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칼 [詩의 뜨락]

2023. 8. 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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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에스키모가 늑대 잡는 법은 이렇다네 얼음 벌판에 피묻은 칼을 거꾸로 꽂아놓으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와서 칼날을 혀로 핥는다는 거야 그러다가 혀를 베고, 자기 혀에서 나온 피를 계속 핥는다는 거지 결국 피가 다 빠져나가 죽은 늑대를 둘러메고 오기만 하면 된다는군

지금, 피 묻은 칼날을 자기 혀로 핥고 있는 늑대는 누굴까? 피 묻은 칼을 꽂아두고 간 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고, 피의 향내가 주는 유혹은 강렬해서 자기도 모르게 긴 혓바닥을 내밀곤 하지 탐욕스러운 혓바닥부터 뽑아버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소리 환청처럼 들려오는 동안에도 칼날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혓바닥의 저 성실한 노동이라니!

-시집 ‘귀를 접다’(청색종이) 수록

●박일환 시인 약력

△1961년 출생.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 추천으로 등단. 시집 ‘지는 싸움’, ‘덮지 못한 출석부’, ‘등 뒤의 시간’ 등이 있음. 전태일문학상 우수상(단편소설)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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