달리 ‘나의 친구’는 젊은 작가들의 에세이를 모아 새롭게 제작한 신간이다. 수영장, 해변, 계곡처럼 휴양지에서 읽는 만큼 가볍게 읽기 좋은 짧은 글을 넣었다.
‘나의 친구’에서 작가 8명은 에세이 16편을 통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보영 시인은 친구의 일기를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한다. 권민경 시인은 외롭던 10대 시절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김연덕 시인은 전혀 모르는 사람과 친해졌던 일을 들려준다. “(밤늦게) 내가 깨어 있는 이유는, 보통 누군가를 이유 없이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라는 김남숙 소설가의 문장은 새벽 물이 가득 채워진 욕조 안에서 읽어야 할 것처럼 촉촉하다.
민음사 편집부는 ‘나의 친구’ 서문에서 “습도 높은 바람을 맞고 있자면 ‘7월에는 매일매일 비가 내린대……’ 하는, 어디선가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게 된다. 비가 끊임없이 내릴 거라는 소문을 듣고 올해의 워터프루프북을 들고 걷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고 했다. 상상처럼 7월에는 정말 비가 많이 왔다. 기후변화로 한국이 아열대 기후가 된다면, 매일 아침 우산을 가지고 나갈지 말지 고민하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아침 보통 종이책과 워터프루프북 중 무엇을 들고 나갈지 고민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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