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아름다운 관계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는가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문학동네 2000)
강원도 정선 화암면의 몰운대. 이곳에는 제가 좋아하는 절벽이 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도 그 아래 흐르는 맑은 강물도 아름답지만 이곳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주는 것은 절벽 끝 두 그루의 소나무입니다. 한 그루는 크고 웅장하지만 죽은 나무입니다. 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 살다가 이제 생명이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밑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새로 자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백 년의 시간쯤은 더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푸릇푸릇한.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절벽에는 늘 소나무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다르니 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나무가 있으니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결같이 새로운 사랑의 마음처럼.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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