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벌레에 코로나까지 덮쳐…외국 학생 “아마존 생각나”

김준희.유지혜.최기웅 2023. 8. 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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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먹은 잼버리’ 총체적 난맥상
4일 오전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한 참가자가 동료 등에 업힌 채 응급 쉼터로 들어가고 있다. 손글씨로 써서 임시로 만든 응급 쉼터 표시 플래카드가 긴급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최기웅 기자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진행중인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참가자들이 폭염과 질병, 열악한 시설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4일에도 잼버리 대회장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졌다. 지난 3일 하루에만 온열질환 등으로 진료를 받은 참가자는 1486명으로 집계됐다. 벌레물림이 383명으로 가장 많았고, 피부발진 250명, 온열증상 138명 등의 순이다. 조직위는 “대부분 경증”이라고 했지만, 아이를 입소시킨 부모를 중심으로 “이러다 대형 사고가 나는 것 아니냐”며 걱정·분노가 상당한 분위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지 내 코로나19 확진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3일까지 야영장에서 코로나19 환자 28명이 발생했다.

온열 환자가 쏟아지는 이유는 폭염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여의도 3배(8.84㎢) 규모의 간척지에 들어선 대회장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조직위가 덩굴 터널 7.4㎞와 그늘 쉼터 1720곳 등 인공 그늘을 만들었지만, 수만 명이 더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다. 야영장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곳은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뿐이다. 버스로 냉방 셔틀쉼터를 만들었으나 태부족이다. 군 당국은 이날 헬기를 동원해 위장막을 공수, ‘그늘막’으로 설치했다. 대회 전엔 비 때문에 대회장 곳곳이 물바다가 되더니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자 모기·날벌레 등이 창궐하면서 스카우트 대원들은 ‘벌레 물림’ 공포에 떨고 있다. 벌레 물림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일방문센터 수돗가에서 만난 라파엘(16·브라질)군은 “날씨가 습하고 더워서 여행갔던 아마존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페르난데스(17·포르투갈)군은 “열대야로 잠을 잘 못잤다”며 “하루에 물을 이렇게 많이 마신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부안 새만금 잼버리 경관센터 조망대에서 만난 부안 거주 백발의 어르신은 “간척 공사 할때부터 지켜봤는데 새만금에서 무엇이라도 한게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며 “성공적으로 마쳐야할텐데”라고 우려를 표했다. 취재하는 동안 물을 마실 곳이 없어 찾아 다녔지만 길게 줄지어진 GS25 편의점 외에는 구할 곳이 없었다. 이날부터 얼음 생수를 수백여개를 곳곳에 뿌렸지만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날 현재까지 2명의 스카우트 대원과 지도자가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 퇴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면서 우려했던 단체 퇴소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야영장에 스카우트 대원을 보낸 학부모 사이에서는 퇴소 인원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열악한 영내 사정과 대회 내내 이어진 폭염 탓에 스카우트 대원들이 야영 생활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당초 대회에는 4만3000여명이 참가하기로 했으나 이날 오전까지 집계된 참가자 수는 3만9304명에 그쳤다.

대회 운영 미숙과 시설 미비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대회 초기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관리되지 않았다. 현장 지원 관계자는 “이동식 화장실 변기에 오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볼일을 못 보는 참가자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장실도 부족해 기다리기 일쑤다. 샤워실·탈의실도 비슷하다. 일부 샤워실은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은 수준이어서 뒤에서 훤히 보일 정도다. 이에 참가자들이 이용을 꺼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대원 학부모는 “아이가 ‘전기 시설이 부족해 휴대전화 충전할 곳도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급기야 먹을거리 위생 문제도 터졌다. 2일 오전 대원들에게 식재료로 지급된 구운 계란 6개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조직위 관계자는 “먹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수거해 조사 중이다.

새만금 잼버리를 둘러싼 총체적 난맥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려지자 외국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들이 기대했던 대규모 국제 행사와 달리 폭염과 모기떼와 사투를 벌이는 ‘생존 게임’이 됐다” 등 불만이 쇄도한다. 온라인에선 “혐한 제조 대회”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 때문에 ‘대회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녹색연합은 이날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4만3000여 명의 청소년과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대회 강행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직위는 “큰 문제는 아니다”는 식으로 극기와 도전을 앞세운 이른바 ‘스카우트 정신’만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염영선 전북도의원은 이날 김관영 전북지사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한국 청소년들은)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데다 야영경험이 부족하다. 참가비마저 무료니 잼버리의 목적과 가치를 제대로 몰라 불평, 불만이 많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염 의원은 논란이 일자 이 댓글을 삭제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지금은 잼버리를 안전하게 잘 치러내는 것 자체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국민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며 “이태원 참사로 외국 청년들에게 한국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커졌는데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제적인 메가 이벤트를 유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안=김준희·유지혜·최기웅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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