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서열주의 문화 탓, 권력 쥐면 포식자처럼 군림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갑질 공화국
사자 등 포식동물과 이런 동물에게 사냥 당하는 초식동물 간 차이는 뭘까?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에서도 차이가 나겠지만 바로 시선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포식동물들의 눈은 앞을 보도록 진화되었다. 보다 나은 깊이 지각(멀고 가까운 것을 알아보는 시각)이 발달되어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거리를 측정하고 각도가 꺾일 때도 바로 달라붙어 달려갈 수 있다. 포식동물들의 시선은 그들의 목표, 즉 먹이에만 집중되어 있어 그것을 획득할 수 있게 한다. 반면, 먹히는 동물들의 눈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 있도록 시야가 넓다. 이런 넓은 시각은 주변 환경을 널리 보게 하여 포식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미리 파악하게 한다. 즉 위험을 인식해 빠르게 대처하려는 생존체계인 것이다.
포식동물과 먹히는 동물의 차이를 인간의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권력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목표에만 주의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와 관련되는 정보만을 주로 처리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부담이나 고통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렇게 권력자가 지닌 자기중심성은 상황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조망수용능력을 훼손시킨다.
미국의 심리학자 갤린스키(Galinsky)가 실시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권력과 권한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이런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한 집단에게는 자신이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물품들을 나눠 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사람이라고 상상하도록 한다. 물품들을 키 큰 순서로 나눠주던지 예쁜 사람부터 나누어 주던지 자신이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반대로 다른 집단에게는 물품을 받아서 나누어주는 일만 할 것이며 실험자가 곧 알려 줄 분배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권한과 권력은 없다. 이렇게 상상하게 한 다음 두 집단의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중심성을 측정하는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들을 쓰게 해서 앞에 있는 사람들이 빨리 읽게 하는 게임이다. 그 결과 단순히 물품 전달만 하게 한 사람은 자기 앞에 앉은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E자를 반대로 써서 잘 일러주었다. 반면,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쓰게 편하게 글자를 써주었다. 즉,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하는 반면 권한을 부여 받은 집단은 자기만의 시각에 따라 글자를 썼다. 권력이 자기중심성을 만든 것이다. 권력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동이 이처럼 달라진다. 그러니 실제 커다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어떻겠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려스러운 현상은 다양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스스럼없이 갑질을 한다는 점이다. 갑과 을이 이전과 달리 점차 바뀌고 있어 고부관계나 사제관계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을 낳아서 이제까지 키워준 것이니 당연히 며느리 보다 자신의 위치가 더 갑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과연 그런 시대일까?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되는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교사가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아이들의 무시와 폭력에 맞서야 한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윗상사라고 부하직원을 하대하거나 감정을 거스리게 되면 바로 인터넷 악플 폭탄을 맞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갑이 되는 경우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서비스 제공자이면서 소비자다. 일을 할 때는 을의 위치지만 소비를 위해 지불을 하는 상황에서는 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시로 갑과 을을 번갈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주어지는 갑의 위치, 짧은 시간만큼이나 내가 가진 권력에 집중하게 된다. 을의 위치에서 받았던 부당함에 대해 일종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이 권력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게 된다. 갤린스키의 실험에서는 상상한 권력있지만, 이제는 비용 지불을 통해 실제로 가지게 된 권력이니 더욱 스스럼없이 자기중심적이 된다. 내 앞에 있는 이의 입장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된다.
외국에서는 용어조차 제대로 없는 갑질이 무조건적인 상하 관계의 서열주의 문화에 젖어있던 우리 사회에 점차 만연해가고 있는 것 같은 요즈음이다. 물론 서열주의 문화의 폐해도 명백하다. 그러나 권력의 축이 바뀌는 순간, 을이라는 입장에서 당한 서러움이 갑이 된 상황에서 상대에게 마구 분출되는 것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 한 쪽의 권리 보장이 무조건 다른 한 쪽의 인권 침해로 연결되는 것도 암담한 일이다.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면서까지 과도한 자기 권리 주장이 이어질 때 갑질이라고 한다. 도를 넘는 항의, 고발, 민원, 때로는 직접적인 가해 행위까지…, 갑질 문화라는 무서운 사회적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어 두려울 뿐이다.
영원한 ‘갑’은 없다. 모든 상황에서 늘 갑의 위치를 가진 사람들은 드물다. 스스로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는 순간적인 착각만 존재할 뿐이다. 내가 부린 갑질이 그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조금 우위라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자기조절이 요구된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과한 자존심이 빚어낸 착각을 경계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조절과 겸손을 요구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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