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반복되고 공사 단가 쥐어짜…부실 검증 시스템 붕괴

배현정 2023. 8. 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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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없는 아파트’ 전문가 진단
3일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실을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 최명기(사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순살 아파트’로 불거진 철근 누락 사태에 대해 “과도한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하도급, 하도급 업체가 또다시 하도급을 주는 재하도급이 단계별·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설계에서 감리, 시공으로 이어지는 검증 시스템이 무너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에서 촉발된 이른바 ‘순살 아파트’(철근 없는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검단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의 전단 보강근이 대거 누락돼 발생했다.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 등 대형건설사가 시공한 단지다. 국토부는 LH가 발주한 공공아파트 91개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등 파장이 커지자 대통령실도 긴급 조치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국토부 등 관계 부처에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최명기 산업현장교수단 교수
이번 사태를 계기로 LH 직원들의 관련 업체 취업 등 전관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LH도 적극 진화에 나섰다. 2일 LH는 “반(反)카르텔 및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조직(TFT)를 설치하고 의혹이 제기된 업체에 대해선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정부에서 건설 현장의 이권 카르텔을 깨겠다고 하니, 요즘 LH 등 은퇴 공직자 모집 공고가 더 많이 뜨고 있다”며 “LH의 전관특혜도 문제지만, 이권 카르텔은 보다 광범위하고 더 견고하다”고 말했다.

Q : 무량판 구조의 지하주차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A : “검단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는 건, 쉽게 말해 건축물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라는 방식의 문제라기 보단, 제대로 설계와 시공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고의든 실수든 철근이 누락됐다. 32개소의 모든 기둥에 전단보강근(철근)이 필요한데, 15개소에서 철근이 빠졌다. 콘크리트 강도도 부족했다. 콘크리트 강도가 24㎫(메가파스칼) 정도는 나와야하는데, 18~19㎫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철근 누락을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콘크리트 강도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Q : 공공아파트 15개 단지에서도 철근이 빠졌다. 대통령실은 ‘이권 카르텔’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A : “정부가 지적한 LH의 전관특혜나 낙하산이 이권 카르텔의 한 요인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부실 공사를 유발하는 핵심 요인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과도한 이윤 추구로 쥐어짜기가 횡행하는 건설 현장,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건축물을 빨리 올리라는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작업자의 역량 부족 등이 총제적으로 맞물려 있다. 최근 정부에서 건설 현장의 이권 카르텔을 깨겠다고 하니, LH나 국토부 등 건설 관련 공공기관 은퇴자 모집 공고가 더 많이 뜨고 있다.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선제적 대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건설회사의 과도한 이윤 추구 경영 방식과 문화가 근본 문제라고 생각한다.”

Q : 부실 공사 관행은 왜 심각해진 걸까.
A : “과거에도 이른바 ‘철근 빼먹기’는 있었다. 그래도 예전엔 건설사 경영자들이 대개 기술자 출신이어서 어느 정도 안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가절감 등 이윤 추구를 앞세운 경영자들이 많다. 이윤을 앞세우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외주를 주고, 하도급이 몇 단계로 이뤄진다. 재하도급은 불법이다. 또 점검해야 할 직원도 현장에 충분히 배치되지 않는 실정이다. 예컨대 1990년대엔 현장에 공사 금액 10억원당 1명꼴로 직원이 배치됐다면, 지금은 50억원당 1명밖에 직원을 보내지 않는 수준이다. 현장 직원은 서류 점검만도 빠듯해, 현장을 둘러볼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철근 누락이나 공사 품질이 원청에서 아예 컨트롤이 안될 수준에 이르면서 붕괴에 이르렀다고 보여진다.”

Q : 부실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나.
A : “부실을 확인하는 시스템은 있지만,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현장이 문제다. 예컨대 감리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역량 부족이다. LH 등 공직에 있다가 퇴직 후 ‘제2의 인생’으로 감리를 맡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행정직 출신으로 현장 부실을 걸러낼 역량이 부족하다. 감리 역량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여건도 문제다. 감리가 부실을 지적하면 시공사는 공사 지체로 인한 막대한 비용 등에 대한 책임 문제를 걸고 압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제대로 감리를 하겠다고 들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현장을 감시해야 할 감리의 일자리를 대형 시공사들이 쥐고 흔드는 셈이다. 이런 게 이권 카르텔이다.”

Q : 신축 아파트 누수, 침수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A : “근본적인 부실 원인은 똑같다. 적절한 공사 기간과 비용으로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빠른 시간에 최저가로 공사를 밀어붙이니 마감이 불량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창문을 실리콘으로 100% 안전하게 메워야하는데, 빨리 하려니 한번 쭉 긋고 마는 거다. 누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공사 현장에선 날씨도 고려하지 않는다. 과거 겨울철에는 공사를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콘크리트의 물이 얼면서 품질 불량이 생길 수 있다. 겨울철에는 통상 3~4주가 걸려야 콘크리트 강도가 제대로 발현되는데, 일주일 만에 층을 올리기도 한다. 지난해 붕괴사고를 낸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태가 그런 환경에서 터졌다.”
지난해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건설 현장 사고는 건설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6명의 작업자가 목숨을 잃은 대참사였다. 조사결과, 17개 층 가운데 15개 층의 콘크리트 강도가 기준 강도의 85%에 못 미쳤다. 또 골조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창호 등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는 등 무리한 작업이 원인이었다. 사고 직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8개 동을 모두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넘도록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행정처분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현대산업개발은 중도에 ‘전면 철거’ 대신 ‘8개 동 지상 주거 부분’만 철거하는 것으로 말을 바꿔 입주예정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건설업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다시 ‘전면 철거’로 입장을 바꿨다. 최 교수는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가 나도 여론이 잠잠해지고 정권이 바뀌면 유야무야될 것으로 여기는 건설사들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Q : 건설 현장의 부실 문화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대책은 없나.
A : “서울시는 건설 현장에 CCTV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의도적으로 CCTV의 화질을 떨어뜨리는 등 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공직자들의 낙하산을 막는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심사대상이 아닌 공직자를 데려오거나 서류상 걸리지 않는 자회사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고용할 수도 있다. 건설사 스스로 부실공사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두려워해야 이권 카르텔이 뿌리 뽑힐 수 있다. 부실 사태가 일어나면 기대이익의 10배 정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게 하고, 강력한 형사처벌을 집행해서 부실 공사의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Q : 일각에선 후(後)분양이 부실 공사를 막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A : “후분양을 하면 아파트가 다 지어졌기 때문에 다각도의 검증이 이뤄질 수 있다. 그만큼 부실 공사 가능성이 줄어든다. 일부에선 빨리빨리 문화가 바뀌면 공사비가 올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경차와 대형차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듯, 우수 품질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싼 아파트만 찾으면 부실 문화는 근절되기 어렵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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