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역할’을 찾나요? 그건 ‘혐오’ 맞습니다[책과 삶]
다운걸
케이트 맨 지음·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 528쪽 | 2만7000원
예전 한 커뮤니티에서 ‘이기적인 한국여성’을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작성자는 ‘남자가 손해보는 결혼생활’에 분노하면서, 이상적인 대안으로 ‘나보다 능력 있는 여자’가 아니라 ‘힘들게 돈 벌어오면 도시락을 싸주며 고마워할 줄 아는 여자’를 꼽고 있었다. 글은 많은 호응을 얻었고, 이후로도 왠지 그 글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케이트 맨의 <다운걸>은 그간 다소 애매하게 쓰여온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책이다.
그에 따르면 여성혐오는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사회가 정해둔 역할’을 거스르는 여성에 대한 도덕률이다. 여기서 여성의 역할이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처럼 감정, 자원, 돌봄, 관심 등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제공자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여성을 ‘인간 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란 알쏭달쏭한 말이 성립하기도 한다. 단 어떤 여성이 ‘주제넘게’ 이 금 밖으로 나와서 스스로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 가차없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런 구조는 여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차등적으로 작용하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반적인 사회적 기대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그리고 현실의 사건사고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시한다.
어느새 페미니즘은 ‘쿨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자기계발적 임파워링 혹은 혐오가 페미니즘이라는 간판하에 횡행한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시각이야말로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원래 품고 있던 뇌관이 아니었을까.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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