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내년 총선은 ‘자책골 적게 먹기’ 게임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1일 김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사과할 일이 아니다”며 ‘당당하게’ 맞섰던 기세와는 사뭇 달라진 기류다. 같은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 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며 김 위원장의 발언은 “맞는 얘기”라고 동조한 것과도 결이 다르다. 양이 의원은 파문이 커지자 2일 “오해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써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
「 김은경 혁신위원장 사과했지만
노인 폄하 논란은 아픈 상처 꺼내
여야 할 것 없이 상대 지지층 공격
‘뺄셈정치’ 하면 총선 패배 부를 것
」
그렇다면 왜 그런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진작에 몰랐을까. 정당들은 총선이나 대선 같은 주요 선거를 겨냥해 투표공학이니 정치공학이니 하며 각자 나름대로 선거전략을 세우기 마련이다. 당연히 타깃 계층을 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끌어모으겠다는 표 계산을 한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에 비해 청년층 지지가 두터운 정당이었다. 젊은층의 투표를 독려하고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힘을 쏟는 선거전략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다고 노년층을 배제하는 ‘마이너스 총선 전략’이 자충수, 자책골임을 모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실언(“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으로 참패를 당한 쓰라린 아픔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지 않았나 말이다. 젊은층의 표를 얻기 위해 노년층을 악마화하는 이른바 ‘갈라치기’의 과욕은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쯤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자명한 명제가 아닌가.
우리 사회는 이미 정치권이 깊게 쳐 놓은 갈라치기 그물에 포로가 돼 있다. 여와 야 할 것 없이 서로 편을 갈라서 물어뜯고 할퀸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의 역사에는 상대방 지지층을 폄하하는 발언들로 점철돼 있다. 남녀, 노소, 빈부, 노사, 이대남과 이대녀, 친일과 반일, 친중과 반중,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으로 진영이 갈가리 찢겨져 있다. 한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을 채우겠다는 뺄셈정치에 익숙해 있다. 그 분열과 갈등, 반목은 매일매일 지금도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으며 거의 병리현상에 가깝다. 이번 김은경 위원장의 노인 폄하 논란도 그 한 편린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 정치권에서는 ‘○나땡’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가 나와 주면 땡큐’라는 신드롬이다. 추나땡(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조나땡(조국 전 법무부 장관), 우나땡(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외치며 상대편 ×맨들의 출마를 응원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네티즌 중 일부는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사퇴하지 않고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완주해 주기를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김 위원장의 공식 사과와 대한노인회 방문으로 노인 폄하 발언 파문은 일단 매듭지어졌지만 언제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인다. 지나간 과오로부터 배우는 교훈이 없는 정당은 또다시 패배의 쓰라림을 겪게 될 것이다. ‘김나땡’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김 위원장과 민주당 혁신위 하기 나름일 것이다. 혁신위를 혁신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은 늘 그랬듯이 ‘자책골 적게 먹기 게임’이 될 것이다. 우리 정치 풍토상 실수를 적게 하는 정당이 승리할 수 있다는 법칙이 내년 총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사다. 야구에서도 공격 못지않게 수비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솔로홈런 한 방은 1점이지만 만루에서의 실책은 대량실점으로 연결된다. 큰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 뒤늦게 마지못해 사과해 봐야 ‘버스 떠나고 손 흔들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 직전에 터지지 않은 것이 민주당으로서는 천만다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합리와 이성, 반대편도 포용하려는 덧셈정치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인가.
한경환 총괄 에디터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