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만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이들에게

유원모 기자 2023. 8. 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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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안 돼." 저자가 어릴 적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다.

두 살 때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아 두 눈을 잃은 저자에게 시력이란 초능력처럼 느껴졌단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어디 가니?"라고 지적한다.

환갑을 목전에 둔 저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호의를 보인다며 "내가 데려다 줄게"라고 접근해 오는 이들에게 "그러냐, 고맙구나"라며 반말로 대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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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노수경 옮김/284쪽·1만6800원·김영사
“만지면 안 돼.” 저자가 어릴 적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다. 만지지 말라는 말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만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건가. 두 살 때 소아암의 일종인 망막아세포종을 앓아 두 눈을 잃은 저자에게 시력이란 초능력처럼 느껴졌단다. 만지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다니.

일본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 온 삶을 담아낸 에세이다. 책에는 세상을 눈이 아니라 만져서 보고, 귀로 들어서 보고, 맛으로 보고, 냄새로 바라봐 온 저자의 여정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담겨 있다. 언어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그가 10년간 NHK 라디오 ‘시각장애인 여러분에게’에 출연해 대담한 내용과 일본의 점자 주간지 ‘점자 마이니치’에 9년간 칼럼을 연재한 글 등을 엮었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어디 가니?”라고 지적한다. 일본어에도 섬세한 경어 표현이 있어 처음 만난 성인에게는 정중한 말이나 경어를 사용하는데 다짜고짜 반말을 한다는 것이다. 환갑을 목전에 둔 저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호의를 보인다며 “내가 데려다 줄게”라고 접근해 오는 이들에게 “그러냐, 고맙구나”라며 반말로 대꾸한다고 한다. 장애인을 향한 차별적 인식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일본의 장애인 배려 정책인 ‘배리어 프리’의 실상은 한국과 비슷한 구석도 많다. 열차로 통근하는 저자는 배차 간격이 긴 역에서 서둘러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싶은데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역무원으로 인해 일정을 망치고, 다른 승객들과 달리 하차 10분 전부터 “슬슬 준비하라”는 압박까지 받는다. “배리어 프리로부터의 프리”를 외치는 저자의 일갈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눈으로 보지 않는 부족’ ‘눈으로 보는 부족’으로 나눠 표현한다. ‘겨우 눈으로밖에 세상을 볼 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과 통찰을 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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