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기반해 설립된 통일부, 정치에 흔들리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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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신임 통일연구원장
지난달 20일 취임한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통일부 정책총괄과장, 교류협력국장, 통일정책실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때 차관을 지낸 정통 통일부 관료 출신이다. 퇴임 이후 대학 강의와 집필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가 다시 정부의 통일 및 남북관계 관련 연구 업무를 총괄하는 공직자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대선 기간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해 통일·대북 공약 설계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관계는 변수가 아닌 상수
Q :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를 ‘대북 지원부’로 칭하면서 통일부의 정체성 논란이 불거졌다.
A : “통일부는 헌법 3조·4조에 근거한 부처다. 통일을 지향하고,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한다는 헌법 정신을 구현할 주무부처다. 따라서 통일부의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이 통일에 대한 권리와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한반도의 영토주권을 수호하고 ‘8000만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 통일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의 이유와 당위성을 확산시키고 국민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데 있고, 통일부가 정체성에 맞게 제대로 일을 하려면 오히려 24시간도 부족하다.”
Q : 그럼에도 통일부 조직의 축소·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A : “탈냉전 시기에 대화나 교류·협력 관련 업무에 편중됐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북 업무는 통일부 전체 업무의 20%에 불과하다. 확실한 업무 조정을 통해 정책 수립, 정세 분석, 통일 교육 및 홍보, 특히 북한 인권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 해결, 탈북민 정착 지원 등 본원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통일부는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A :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통일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명확한 철학을 밝혔다. 통일 문제를 담당해온 저는 대통령의 철학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연구의 기본 정신으로 삼아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인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 통일에 대비한 연구, 과학적 북한 연구 풍토 조성 등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Q : 전임 정부에서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했지만, 대북정책이 오히려 미궁에 빠졌다.
A : “북핵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부족했고, 특히 정세 판단과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 북한은 핵을 체제의 문제, 즉 체제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관계 정상화나 경제 지원과 같은 접근으로는 핵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전임 정부가 추구했던 ‘평화경제’나 ‘선(先)평화·후(後)비핵화’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방법론이다. 이 때문에 그 기간 한·미 관계는 내내 불편했고, 북핵은 더 고도화했으며, 남북관계는 더 나빠졌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추세 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티베트화 걱정할 정도
Q : 북한이 핵을 체제의 문제로 본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A : “소련의 멸망이 그 답을 말해준다. 소련은 핵무력이 가장 강한 나라였지만 결국 무너졌다. 지금 핵무장은 북한에게 실제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선 한·미 확장억제와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면서 안보 딜레마가 커졌다. 경제가 고립돼 주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감시·통제 비용이 증가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져서 북한의 ‘티베트화’를 걱정할 정도가 됐다. 결국 북한도 비핵화를 고민하게 될 거란 의미다.”
Q : 경제 상황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 수 있다고 보는가.
A : “과거에도 경제문제가 북한이 대화에 나온 중요한 동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러한 종류의 대화가 그대로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연결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북한은 주민들의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핵을 개발했고 그것을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Q : 압박이 ‘북한의 오판’을 유발할 거란 우려도 있다.
A :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이 실질적으로 추진됐던 시기의 한반도 정세는 매우 위험했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급변할 수 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한반도에서 상황에 따라 며칠 안에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원칙을 지킬 때다. 우리는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전략적이든 안보적이든 경제적이든 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비핵화를 위한)대화가 열릴 수 있다. 이에 앞서 핵선제 공격을 법제화하고 전쟁을 공언한 북한을 억제해 전쟁을 막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4·26 워싱턴 선언이 바로 전쟁을 막기 위한 조치였고, 이게 성공해야 그 다음 수순이 가능해진다.”
김 원장은 “남북 관계는 늘 어렵다. 그건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통일부 차관을 지냈던 이명박 정부 시절과 비교해 “정상적 남북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국제 정세는 분명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Q :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한 정세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A :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했고, 국제 정세가 새로운 냉전에 들어서면서 진영과 공급망이 재편되는 전환기가 됐다. 역사상 가장 근본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변화다. 정부는 이런 정세를 감안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 의지를 분명하게 하면서 한·미 확장억제체제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도발에 대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책연구기관도 정체성에 맞는 연구를 해야 한다. 국가 정책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공공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고, 그 방향은 헌법과 국민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Q : 정치 지형에 따라 통일정책이 변한다는 우려도 있다.
A : “통일문제는 가치와 체제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자칫 이념논쟁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통일문제에 대한 확고한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즉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 등 3대 원칙이다. 이 원칙이 바로 진영을 초월한 ‘통일 대계’이고 여기서 벗어난 주장이나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Q : 분단의 장기화로 통일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A : “‘왜 통일해야 하는가’를 알리는 것은 통일연구원의 핵심 사명이다. 일각에서 ‘통일포기론’이 유행처럼 번지는데, 이는 생각이 부족하고 겉멋에 빠진 주장이다. 분단이 자유와 존엄과 발전을 얼마나 훼손하는지 생각해보라. 분단의 지속은 한반도를 불구덩이 위에 방치하자는 주장과 같다. 특히 거대 제국주의 세력 앞에 있는 한국이 분단과 대결을 계속하며 허점을 보이면 자주독립을 지키기도 힘들어진다. 당장 통일이 안되더라도 통일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진다. 통일에 대한 회의론은 한국인의 기를 꺾고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반(反)헌법적 주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학교가 통일 교육에 더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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