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시간을 들여야 알 수 있는 것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에게 계속 또 물어야
내안의 보석, 의지와 수고 있어야 찾아진다
십수 년 전 vocation과 vocare라는 말을 들여다보다 ‘아!’ 하는 순간과 만났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무얼 하다 가야 할까’, ‘신은 내게 뭘 기대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을 때였다. 그때 이 말에 시선이 꽂혔다. 말하자면 신의 음성을 들은 것 같았다. 너에게 이러이러한 달란트를 주었으니 세상에 그렇게 쓰이거라 하는. 나는 그때 비로소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나의 명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고 납득했다. 스물셋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20년이 훌쩍 지난 때였으니 나의 명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시간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내 글을 반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 보라 하셨다. 잘 썼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리에 앉을 때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내 생각을 쓰거나 말하면서 살 것 같은 예감. 그 후 장래 희망은 소설가로, 교수로, 기자로 몇 차례 바뀌었고 실제로는 광고회사에 들어가 카피라이터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30년가량 일했다. 지금은 두 번째 커리어로 책방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희망이 몇 차례 바뀌고 직업도 변화를 겪었지만 하고 싶어 한 일의 핵심은 바뀌지 않아서 나의 생각을 글로 쓰거나 말로 전하며 어릴 적 예감에 부합하게 살았다.
돌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줄곧 생각과 글, 말을 천착해 왔는데 그 일의 요체는 커뮤니케이션이었고 나는 다시 그 일에서 ‘내 생각을 담아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에 다리를 놓는 일’이라는 의미를 건져 올렸다. 일 년만 해보자고 시작한 광고 커뮤니케이션이 평생의 업이 된 데는 이런 마음이 있었던 거다.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내 인생의 비의(秘義)를 알아차렸고 그렇게 알아차린 나의 ‘명’을 기꺼워하는 중이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으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그걸 알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둔하고 부족한 언어는 이렇게밖에 일러줄 수가 없다. 그 질문을 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고, 무얼 잘하고 하고 싶은지 어디에서 의미를 느끼는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해 보라고. 그러면 어렴풋이나마 자신이 장차 어떤 꽃을 피울 씨앗인지, 어떻게 쓰일지 짐작되기 시작한다고.
세상의 어떤 일, 이를테면 자신의 명을 아는 일은 시간을 들여야 가까스로 이루어진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바로 원하는 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인생 숙제는 매뉴얼대로 하면 누구나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성질이 달라서 꼭 당사자가 한 땀 한 땀 가내수공업 하듯 시간을 들이고 수고를 들여야 풀린다. 우리는 얼굴도 기질도 생각도 능력도 다 다른 존재이므로 내게 맞는 것은 내가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이 ‘My Way’를 말하고 노래할 뿐 ‘their way’ ‘his way’ ‘her way’라는 말은 별로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지금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라면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묻고 또 물으시라. 다만 이런 질문은 일이 년 안에 금방 답이 찾아지지는 않으니 긴 호흡으로 물으시라.
나는 4월에 출간한 졸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 사인을 할 때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에 ‘내 안에 보석이 있어요’라는 문구도 쓴다. 이 문장엔 물음표가 달려 있지 않지만 실은 의문문이다. 당신은 그 보석을 찾았느냐는 질문이다. 또 다정한 명령문이기도 하다. 당신 안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으니 꼭 찾아내라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받아 나온 소명이요, 사는 동안 할 일이라는. 분명한 것은, 소명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안내되는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아니라 시간을 들인 당사자의 의지와 수고에 의해 찾아지고 드러난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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