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죠?”…쪽방상담소, 폭염 속 주민과의 동행 [인턴기자의 세상보기]

김지호 2023. 8. 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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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죠?”라고 안부를 물으며 쪽방촌 주민과 익숙하게 인사를 나눈다. 이성민 영등포 쪽방상담소 실장은 매일 오전 10시면 이처럼 쪽방촌 주민을 찾아간다. 마주친 한 주민은 “네 잘 지내죠”며 반갑게 안부 인사를 한다. 오전임에도 30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 탓에 윗옷을 벗은 채다. 인사를 건넨 주민은 현재 폐암 투병 중이다. 쪽방을 나서자 이성민 실장은 “저분께서는 폐암 투병 중이세요”며 “다행히 지금은 항암치료는 받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네요”고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지난 2일 오전 10시 40분 이성민 영등포 쪽방상담소 실장이 쪽방촌 안전을 위해 순찰활동을 하고 있다.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한창이었던 지난 2일 영등포 쪽방상담소를 찾았다. 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에게 혹서기는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계절과 상관없이 쪽방촌 주민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심상치 않은 온도 탓에 상담소 복지사의 신경은 온통 쪽방 주민 더위나기에 가 있다.

◆혹서기 매일 순찰에 ‘구슬땀’

쪽방촌은 특수한 지역사회다. 법률상 쪽방촌 주민은 지역사회 주민이 아닌 노숙인으로 분류된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 소장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직법)에 따르면 쪽방상담소는 노숙인 시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쪽방 주민은 노숙인에 속하는 특수한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쪽방상담소는 이들 주민이 상담을 신청하거나 사회복지사가 직접 주민을 찾아가 그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주는 쪽방주민이용시설이다.

서울시가 쪽방촌에 설치한 공용에어컨.
영등포 쪽방상담소는 쪽방촌을 총 4구역으로 구분해 순찰한다. 매일 오전 10시에 출발해 40분가량 일일이 주민들을 찾아간다. 이날 동행취재를 수락한 상담소 실장과 1, 2구역을 함께 돌았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곳곳에 주민이 거주하는 방이 나왔다. 이른 시간에도 온도는 30도가 넘었고 사람들은 더위에 지쳐 보였다.

순찰에서 만난 주민들은 익숙한 듯 이 실장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성이 거주하는 곳은 더 조심스럽게 방문하는 모습이다. 먼저 사회복지사가 노크하고 안부를 물으면 답을 듣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동이 어렵거나 지병을 앓고 있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 실장과 순찰 중에는 공용에어컨도 접할 수 있었다. 쪽방촌 곳곳에 설치된 복지 냉방 시설이다. 서울시 사업으로 한 층에 주민이 3인 이상 거주하면 설치할 수 있다. 지난해와 올해 영등포 쪽방촌에서만 총 12대 설치됐고, 상담소 복지사들이 관리한다. 아직 고장 난 적은 없지만, 주민이 상담소에 문의하면 상담소에서 직접 업체에 수리를 맡겨야한다. 서울시는 기업과 협약을 맺어 혹서기인 7~9월에 공용에어컨 전기요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취재 중 접한 공용에어컨은 꺼진 상태. 이 실장이 켜라고 권유해도 한 주민은 “전기세가 걱정된다”며 에어컨 가동을 꺼렸다.

지난 2일 오전 10시 15분 이성민 영등포 쪽방상담소 실장이 순찰을 돌며 쪽방 주민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순찰을 마치고 상담소로 돌아오는 길에 올라 선 이 실장 얼굴에는 구슬땀이 흐른다. 옷은 흠뻑 젖은 상태다. 그는 연신 안경을 벗고 땀을 닦아냈다. 사회복지사 일을 20년 넘게 하고 있으며, 쪽방촌 관련 일은 14년 차다.

이 실장은 “저희가 순찰하는 첫 번째 이유는 건물이 노후 돼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며 “만약의 위험성과 주민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주민들을 만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복지사로서 직접 주민을 만날 수 있어서”라며 “직원들이 매일 왔다가는 것을 주민이 인식하면 상담소에 직접 오기 힘든 분들의 힘든 점을 듣고 조치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폭염에도 주민들 칭찬에 다시 힘 얻어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은 오후 2시, 이번엔 신인숙 쪽방상담소 소속 간호사와 다시 쪽방촌으로 향했다. 신 간호사는 모든 주민을 만나며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순찰은 짧게는 1시간 30분, 길게는 2시간 넘게 걸린다. 주민의 아픈 곳이나 원래 앓고 있는 지병에 관한 건강 상태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지난 2일 오후 3시 신인숙 영등포 쪽방상담소 간호사가 쪽방 주민의 혈당을 검사하고 있다.
신 간호사는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 고령”이라며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계시는 분들이 제일 많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더운 날씨로 움직이지 않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해 운동하지 못하신다”면서 “지원받는 식사도 빵, 라면 등 밀가루 음식이 많아 당뇨병 환자가 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간호사는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곳은 많고 돈도 들지 않지 않지만, 혈당검사는 다르다”며 “병원에서는 당뇨병 환자만 혈당을 측정해주고 그 외에는 혈당검사를 무료로 받지 못해 주민들에게 혈당검사를 주로 해준다”고 전했다.

주민을 만난 신 간호사는 친근하게 식사 여부와 불편한 점을 물었다. 신 간호사에게  주민들은 연신 감사함을 전했다. 한 주민은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선생님께서 걱정해주시니 제가 더 잘 관리해야 하는데…”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본 신 간호사는 주민 말벗이기도 했다. 평소 혼자 살며 대화상대가 없는 주민들이 그를 만나면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 신인숙 영등포 쪽방상담소 간호사가 60대 주민의 혈당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느 쪽방앞에서 신 간호사는 문을 두드리며 “언니”라고 소리쳐 불렀다. 60대 주민과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아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하다. 문을 열자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고혈압과 당뇨뿐만 아니라 다른 지병에 걱정이 컸다. 신 간호사는 혈압과 혈당을 검사하며, 그들의 고충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부부는 “간호사님이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환자들을 잘 보살펴주신다”, “저희야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여기에 있지만 간호사님은 일일이 집을 방문해 고생이다”, “누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시겠냐”, “뜨거운 날씨에 아픈 분들에게 도움을 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며 신 간호사를 칭찬했다. 신 간호사는 “얼른 가야겠다”며 부끄러운 듯 미소를 보이며 집을 나섰다.

지난 2일 오후 2시 (왼쪽부터)박기용, 정운덕, 김재원 사회복지사가 쪽방촌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살수작업을 하고 있다.
신 간호사는 폭염으로 인한 주민 건강이 요즘 가장 걱정이다. 주민들은 낮에 집에 머물지 않는다. 건물 지붕이 슬레이트고, 비가 올 때 물이 새지 않게 천막을 쳐놓아 더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낮에는 무더위쉼터나 고가도로 아래 그늘에서 불볕더위를 피한다. 신 간호사는 집 밖에서 더위를 피하는 주민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 중 신 간호사에게 일할 때 힘든 점과 가장 보람찬 순간에 대해 질문했다. “더울 때와 추울 때가 가장 힘들어요. 추위를 더 많이 타서 겨울이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아까 언니가 칭찬해준 것처럼 힘들 때 많은 위로를 받아요. 제가 잘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열심히 한다’, ‘잘한다’고 얘기해주는 주민들을 볼 때면 행복하고 다시 힘을 얻어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활짝 웃는 그의 표정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김지호 인턴기자 kimja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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