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복병 덮친 잼버리…길게 늘어선 병원 대기줄, 어쩌나

이지안 기자(cup@mk.co.kr), 권오균 기자(592kwon@mk.co.kr) 2023. 8.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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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40도 달하자 온열환자 속출
‘의료대란’ 비판 일자 의사 추가 투입
2015년 일본 대회
참가자 새만금보다 1만명 적지만
의료진 30명 이상 더 투입해 대비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이 4일 전북 부안 야영지 내 덩굴터널에서 무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부안 = 한주형 기자]
“쉴만한 공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땀이 쉴 새 없이 줄줄 흘러요.”

부안 새만금잼버리 참가자인 베트남 출신 호앙(Hoang·15)은 연신 땀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4일 오후 2시께 전라북도 부안 잼버리 행사장. 극한의 더위를 호소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잼버리 병원을 방문했다. 한 참가자는 심각한 온열 증상을 호소하며 친구 두 명에게 부축당한 채로 병원을 찾기도 했다. 병원 밖에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축 늘어진채 대기 좌석에 일렬로 앉아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참가자들은 참기 힘든 더위를 호소했다. 폴란드 출신의 20대 안내요원 A씨는 “고향은 이렇게까지 덥진 않은데 한국 날씨가 훨씬 덥고 습해 적응하기가 어렵다”라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교류가 즐겁긴 하지만 버티기가 힘들다”라고 전했다. 호앙은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지만 땀이 줄줄 흐른다”라며 “쉴만한 공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께 부안군에서는 ‘전국적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낮 야외활동을 자제해달라’라는 안전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잼버리 델타 지역에는 수천 명의 행사 참가자들이 야외에서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43개 영내 활동 중 140개가 취소되면서 프로그램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낮 최고 온도가 38도를 넘어가고 체감온도가 40도에 달하는 등 폭염 상황은 참가자들을 힘들게 했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온열환자가 속출하는 등 ‘의료 대란’이라는 비판이 가해지자 조직위원회(조직위)는 의료진 증원과 병상 확충을 약속했다. 언론에 보도된 잼버리 병원은 적은 의료진과 환자가 뒤섞여 아수라장의 현장 상태였다. 언론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조직위는 잼버리 병원 취재를 제한했다. 조직위 측은 “일부 기자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무단 촬영해 세계연맹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며 취재 제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의도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잼버리 온열질환자 발생은 새만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름철 열리는 특성상 역대 잼버리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2015년 23회 일본 잼버리 당시 영내 병원을 찾은 참가자도 3200여 명에 달했다. 간척지인 새만금과 달리 나무가 울창한 국립공원에서 진행된 2019 제24회 북미 잼버리에서도 온열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도 매일 1000여명의 환자가 영내 병원을 찾았다.

그렇지만 사전 대비에선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2015년 일본 잼버리에서는 올해보다 1만명 가까이 적은 3만 3000여명이 참가한 행사였지만 응급 상황에 대비해 의사 78명을 상주시켰다. 새만금잼버리에는 고작 45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오늘은 의사 23명을, 내일은 의사 14명을 추가 배치할 예정”라며 “잼버리 클리닉 운영시간을 연장하겠다”고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일 국방부에 공병대 지원과 군의관 파견 지시를 내려 다음달에야 30명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간척지에 대한 대비책에서도 소홀함이 두드러진다. 2015년 세계잼버리가 열린 일본 야마구치현 키라라하마도 새만금처럼 간척지였지만, 행사 준비 과정에서 야마구치현은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서 2001년의 ‘야마구치박람회’를 비롯해 다양한 대규모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잼버리 대회를 치르기 위한 인프라를 차근차근 구축하면 준비 운동을 했다는 얘기다. 덥고 습한 간척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방안도 사전에 마련했다. 배수문제를 해결하려고 당시 일본은 땅을 주변보다 높게 올려 배수를 원활하게 했다.

반면 부안 새만금은 부지가 갯벌을 개간해 농지로 활용되던 평지라 그늘이 없다는 점, 배수가 불편하다는 점 등의 우려 사항이 일찌감치 예고돼 있었다. 올해는 긴 장마 이후 폭염이 찾아오면서 온열질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지난 폭우에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노출하고 제대로 메꾸지 못해 모기 등 벌레떼도 창궐했다.

물론 다수 잼버리 참가 청소년들은 씩씩하게 이 사태를 헤쳐 나가고 있다. 세계스카우트 연맹 제이컵 머리 이벤트 국장 겸 공동 종합 상황 실장은 “매일 하루가 종료되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참가자 61%는 매우 만족 또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오직 8% 참가자들만 매우 불만족하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부족한 준비와 인프라를 개인들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영지 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료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3일 낮 12시 기준 영지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19명으로 집계됐다. 2일 같은 시간대와 비교했을 때보다 10명이 증가한 수치다. 조직위에 따르면 2일 26명의 한국 잼버리대원이 코로나 감염이나 부모의 우려 등을 이유로 잼버리 참가를 중도에 포기하고 귀가했다.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는 “코로나 19와 온열 질환자가 결합했을 경우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다”라며 “이에 대응하는 의료 대응 체계를 빠르게 수립하고 이송 체계나 환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오는 6일 이번 잼버리의 최대 축제인 K-팝 콘서트, 11일 폐영식 등 폭염 속 대형 행사들이 남아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다중인파가 몰리고 열기가 과열되면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가 힘들 수 있다”며 “중간중간에 휴식시간을 갖게 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의료진과 안전요원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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