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글이란 건 때론 힘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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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잠시 쉬어 가던 7월의 어느 날.
살아 있을 때처럼 생일을 축하하거나, 상대방의 근황을 물어보거나, 그러다가도 '우린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며 힘겹게 다짐한다.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최근까지 사건을 보도했던 동료 기자들과 이야기할 때면 지난 9개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서로 한숨을 쉬곤 한다.
그것이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고, 많은 기자들이 기록하는 이유이고, 우리 사회가 이들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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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잠시 쉬어 가던 7월의 어느 날. 퇴근길에 서울시청을 지나다 우연히 광장 한편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보게 됐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유족 한 명만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텅 빈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서울시가 철거를 요구하며 긴장감이 맴돌았던 곳이다. “낮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한 명씩만 나와 있기로 했어요.” 그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야만 간신히 바뀌는 게 제도다. 그러나 논의가 필요한 순간마다 국가는 침묵하고 있다. 내가 출입하고 있는 해병대는 채 상병 사고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와 후속 조치 등을 브리핑하겠다고 했지만 1시간 전에 급작스럽게 취소했다. 국방부는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자료를 ‘범죄 혐의가 적시되어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도로 회수해 갔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해병대 단결을 저해하는 모습은 방관하지 않겠다며 입단속을 시키는 모양새다. 침묵은 조직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국민을 보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것은 애도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또다시 잃지 않는 거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 그것이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고, 많은 기자들이 기록하는 이유이고, 우리 사회가 이들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는 이유다. 재난을 얼마나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목소리와 글에도 힘이 생긴다. 그러니 재난에 책임 있는 기관들도 기억의 연대에 동참해 줬으면 한다. 정부는 정책으로, 국회는 법안으로 동참하고 치열했던 기록들이 덧대어지게 된다면 지워지지 않는 제도가 생겨날 것이라고 간절히 소망한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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