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동구릉 찾아가는 길

2023. 8. 4. 23: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9기의 왕릉 ‘동구릉’
수목 울창… 풍수지리적으로 명당
한여름의 무더위가 엄청난 지금, 그래도 찾아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필자는 조선의 왕릉 답사를 추천하고 싶다. 왕릉 주변에는 최고의 숲길이 조성되어 있고, 푸른 신록을 접하노라면 몸과 마음마저 푸르러지는 듯 상쾌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조선왕릉은 국내에 조성되어 있는 40기(基)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외국의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넓은 지역에 조성된 산림과 숲길이었다. 왕릉 주변에 수목이 울창한 것은 ‘광릉수목원’, ‘홍릉수목원’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조선 시대 왕릉 조성에서 가장 크게 고려된 것은 풍수지리와 지역적 근접성이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면서도 서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이 왕릉으로 적합한 곳이었다. 후대 왕들이 자주 선왕의 능을 참배하려면 우선 거리가 가까워야 하기 때문이다. 왕릉 대부분이 서울과 구리, 고양, 파주 등 경기 북부 지역에 분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조선왕릉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은 경기 구리시의 동구릉이다. 동구릉은 태조의 무덤이 처음 이곳에 조성된 이후 왕과 왕비의 무덤 8기가 이곳으로 와서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동구릉이 되었다. 동구릉 이외에 경기 고양시에는 서오릉이 있는데, 숙종의 무덤인 명릉(明陵) 등 5기의 왕릉이 있다. ‘태종실록’에는 1408년(태종 8) 5월24일 태상왕으로 있던 태조가 승하한 후, 태종의 명을 받은 신하들이 왕릉의 터를 조사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여러 지역을 물색한 끝에, 6월28일 최종적으로 양주의 검암산 자락이 결정되었다. 태조는 자신보다 먼저 죽은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 옆에 묻히고 싶어 했지만, 태종은 부친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태조 사후에는 덕수궁 인근에 있던 정릉을, 현재의 서울 성북구로 옮겨 버렸다. 성북구에서 정릉동 명칭을 사용하고, 덕수궁 일대를 정동(貞洞)이라 부르는 것은 정릉과 깊은 관련이 있다. 건원릉은 다른 무덤과는 달리 사초(沙草: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심어져 있다. ‘인조실록’에는 고향인 함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를 심은 것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건원릉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판명된 것은 태조 이후 이곳에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 계속 조성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문종의 현릉(顯陵), 선조의 목릉(穆陵), 현종의 숭릉(崇陵), 영조의 원릉(元陵), 헌종의 경릉(景陵) 등 여섯 왕이 뒤를 이었고,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徽陵)과 경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등 두 명의 왕비가 왔다. 왕세자로 승하했지만 문조(文祖)로 추존된 효명세자의 무덤이 양주 용마산에서 건원릉으로 옮겨지면서, ‘동구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동구릉의 왕릉들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형태도 조금 다르고 흥미 있는 역사가 담겨 있다.

태조 사후 두 번째로 동구릉에 조성된 문종의 현릉(顯陵)에는 처음 문종의 무덤만 있었지만, 중종 때 왕비로 복권된 현덕왕후가 사후 72년 만에 남편 곁으로 돌아왔다. 영조의 원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영조의 옆자리를 차지한 왕비는 50년을 해로한 정성왕후가 아닌, 영조가 66세 때 혼인한 15세의 신부 정순왕후였다. 헌종의 무덤인 경릉은 무덤 곁에 두 왕비를 나란히 묻은 삼연릉(三連陵) 형식을 띠고 있다.

주변에 수목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찾는 순간부터 마음의 여유를 주는 왕릉. 왕릉까지 가는 진입로도 숲길이고, 평온하게 왕릉으로 가는 길을 밟으면 잠시나마 여유를 얻을 수가 있다. 적당히 걸으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도 있는 동구릉에서 왕릉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